“한국만이 제시할 수 있는 협력 비전과 방향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외교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한 발전 경로를 그들과 공유하고,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가 제공할 수 없는 지식 기반 협력 프로젝트, 소프트파워 등을 내세워 차별화해야 할 때다.”

“인도 같은 대국들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전체의 국제적 영향력도 확장되고 있다. 한국은 ‘커넥터(connector·연결자)’로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와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전 세계 국제 질서의 변화를 결정하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대한 한국의 소극적인 외교 전략에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만이 제시할 수 있는 협력 비전과 방향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외교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한 발전 경로를 그들과 공유하고, 글로벌 웨스트(Global West·미국 포함 G7 중심)와 글로벌 이스트(Global East·러시아 및 중국 중심)가 제공할 수 없는 지식 기반 협력 프로젝트, 소프트파워 등을 내세워 차별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글로벌 사우스 국가를 분류하는 기준은.

“1980년 브란트 보고서(Brandt Report)가 제시한 ‘브란트 라인(Brandt Line)’을 바탕으로 경제 발전 정도에 따라 나눈 구분법이 아직 유효하다. 물론 지리적 경계인 남반구와 북반구의 물리적 구분과는 명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위치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에 따라 제외됐고, 중국과 인도는 포함된다고 보는 게 주류다. 기존의 브릭스(BRICS) 중에서 보면 러시아를 제외한 4개국(중국·인도·브라질· 남아공)이 사우스 국가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주요 7개국(G7)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일컫는 글로벌 웨스트,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이스트가 있다. 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제1세계),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제2세계)가 있고, 이들 두 세계와의 동맹을 거부하는, 이른바 ‘제3세계’ 로 대표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가 있다.”

김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서울대 사회학, 영국 옥스퍼드대 사회정책학 박사,  존스홉킨스대학(SAIS) 국제관계학 박사, 현 서울대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센터장, 현 글로벌사회공헌단
김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서울대 사회학, 영국 옥스퍼드대 사회정책학 박사, 존스홉킨스대학(SAIS) 국제관계학 박사, 현 서울대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센터장, 현 글로벌사회공헌단

글로벌 사우스 부상이 선진국에 대한 경제적 도전으로도 비치는데.

“글로벌 사우스 대국들이 세계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국제적 영향력도 확장하고 있다. 오는 2026년 구매력 평가(PPP)를 감안한 GDP 규모 기준으로 중국(20.2%)과 인도(8.1%)를 합하면 같은 해 미국(15%)과 유럽연합(14%)의 합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예상된다(IMF 전망치). 중국과 인도 두 맹주국이 협력과 경합을 이어가는 가운데 어떤 관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사우스 전체가 단일한 집단으로서 기존 경제 거버넌스에 도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과 인도가 글로벌 사우스 주도권을 놓고 어떤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보나.

“중국과 인도는 글로벌 사우스 내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023년 G20 정상회의 주최국이었던 인도는 G20 내부의 자국 리더십을 글로벌 사우스를 넘어서 글로벌 노스 회원국까지 확장하려고 노력했던 한편, 중국은 G20에 참석하지 않았고 인도 정부 주도의 ‘글로벌 사우스 정상의 목소리(Voice of Global South Summit 2023)’에도 불참했다. 중국은 자국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미국이나 G7과 상대할 때 대단히 중요한 우군이자 전략 자산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활용하려 한다. 자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막대한 투자와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주요국들의 글로벌 사우스 국가 끌어안기 노력은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앞으로 국제 질서의 변화를 결정하는 이른바, 게임 체인저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접근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빈곤과 질병, 부패와 분쟁으로 점철된 저개발국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아직 이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국가들도 있지만, 이들을 하나의 동일 집단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역별, 소득별 등으로 세분화해서 봐야 한다.”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해 어떤 외교 전략을 펴야 하나. 

“한국만이 제시할 수 있는 협력 비전과 방향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외교적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한 발전 경로를 그들과 공유하고, 글로벌 웨스트와 글로벌 이스트가 제공할 수 없는 지식 기반 협력 프로젝트, 소프트파워 등을 내세워 차별화해야 할 때다. 특히 기존 신흥 공여국과 차별되는 공적개발원조(ODA)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미 중국의 일대일로 등 공여국들의 개발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 원칙에 따라 비용 대비 원조 효과성이 높은 지식 기반 프로젝트, 교육, 보건·의료 개혁, ICT 등 우리가 전문성을 가진 주요 섹터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사우스를 끌어안는 경쟁이 가열되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역할은.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국제 관계 위기 속 미국의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미국은 중간자로서 한국의 가치를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 오는 6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한국은 처음으로 아프리카 54개국과 정상회의를 주도하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그러나 한국이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차별화된 비전이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상호 협력과 대화를 견인할 수 있는 일종의 ‘커넥터(connector)’ 역할 또는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을 안정화하는 ‘조정자(coordinator)’ 역할을 통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 관련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있다면. 

“우연히 1955년 반둥회의의 영문 회의록을 어렵게 영국 중고 서점에서 구하게 됐다. 당시의 비동맹원칙과 남남협력 등을 역사적 으로 고찰할 계획이다. 작년에 출간한 ‘반둥 이후: 글로벌 사우스의 국제정치사회학’ 단행본을 토대로, 한국이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데 반드시 반영돼야 할 역사적 사실과 한국 파트너 국가 연구를 지속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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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회의 1955년 4월 18일부터 4월 24일까지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 독립국 대표가 모여 세계의 현안을 논의한 국제회의. 인도네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파키스탄의 5개국이 주최국이 됐으며, ‘제3 세계’가 탄생한 계기가 됐다. 당시의 쟁점은 소련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중국과 인도 국경분쟁 등으로 지도자들 사이의 유대가 깨져서 더 이상 회의는 개최되지 않았으나, 2015년 4월 반둥회의 60주년을 기념해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되는 등 정신은 이어가고 있다.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