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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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인 2016년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많은 사람이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승부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까닭은 단순히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기술이 달성할 수 있는 최고점이 우리의 상식선을 이미 아득히 뛰어넘었음을 직관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역량이라고 여겼던 통찰력이나 감, 혹은 직관이나 촉 역시 기계로 복제 가능하며, 심지어는 인류 최고 수준의 역량도 기계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생생한 날것으로 목격했다.

이듬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전면에 내세웠던 경제정책의 핵심축인 4차 산업혁명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착각 그리고 이 경쟁에 뒤처지면 끝이라는 절박함 역시 즉각적으로 퍼졌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바둑은 지적 역량의 최고 경연장이었다. 그리고 이세돌 기사는 그 무대에서 천재의 상징이었다.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지적 활동의 영역에서조차 최고의 재능이 피나는 노력을 하더라도 기계를 당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AI) 담론이 그렇게 신속하게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공포다. 천재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세돌 기사조차도 AI에 밀려 직업을 잃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이 AI의 발전과 직업의 상실을 동치(同値)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문가를 자칭한 몇몇 호사가가 매일 매스미디어에 나와 5년만 지나면 대부분의 직업은 없어진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했던 것 역시 큰 역할을 했으리라.

확실히 지난 10여 년간 AI는 상식을 뛰어넘는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이언 굿펠로가 2014년 발표한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에 기반한 생성 AI(Generative AI)는 개발한 사람들조차 놀랄 정도의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텍스트만으로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나, 사망한 지 수십 년이 흐른 가수의 목소리로 새로운 노래를 듣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챗GPT로 대변되는 거대 언어 모델(LLM)은 이해와 분석이라는, 기계는 절대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인간 고유의 지적 행위를 AI를 통해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김우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그런데 정말, 우리의 직업은 없어졌는가

딥마인드 챌린지로부터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삶이 본질적인 변화를 맞이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내 직업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여전하지만, 본인의 직업이 AI 때문에 사라졌다고 답할 사람 역시 많지 않을 것 같다. 

대형 IT 기업들이 AI가 그 역할을 대체할 수 있기에 개발자들을 대거 해고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실상은 코로나19 이후 급등한 개발자의 몸값과 함께 급격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실시된 전 세계적인 긴축정책하에서 더 이상 돈 잔치를 벌일 수 없을 만큼 유동성이 말라버린 기업의 통상적인 인력 조정에 가깝다. 일러스트레이터나 애니메이터 등, 컴퓨터 비전 분야 종사자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생성 AI의 수혜자에 가깝다.

직업이 사라질 정도가 되려면 다양한 산업에서 AI를 통한 의미 있는 생산성 향상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MIT와 스탠퍼드대 등에서 출간된 논문을 인용하며 AI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AI 때문에 사라진 직업은 없다는 의미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또한 산업적으로 의미 있게 활용될 수준의 AI는 학습과 운영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 오픈AI의 수장인 샘 올트먼이 생성 AI 개발과 운영을 위해 중동의 오일머니 등을 대상으로 최대 7조달러(약 9403조원)의 투자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의 4년치 GDP를 넘는 거액이다. 단기간에 직업을 위협할 수준의 AI가 상용화되는 것은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현시점에서 판단컨대, 이세돌 기사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미디어에서 떠들어댔던 ‘직업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남은 질문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우리는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은가다. 

미래를 특정하는 식으로 과거 호사가들이 저질렀던 우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두 가지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먼저 상정해 보자. 한 극단은 언젠가 AI가 인간의 지적 활동을 대체하고 우리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다른 극단에 있는 시나리오는 AI는 특별한 게 아니며, 과거 여러 기술이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큰 사회적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던 것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아마도 현실은 저 두 가지의 극단적 시나리오 사이 어디쯤이 될 것이다.

AI가 우리를 노동해서 완전하게 해방하고, 모든 인류가 기본 소득으로 멋진 삶을 영위하는 시나리오를 제외하고는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경쟁의 문법이 바뀔 여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시나리오별로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AI라는 새로운 도구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경쟁에서 우위에 설 여지가 높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도 적용될 것이다. 결국 새롭게 다가올 불확실한 시대를 현명하게 준비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유아기에 머물러있는 AI를 많은 국민이 친근하게 여기고 자유롭게 활용하는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여전히 AI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이 초창기 매스미디어에 의해 생긴 공포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AI 개발과 전혀 관계없는 은행원이나 중앙정부 관료 같은 사무직들이 일괄적으로 코딩 교육을 받아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은 이러한 공포 마케팅의 폐해다. 도구를 잘 활용하는 것과 도구를 잘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나, 전 국민이 AI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코딩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사회적 낭비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많은 국민이 AI가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불가능한지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AI를 통해 어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즐겁게 고민할 수 있게 만들 토대가 된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는 듣기에도 무서운 직업의 종말이 아닌 밝고 희망찬 새로운 직업의 시대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