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알려진 녹색 병(저렴한 희석식 소주를 의미)에 든 소주가 아니라 500년 전에 쌀로 만든 증류주 안동소주가 한국의 진짜 소주(real soju)다. 안동소주는 한국 소주의 기원이다.”(줄리아 멜로)
호주 출신의 한국 전통주 전문가 줄리아 멜로(Julia Mellor)의 진행으로 3월 10일(이하 현지시각) 독일 뒤셀도르프 프로바인(ProWein·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와인 전시회) 제5관에 마련된 포럼장에서 안동소주 시음회가 열렸다. 이날 시음회에 참가한 20여 명의 외국인은 기존에 마셔본 녹색병의 알코올 도수 낮은 소주가 아닌, 40도가 넘는 증류식 소주를 맛보며 ‘소주의 신세계’를 체험했다. 그래서 이들의 반응 또한 제각각이었다. “소주는 알고 있었지만, 안동소주는 몰랐다” “평생 처음 맛보는 술이다” “시음한 술에서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독일식 양배추김치) 향이 난다(알코올 도수 높은 증류주에서 흔한 매운 향이 난다는 의미)” “곰팡이 향(꼬리꼬리한)이 난다(소주를 만들기 전 발효 단계에 들어가는 누룩 향이 난다는 의미)” 등의 다양한 시음 평을 내놓았다.
이날 시음회에 참가한 한국인 이효빈(독일 뒤셀도르프 거주)씨는 “다양한 안동소주를 독일에서 처음 맛보는 귀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안동소주 시음회에는 명인 안동소주, 민속주 안동소주, 진맥 안동소주, 회곡 안동소주, 올소 안동소주, 명품 안동소주, 일품 안동소주 총 7개 안동소주 브랜드가 참가했다. 시음회를 진행한 줄리아는 2009년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러 왔다가 막걸리에 반해 서울에 ‘더 술 컴퍼니’ 회사를 차려, 한국 전통주를 해외에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한국 소주 기원은 '안동소주'
한국 소주의 시작은 고려 말로 보는 견해가 절대다수다. 몽골이 일본 원정을 위해 안동에 병참기지를 두면서 증류주 기술을 한국에 처음 전했다는 것이다. 해서 우리나라에서 소주를 처음 빚은 곳이 안동이며, 안동소주가 우리나라 소주의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국 소주의 기원’ 안동소주를 생산하는 7개 양조장이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프로바인(ProWein, 국제와인·증류주전시회)에 처음으로 참가해, 외국인 방문객 대상으로 시음 행사를 가지는 등 제품 홍보에 적극 나섰다. 프로바인은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독일 뒤셀도로프 메세에서 열렸다. 안동소주의 역사는 500년이 넘었지만, 작년에 안동소주협회(박성호 회장, 안동진맥소주 이사)가 만들어진 것을 계기로, 안동소주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수출을 확대하는 등 안동소주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안동소주의 프로바인 참가 역시 안동소주협회가 주관했으며,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경상북도와 안동시가 예산을 지원했다.
65개국 주류 업체 참가한 세계 최대 주류 전시회
1994년부터 매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프로바인은 B2B(기업 간 거래) 형태로 열리는 국제 주류 전시회 중 세계 최대 규모로 꼽힌다. 올해 프로바인에는 65개국 5400여 개 업체가 부스를 차렸다. 독일에서 열리지만, 독일 참가사 비중은 11% 정도다. 이탈리아 와인 업체 1200개 사, 프랑스 750개 사, 독일 720개 사, 스페인 680개 사, 포르투갈 330개 사가 참여했다. B2C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의 행사 관람은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사흘간 열린 행사장을 찾은 와인·스피릿 전문가는 135개국에서 온 4만7000명으로 파악됐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증류주 특별관(ProSpirits)이 신설돼, 제5관 전체에 전 세계 증류주 제조 업체와 관련 업체 420개 기업(40개국)이 참가했다. 안동소주를 비롯한 한국 업체들 역시 5관에 부스를 차렸다. 프로바인 한국 대표인 라인메쎄 박정미 대표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스피릿(증류주)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높아가고 있어 올해 프로바인에는 별도로 증류주 특별관을 마련했다” 고 말했다. 사흘간 안동소주 부스에는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고, 준비해 간 시음주 상당량이 소진되는 등 호응이 높았다. 한국 공동관에는 안동소주 7개 업체 외에 전주 이강주, 진도홍주, 애플리즈, 오미로제, 부자진 등 한국전통주수출협의회 회원사 38개 업체 53개 제품이 함께 선보였다. 안동소주와 전통주수출협회가 사이좋게 절반씩 부스를 나눠, 회원사 제품 홍보 자료와 제품을 진열해 놓고 부스를 찾는 방문객들에게 시음을 권했다.
해외서 인지도 낮은 안동소주
올해로 30회를 맞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프로바인 행사에는 사실상 한국 업체들이 처음 참가한 만큼, 바이어 상담을 통한 수출 계약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당장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국관을 찾은 방문객 역시 소주(저렴한 희석식 소주를 의미하는 녹색병)는 알고 있었지만, 안동소주는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또, 안동소주를 시음한 방문객들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안동소주가 부스를 차린 5관에는 420개의 전 세계 유명한 위스키, 보드카, 브랜드, 데킬라 전문 업체가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딱히 안동소주가 맛의 우위를 점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때문에 부스를 차린 7개 안동소주 대표는 바이어 상담보다는 안동소주를 처음 알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박찬관 명인안동소주 대표는 “외국인들에게 안동소주를 널리 알리려면 프로바인 같은 국제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안동소주 품질 높여 세계화 도전
사실, 전통의 안동소주 입장에서는 희석식 소주를 제대로 된 소주로 인정하기 어렵다. 무릇 소주란 국내산 쌀로 막걸리를 빚어, 이를 증류한 술만이 소주라고 부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감미료도 일절 타지 않는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한국의 녹색병 소주는 어떻게 만드는가? 외국산 농산물로 알코올 도수 95% 주정을 만들어 여기다 물을 많이 타고 또, 단맛을 내기 위해 감미료까지 넣은 술이 녹색병 소주다. 녹색병 소주가 아무리 많이 수출돼도 국내 농가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희석식 소주 제조 업체들이 국산 농산물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동소주 세계화를 위해 녹색병 소주의 유명세를 활용하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주정에 물 탄 술이 소주라고 알고 있는 세계인이 태반인데, 안동소주는 녹색병 소주와는 아예 근본이 다른 술이라고 하면 낯선 안동소주를 알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니 녹색병 소주도 소주가 맞고, 다만 안동소주를 비롯한 쌀 소주는 프리미엄 소주라고 알리는 게 효과적이다.
2023년부터 ‘안동소주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역시 최근 안동소주의 ‘경북도지사 품질 인증’ 기준을 마련하고, 안동소주의품질 향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안동소주의 세계화, 그래서 지금이 시작이다. 이번 프로바인 참가를 주관한 안동소주협회 박성호 회장은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증류식 소주가 있다는 걸, 이번에 안동소주를 통해 처음 알았다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프로바인 참가의 큰 수확” 이라며 “제품 향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동시에 해외 공략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안동소주의 수출도 머지않아 날개를 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작년 안동소주 매출은 170억원 정도, 이 중 수출은 7억원으로 4%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이번 프로바인 참가는 ‘안동소주 세계화’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