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우리나라가 ‘2050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을 선언한 2021년을 기점으로 많은 기업이 국가 목표에 부합하는 또는 국가 목표보다 더욱 과감한 탄소 중립 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탄소 중립을 생각할 때 단순하게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방법을 찾다 보면, 기존의 온실가스 배출원들을 모두 없애자는 다소 과격한 결론에 도달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녹색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 그린비즈니스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그린비즈니스에 대한 기준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택소노미(Taxono-my)다.

택소노미의 등장

그리스어로 ‘분류하다’라는 ‘tassein’과 ‘규칙’이라는 ‘nomos’의 합성어인 택소노미는 분류 체계를 뜻하는 단어로 과거에는 생물학에서 동식물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방법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이 지속 가능 금융 촉진을 위해 ‘EU 택소노미’ 도입을 발표하면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택소노미(그린택소노미로도 불림)는 녹색경제활동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녹색투자나 그린비즈니스 등을 정의했지만, 택소노미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EU는 2018년 ‘EU 택소노미’에 대한 도입을 예고했고, 2020년 초안을 마련했으며, 2022년 이사회와 의회가 이를 통과시키면서 2023년 정식 발효되었다. 우리나라도 2021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발표했고, 2022년 K택소노미의 원활한 적용을 도모하기 위해 일부 녹색경제활동을 추가한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 카이스트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권동혁 BNZ파트너스 상무이사
카이스트 토목공학, 고려대 환경공학 석사, 전 에코앤파트너스 본부장, 전 에코프론티어 센터장

택소노미의 구조 및 분류 방법

택소노미에서는 환경 목표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들을 분류하고 있다. EU 및 우리나라의 택소노미에서 규정하는 환경 목표는 ① 온실가스 감축 ② 기후변화 적응 ③ 물의지속 가능한 보전 ④ 순환 경제로의 전환 ⑤ 오염 방지 및 관리 ⑥ 생물 다양성 보전 등 6개로 동일한 구조다. 이러한 6개의 환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녹색경제활동으로 EU는 현재 243개의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74개의 활동만을 규정하고 있다. 다만, 최근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물·순환 경제·오염 방지·생물 다양성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업의 어떠한 활동이 택소노미에서 정의하고 있는 녹색경제활동 목록에 포함된다고 해서, 그 사업이 무조건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① 최소한의 인정 기준을 만족해야 하고 ② 하나의 환경 목표에 기여하더라도 다른 환경 목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배제 기준(DN-SH·Do Not Signigicant Harm)을 만족해야 하며, ③ 인권·노동·안전·반부패 등 최소한의 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보호 기준(Safe-guards)을 모두 만족해야 비로소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어떤 활동이 녹색경제활동의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할 때 이를 적격(eligible) 경제활동이라고 부르고, 인정 기준, 배제 기준, 보호 기준을 모두 만족했을 때 이를 적합(aligned) 경제활동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녹색경제활동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LNG 발전에 대한 투자를 할 경우 이는 적격 경제활동으로 분류되지만, 인정 기준인 ‘발전소 수명 동안 전 과정 평가 기준의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h당 250gCO₂eq 이하’를 충족하지 못하면 녹색경제활동이 될 수 없다. 

기업들이 쉽게 오해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비적격(non-eligible), ‘적격&부적합(eli-gible & non-aligned)’ ‘적격&적합(eligible & aligned)’ 활동에 대한 선호도다. 언뜻 생각하면, 비적격 활동이 가장 녹색과 거리가 멀어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가장 지양해야 하는 것은 적격 & 부적합 활동이다. 예를 들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생각해 보자. 이 활동은 택소노미 목록에 없는 활동이므로 비적격이다. LNG 발전소가 있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이 택소노미의 인정 기준을 초과하는 ㎾당 350gCO₂eq라면, 이 활동은 ‘적격&부적합’이다. 둘 중에 어떤 활동이 더 녹색과 거리가 있을까. 당연히 가치중립적인 비적격 활동이 아니라 ‘적격&부적합’ 활동이 녹색과 거리가 멀어 지양해야 하는 활동이다. 

매이리드 맥기네스 유럽연합(EU) 금융 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이 2022년 2월 2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 친화적인 지속 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규정안을 확정, 발의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로이터뉴스1
매이리드 맥기네스 유럽연합(EU) 금융 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이 2022년 2월 2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 친화적인 지속 가능한 금융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규정안을 확정, 발의했다고 발표했다. 사진 로이터뉴스1

택소노미의 활용

현재 택소노미가 주로 활용되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또는 기후 공시에서의 활용이다. 기후 공시에서 기업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와 기회 요인을 공시해야 한다. 기후 공시의 기틀을 제공한 TCFD(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에서는 기회 요인을 자원 효율성, 에너지원, 제품·서비스, 시장, 회복 탄력성 등의 분야에서 식별할 수 있다는 다소 모호할 수도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EU의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인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에서는 이러한 모호함을 없애고자 택소노미를 통해 기회 요인을 공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의 매출액, 자본 투자(Capex), 운영비(Opex) 중에서 택소노미에 적격인(eligible) 활동이 얼마나 되는지 또는 적합한(aligned) 활동이 얼마나 되는지를 공시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녹색금융과 연계다. 2000년대 중반 글로벌에서 최초의 녹색채권이 발행된 이후, 국제자본시장협회는 2014년 ‘글로벌 녹색채권 원칙’을 발표했다. 하지만,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의 활동이 진정한 녹색이 맞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선언적인 주장만을 근거로 이를 녹색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지만, 택소노미 기준이 마련된 현재는 택소노미에 따라 녹색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녹색금융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산업은행 등의 국책은행은 물론, 주요 시중은행 그리고 기술보증기금 같은 금융기관에서 택소노미에 기반한 녹색경제활동으로 수백조원의 자금을 집중시키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이차보전이나 탄소스프레드를 통한 금리 혜택, 보증 비율 상향 등 실질적인 혜택이 제공되고 있다.

택소노미 공시와 녹색금융과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융기관들이 녹색투자를 하고 싶어도 어떤 기업이 녹색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허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기업들이 먼저 택소노미 공시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녹색금융을 활성화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현재 EU 택소노미, K택소노미 등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 상황에서 활용 목적에 따라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유럽에 현지 법인이 있는 기업은 당장 현지 법인에 대해서 EU 택소노미에 따른 실적을 집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녹색자금을 조달하고자 한다면 또는 기업의 그린비즈니스 노력에 대해 자발적으로 공시를 하고자 한다면, 상대적으로 적합성 평가를 쉽게 할 수 있는 K택소노미를 기준으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