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피치북·딜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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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2023년 초 파산한 후 역풍을 맞았던 벤처대출(venture debt)이 되살아나며, 첨단 기술 스타트업 업계의 혁신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벤처대출은 실리콘밸리식 투자 조건부 융자로, 스타트업이 후속 투자 유치 시 대출 당시 정한 기업 가치로 신주인수권을 매입한다는 조건으로 금융기관이나 사모펀드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는 것이다. 이는 성장성 있는 스타트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벤처대출 규모는 4년 연속 300억달러(약 40조원)를 넘다가, 2023년 120억달러(약 16조원)로 추락한 후, 2024년 140억~160억달러(약 18조8000억~21조4900억원)로 전년 대비 25% 증가하며, 감소 폭을 일부 만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1분기 SVB 파산에도 미국 빅테크 의 주가는 끄떡없었지만, 이외 테크 기업들은 금리 상승 환경에서 투자자들이 기술 개발 완료 단계의 기업에만 관심을 두고,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이 위축되는 데다 벤처캐피털(VC) 투자까지 감소해(2021년대비 약 60% 감소),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24년부터 벤처펀딩 시장, 특히 대형 사모펀드와 비은행 기관들의 열기에 힘입어 벤처대출 시장이 회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에만 VC 투자를 받는 기업이 5만 개를 넘는데, 대다수가 수익을 내지 못하고 현금만 축내고 있다. 2~3년 정도 현금을 축내다 보면 계속 발생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현금 수혈이 필요한데, 이때 VC가 투자자로 나선다. 하지만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받는 대신 대출 형태로 벤처 자본을 확보할 수도 있다.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VC 투자처럼 지분을 내주지 않아도 되므로, 스타트업 사이 대체 자본 조달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VC 시장에서 벤처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10%에서 2022년 14%로 늘었다.

테크 분야 벤처대출은 2022년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23년에는 전년 대비 60%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1~2022년 고점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2015~2017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기적으로 VC 감소 추세 속에서도 벤처대출은 2025년 이후까지 계속 회복세를 보여 2027년까지 최대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던컨 스튜어트 딜로이트 캐나다 첨단기술·미디어·통신 부문 리서치 디렉터 미국 CFA Instititue 국제재무분석사
던컨 스튜어트 딜로이트 캐나다 첨단기술·미디어·통신 부문 리서치 디렉터 미국 CFA Instititue 국제재무분석사

벤처대출 저조 이유는 금리 인상, 위험 회피

벤처대출이 저조한 주된 이유는 금리 인상과 위험 회피 추세 때문이다. VC와 벤처대출 모두 여전히 위축되고 있고 전략적 투자자들은 위험 회피 투자를 하고 있어, 수익을 내지 못하는 스타트업들의 자본 조달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추세는 2024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 벤처대출은 건수와 규모는 줄어드는 반면 이자는 늘어날 것이다. VC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투자 규모와 건수는 줄고 기업 가치는 갈수록 저평가되고 있으며, 투자 조건에 제약이 심화됐다. 이처럼 여건이 악화되는 만큼, 벤처대출을 받고자 하는 스타트업들은 지분을 희석하거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정리하거나, 최악의 경우 경쟁사에 합병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2024년에는 현금이 풍부하고 기업 가치가 높은 대형 테크 기업들이 자본 조달이나 저금리 대출에 어려움을겪는 스타트업들에 투자 또는 이들을 인수하면서, 전략적 VC 딜(지분 인수 또는 전면 합병)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초기 스타트업들이 취해야 할 벤처대출 시장 전략

테크 및 통신 분야에 이제 막 진입한 스타트업들은 향후 벤처 시장에서의 전략을 신중히 수립해야 한다. 벤처대출을 확보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만큼, 초기 단계의 기술 스타트업들은 강력한 매출과 마진으로 자본시장에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2021년 자본시장 투자를 움직이게 한 요인은 매출 증가율과 시장점유율 단 두 가지뿐이었으므로, 스타트업들은 비용 절감과 수익 가속화 전략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다. 또한 벤처대출 이자가 더욱 상승할 수 있으므로, 이미 자본을 확보한 기업들도 자본 조달 비용 증가에 대비해야 한다. 벤처 자본은 줄고 벤처대출 이자는 상승하면서 혁신 생태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긍정적 현금 흐름과 뛰어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스타트업 벤처가 줄면서 매매 옵션도 줄고 있는 만큼, 테크 스타트업들은 내부 인력 양성에 더욱 힘을 쏟아 비용 효율적 방식으로 혁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높은 성과를 내는 직원들에게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테크 생태계 내 연구개발(R&D) 협업을 진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쟁 우위를 지켜야 한다.

금융기관에 추가 수익 기회… 벤처대출 회복기 신중한 자본 조달 전략 필요

현재 벤처대출 시장은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금융기관들뿐 아니라 여타 대출 기관들이 시장 수요를 충족하며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기회가 풍부하다. 전통적 은행들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하므로, 대형 사모펀드나 대체 비은행 기관들이 벤처대출 시장에서 적극 활동하며, 테크부문 벤처대출 시장의 회복세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대출 시장이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초기 스타트업들은 향후 자본 조달이 더 어려워질 상황에 대비해 현금을 더욱 많이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또한 대출 이자가상승하거나 아예 대출받지 못해, 더욱 저평가된 기업 가치로 주식을 추가 발행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벤처대출 시장이 점차 회복하면서 테크 부문 초기 스타트업들이 장기적으로 안정적 성장을 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미국 규제 당국은 2021년에 이미 SVB의 수익 구조에서 경고음을 들었으나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SVB 파산 후 이는 사실상 규제 실패라는 비난이 확산된 이유다. 그 배경에는 2018년 통과된 도드-프랭크 법(Dodd-Frank Act) 수정안이 있다. 금융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시행된 도드-프랭크 법이 2018년에 완화하면서, 자본 확충 의무가있는 은행의 자산 규모가 1000억~2500억달러(약 134조3000억~335조8300억원) 범위로 상향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규제 완화에 SVB 경영진의 안일함이 더해져 SVB 파산 사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에서는 은행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단기적으로 벤처대출 시장이 냉각될 수 있다.

하지만 벤처대출 시장의 붕괴와 반등은 역으로 금융기관들이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리스크가 증대한 만큼 신중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대출자에게 더 많은 담보를 요구해 미리 정해진 낮은 가격으로 지분을 인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리스크 요인을 줄여야 한다.

그럼에도 벤처대출 시장은 테크 스타트업 생태계에 또 다른 자본 경로를 열어줄 수 있다. 대출기관에는 위험성이 낮은 새로운 수익 기회로, 대출자인 스타트업에는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 기존 VC의 대체재로서 벤처대출은 스타트업들이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전략적 합작 벤처, 산학 협력, 산업 컨소시엄, ID 랩과 여타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참여를 통한 파일럿 및 프로토타입 프로젝트에 대출 기관들이 500만~800만달러(약 67억~107억원) 정도의 소규모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스타트업들의 혁신을 지원할 수 있다.

최근 지속 가능 테크와 생성 인공지능(ge nerative AI), 거대 언어 모델(LLM) 등 새로운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은 혁신 솔루션으로 고객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지속적인 자본 투자가 필요한데, 벤처대출이 VC나 사모펀드를 대체하는 유용한 자본 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 2024년 벤처대출 시장이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테크 스타트업들은 자본 조달 전략을 신중히 수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회복이 완료되면 스타트업들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발판을 더욱 수월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