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장면. 사진 IMDB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장면. 사진 IMDB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을 때, 나는 통장을 탈탈 털어 유럽 여행을 떠났다. 마주한 벽을 무너뜨리겠다거나 뛰어넘으려는 다부진 결심이 아니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깃발 든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주마간산 격으로 관광지에 들러 사진 찍고 다시 버스 타고 달리는 패키지여행이었는데, 파리도 들렀다. 

“이상하네. 이렇게 높이 올라왔는데 왜 에펠탑이 안 보이지?”

에펠탑 꼭대기에서는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더니 300m가 넘는 탑이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다. ‘얘가 뭐라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일행들이 배를 쥐고 웃기 시작했다. 안경 쓰고 안경을 찾고 통화하면서 휴대전화를 찾는다더니, 나는 에펠탑에 올라 에펠탑을 찾고 있었다. 지금도 그들을 만나면 당시를 떠올리며 웃고 이야기한다. “우리, 그때 참 좋았지?”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 길 펜더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베벌리힐스에 수영장이 있는 저택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의 절정에 서 있는데도 소중한 무언가를 놓친 채 인생의 궤도에서 벗어나 헛것을 좇으며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어렴풋하던 헛헛함은 약혼자 이네즈와 함께 파리로 휴가를 왔을 때 정체를 드러낸다.

예비 장인, 장모가 사윗감을 마땅찮아하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이네즈와도 사사건건 부딪친다. 길은 제작자와 감독의 입김, 배우의 비중이 큰 영화 시나리오 대신 작가 혼자 작품을 장악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각본가로서 더 큰 성공, 더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는데 왜 안정된 세계를 버리려 하느냐며, 이네즈는 그의 내면적 욕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녀는 소르본대에서 특강 초빙을 받았다는 친구의 애인, 폴에게 노골적인 호감을 보인다. 학위만 주렁주렁 단 헛똑똑이 앞에서 길이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조롱하듯 말하는 그녀에겐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사실 그는 약혼하고 나서 공황장애가 생겼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하고 있는데도 결혼하면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장면. 사진 IMDB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장면. 사진 IMDB

살다 보면 인생 항로를 수정해야 할 때가 온다. 능숙해진 일에서 보람과 재미를 얻지 못하는 탓일 수도 있고, 익숙한 관계에 스며든 권태 때문일 수도 있다. 너무 빨리 정상에 올라 도전해야 할 산봉우리가 더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계속 걸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잠시 멈춰 나침반을 열고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혼란과 갈등을 재정비하려면 각오가 필요하다.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는 대신 도피하는 건 그나마 쉬운 일이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간절히 손에 쥐고 싶었던 행복이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이라는 걸, 숨통을 움켜쥐던 불행은 바람이 쓸어갈 낙엽이라는 걸 깨닫기도 한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마음은 공상의 세계로 달아난다. 

이네즈가 폴과 어울리는 밤, 길은 홀로 파리 시내를 걷는다. 그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안락한 호텔 침대가 아니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도 이네즈가 아니다. 그가 원하는 건 새로 도전하고 싶은 소설이라는 산, 그 정상에서 별이 되어 빛나는 작가들이다. 그들과 어울리며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텐데, 이네즈와 달리 부드럽게 자기를 안아줄 연인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그는 상상한다.

마법 같은 시간 여행이든 신경안정제 부작용이 낳은 망상이든 길은 매일 밤, 가장 낭만적인 시대라고 믿었던 1920년대의 파리를 여행한다. 동경하던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어울리고 유명 평론가에게 자신이 쓴 소설도 인정받는다. 이네즈를 배신하는 것 같은 가책을 느끼면서도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뮤즈, 아드리아나를 만나 새로운 사랑도 꿈꾼다.

“지금 여기가 황금시대라고요? 여긴 내겐현실이에요. 난 지긋지긋해요.”

2010년대를 살고 있는 길이 1920년대를 원했듯 아드리아나는 뜻밖에도 더 먼 시간, 또 다른 세계를 꿈꾼다. 그녀가 바라는 1800년대 말의 사람들은 훨씬 더 먼 과거로 가고 싶어 한다. 길은 환상에서 깨어난다. 어떤 시간이든 발을 들이는 순간 현실이 된다. ‘어리석은 사람만이 과거의 삶이 더 행복할 거라고 착각’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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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을 멈춘다.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네즈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호텔을 나와 빗속을 혼자 걷는다. 이젠 방향을 잃은 것도, 비를 맞는 것도 두렵지 않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지고 삶을 마주한다면, 소설도 완성할 수 있으리라. 인생 한가운데 쏟아지는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도 손잡고 함께 걸어갈 사랑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순리(順理)라고 한다. 그러나 거칠고 차가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도 있다.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서 매일 에펠탑에 올라 점심을먹었다지만, 에펠탑 꼭대기에서 에펠탑을 찾던 그때의 나는 가이드의 깃발만 보며 생각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가이드가 정해준 대로 보고 먹고 자느라 생각하는 능력을 골 아픈 현실과 함께 배낭 속에 꾸깃꾸깃 쑤셔 넣고 다닌 건 아니었을까. 그때의 나를 이해하게 된 건 여행을 다녀와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그제야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그때의 나는 나였을까? 그때 나는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그때 내 인생은 절망할 만큼 정말 막다른 골목이었을까? 그런데 왜 “그때 참 좋았어!” 하며 지금,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소설을 만났다. 그리고 뒤늦게 소설가가 되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그때가 좋을 때다” 하고 말한다. ‘젊음은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고 사람들은 노래한다. 눈부신 행복의 햇살 안에서는 행복이 보이지 않고, 불행의 태풍 한가운데서는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는 낯선 곳으로, 낯선 시간으로 떠나야 한다. 현실로 잘 돌아오기 위해. 지금 여기를 더 잘 보기 위해. 그래서 더 멀리 계속 나아가기 위해. 에펠탑에서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