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는 경영자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컨설팅받아 보라 하고 점검했더니 담합, 횡령, 사원 간 반목과 불신, 명예훼손 등, 종합세트가 나왔어요. 그분이 다 뜯어고쳐야겠다고노발대발하기에 절대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문화를 장기적으로 바꿔야 하는 문제니 차분히 로드맵을 같이 짜자고 했습니다.” (문무일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전 검찰총장)
컴플라이언스(compliance·준법 감시)란 이름의 조직을 신설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 조직은 법인과 임직원이 국내외 법규를잘 지키고 있는지, 내부 점검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각종 법 위반 사실을 몰랐다가 뒤늦게 수사 당국이나 규제 기관에 적발돼 징금, 형사처벌을 받게 됐을 때의 리스크가 워낙 크므로 사전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을 둘러싼 각종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담합, 횡령 같은 오래된 나쁜 관행이 표면화하기도 하고 사회의 기대 수준이 올라가면서 법, 규제가 강화된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있다. 이에 정부에서 공정거래부터 당근을 꺼내 들었다. 6월 21일부터 공정거래 관련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내부 준법 시스템(CP·공정거래 자율 준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잘 운영한 기업에 과징금 감경 혜택을 주기로 했다.
2017~2019년 검찰총장으로 재직한 후 2022년 8월부터 법무법인 세종에 몸담고 있는 문무일 대표는 여러 기업 경영자를 만나면서 외부 컴플라이언스 전문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사내 법무팀에 맡기면 원래 해오던 업무가 있어 컴플라이언스에 집중하기 어렵고 뒤늦게 법규 위반 사례가 나타나면 ‘법무팀은 그동안 뭐 했냐’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적극 나서지 못한다.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따로 두는 경우에는 회사 매뉴얼이 일선 현장까지 퍼져나가도록 교육, 점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세종은 2월 문 대표를 센터장으로 11개 분야 전문가를 모아 ‘컴플라이언스센터(CP센터)’를 발족했다. 공정거래, 지배구조, 반부패, 중대 재해 등 기업의 법률 리스크를 검토해 온 법조인들이 회사 맞춤형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구축해 준다. 현재 회사 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토대로 평가하고 사전 교육과 사후 점검을 진행한다. 기업을 위한 건강검진센터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다. 센터 1호 고객으로 국내 대기업이 문을 두드렸다.
"중견기업 컴플라이언스 '미흡'… 일선 현장 침투돼야"
문 대표는 국내 대기업에 비해 중견·중소기업은 컴플라이언스 대응 수준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기업은 10년 넘게 관련 업무를 준비한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가 있지만 중견기업은 일정 형식을 갖춘 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의 CP제도 운용 평가에서) 트리플 A를 빨리 받아달라는 주문을 한다”라고 말했다. 진정성 있게 준법 경영 체계를 갖추고 직원이 실천할 수 있게 장기간에 걸쳐 접근하기보다 어떤 성과를 얻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경영자들에게 문 대표는 자신이 컨설팅한 기업 사례를 토대로 사전 점검을 받아야 과징금과 각종 제재, 회사 평판·신인도 하락 등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는 “중견·중소기업은 컴플라이언스 업무를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는데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 나중에 일이 생기면 대관(對官) 업무로 해결하면 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공정거래법이 개정됐고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활동을 많이 할 텐데 전반적인 기업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전문적인 컴플라이언스 자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영자가 준법 경영 필요성을 절감해도 직원이 체감하고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기업들은 작업 현장 안전 매뉴얼을 만들고 관련 장비를 지급하고 관리자를 뒀다. 그런데도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컴플라이언스 체계가 일선 현장에 침투되도록 체계화· 고도화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또 근무자가 회사 시스템에 따라 일하기보다 익숙하고 손쉬운 방법, 비용을 아끼고 실적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을 택해서 생기는 일이다.
문 대표는 “직원을 지속적으로 관리·교육· 점검하면서 바로잡아줘야 한다”라며 “당장 컴플라이언스 규정을 어겨 업무를 하는 게 실적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회사에 돌아오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내용을 직원에게 꾸준히 인지시켜 침투되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은 회사 내부망에 게시하는 컴플라이언스 준수 관련 뉴스레터의 열독률을 높이기 위해 재미있는 사례를 넣거나 카드뉴스 형식을 도입하는 등의 제안부터 기업 여건에 맞춘 컴플라이언스 상황 진단까지 종합 컨설팅을 해준다.
"기업 실사에 '디지털 포렌식' 활용… 해외 규제 대응 자문도"
임직원이 위법 소지가 있는 행위를 했는지 실사하는 과정에는 세종의 디지털 포렌식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문 대표는 국내 디지털 포렌식 수사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검찰청 과학수사2담당관 재직 당시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수사에 본격 도입하는 데 앞장섰고,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설립을 이끌었다. 검찰에서 특수 수사, 기업 범죄 수사를 전담하다 세종에 합류해 디지털 포렌식 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최성진 변호사도 센터에 이름을 올렸다.
문 대표는 국내 규제뿐 아니라 해외 규제 대응도 CP센터의 주요한 역할로 꼽았다. 그러면서 해외부패방지법(FCPA·Foreign Cor-rupt Practices Act)과 외국 정부와 맺은 각종 조약에 따른 제재 가능성에 대응하는 데 로펌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FCPA는 1977년 제정됐는데 그동안 영향권 밖에 있던 우리나라 기업이 적용받는 일이 2년 전부터 발생하고 있다. FCPA는 기업이 해외 공무원을 상대로 뇌물을 주거나 뇌물을 주기 위해 회계를 조작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미국 법이지만 미국과 관련된 해외 기업에도 적용된다. 미국예탁증서(ADR) 발행 기업에도 적용돼 KT가 과징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