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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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美國)이라는 국가 명칭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아메리카’의 ‘메’ 자(字)를 떼 만들었다는 견해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정식 명칭은 ‘아메리카의 연합된 국가들’이고 일본은 이것을 ‘미합중국(美合衆國)’이라고 번역한다.

연합과 연방

1776년 미국 혁명전쟁 과정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헌법은 ‘국가연합과 영원한 동맹을 위한 헌장(연합헌장)’이었고, 이때 만들어진 국가 명칭이 USA, 즉 United States of America(아메리카의 연합된 국가들)다. 초기 USA의 국가 형태는 오늘날 유럽연합(EU)과 유사한 국가연합이었다. 국가연합이란 상위 국가 안에 하위 국가가 존재하는 이중 국가로서, 권력의 무게중심이 독립국 지위를 보유한 하위 국가(회원국)에 있다. 따라서 연합헌장은 헌법이라기보다는 국제조약에 더 가깝다. 당시 USA의 통치 기구는 13개 독립 국가의 대표가 참석하는 대륙회의뿐이었다. 대륙회의는 의결 사항을 집행할 집행부도 없었고 조세권도 없었다. 오늘날 유엔(UN)처럼 회원국의 출연금에 의해 유지되는 회의체였다. 

하지만 1787년 USA의 통치 기구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국내적으로는 세이즈의 반란같이 개별 국가(주)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군사 반란이 발생했고, 국외적으로는 대륙의 북부와 남부를 차지하고 있던 영국과 스페인의 군사적 압박이 심해졌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 모인 12개 회원국(로드아일랜드는 참석 거부) 대표는 원래 회의 목적이었던 연합헌장 개정이 아니라 국가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월권행위를 자행한다. 국가 형태를 국가연합에서 연방국으로 변경한 ‘미국 헌법’을 만든 것이다. 연방국도 이중 국가지만, 국가연합과 달리 권력의 무게중심이 상위 국가(연방)에 존재한다. 이들은 중앙 통치 기구로 연방 대통령, 연방의회, 연방법원을 둔다.

위스키 반란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돈’이 문제였다. 혁명전쟁 과정에서 짊어진 막대한 국가 부채의 상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건국 이후 첫 10년간 미국에서는 ‘정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집단적 논쟁이 벌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정당이 형성됐다. 연방파(현 공화당)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대내외적 안정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정부(연방)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공화파(현 민주당)인토머스 제퍼슨은 연방정부가 너무 큰 권력을 쥐게 되면 폭정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791년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은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연방 소비세를 신설해 연방 재정을 확충한다는 것이었다. 해밀턴의 목표는 분명했다. 연방정부가 지방(주)의 전쟁 부채를 인수하고, 연방정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확충해, 연방의 권력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해밀턴은 전쟁 부채의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국내산 주류에 소비세를 부과했고, 수입산 주류의 관세를 인상했다. 하지만 이러한 증세로 술값이 오르자, 미국 전역에서 폭동과 반란이 일어났다. 후대의 역사가는 이것을 ‘위스키 반란’이라고 부른다. 위스키 반란에 직면한 해밀턴은 방향을 선회해 직접 돈과 신용(대출)을 만들어내기로 한다. 그 일환으로 고안해 낸 것이 연방조폐청과 연방은행이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 ‘돈의 불장난’ ‘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미국은행

연방은행의 명칭은 ‘미국은행(Bank of the United States)’이었다. 오늘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미국은행을 자신의 시조로 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중앙은행은 아니다. 미국은행은 통화정책을 수립하지도 않았고, 최종 대부자 역할을 수행하지도 않았다. 미국은행은 국법은행, 즉 연방법에 의해 설립된 상업은행에 불과했다. 오늘날에도 미국인은 은행 시스템을 국법은행(national bank)과 주법은행(state bank)으로 구분한다. 국법은행은 연방법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서 영업 범위가 전국적(national)이고, 주법은행은 주법에 의해 설립된 은행으로서 영업 범위가 해당 주(state)에 국한된다. 

미국은행의 설립 자본금은 1000만달러였다. 설립 자본금의 5분의 1은 연방정부가 인수하되, 연방정부는 무일푼이기 때문에 일반은행(외국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때 빌린 돈은 10년간 균등하게 분할 상환하기로 했다. 설립 자본금의 나머지 5분의 4는 민간 부문(외국인 포함)에 배정하되, 그 4분의 1은 금이나 은으로 납부하고, 나머지 4분의 3은 국채(전쟁 부채)로 납입하게 했다. 연방정부의 국채 상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해밀턴이 계획한 미국은행은 영국은행과 달리 내륙 지역 개발 및 경제 발전을 위해 정부 및 민간에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산업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은행은 연방정부가 징수한 세금을 보관하고, 정부에 마이너스 통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오케이 목장의 혈투와 워싱턴의 결단

미국은행 설립안이 연방의회에 제출되자 공화파인 제퍼슨의 격렬한 공격이 시작됐다. 제퍼슨은 연방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해밀턴은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사안을 퍼즐처럼 복잡하게 만들어 인민의 이해력과 탐구력을 없애는 것이고, 둘째는 입법부를 부패한 기계로 만드는 것이다. 일찍이 해밀턴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폭력과 이익 중 하나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 의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적 의무를 저버리고, 공익보다는 사익을 돌볼 만큼 추악해졌다.”

공화파인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은 미국은행이 위헌이고, 인구 대다수를 희생시키면서, 상인과 투자자에게 이익을 주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매디슨은 “해밀턴의 방안은 주법은행의 권한을 빼앗아 중앙에 집중시키는 것이므로 건전한 통화 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린다. 미국은행과 연방조폐청 설립은 농업 지역인 남부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상업 지역인 북부의 이익에만 도움 된다. 해밀턴의 제안은 헌법이 보장한 인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제퍼슨과 매디슨의 주장은 수정헌법 10조에 기초하고 있었다. 수정헌법 10조는 “연방의회에 위임하지 않은 모든 권한은 주가 보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퍼슨과 매디슨은 헌법 작성자들이 연방의회에 연방은행 설립 권한을 부여하기를 원했다면 헌법에 이를 명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밀턴도 반격에 나섰다. 그는 “모든 정부(국가)는 본질적으로 주권적이다.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하지 않는 한 정부는 국가 목적 달성에 필요한 수단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거는 미국 헌법 1조 8항 중 “연방의회는 이 헌법이 합중국 정부, 부처, 관리에게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 ‘필요하고 적절한’ 법률을 제정할 권한을 갖는다”는 조항이었다. 해밀턴과 제퍼슨은 이 조항의 ‘필요하고 적절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논쟁을 벌였다. 해밀턴은 “국가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라고 했고, 제퍼슨은 “국가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주장했다.

결국 공은 거부권을 보유한 당시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게 넘어갔다. 연방의 권한 강화를 원했던 워싱턴은 해밀턴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미국은행은 1791~1811년, 20년 동안만 존속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은행의 주요 주주가 외국인, 특히 영국인이었고,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주법은행과 농민의 이익을 착취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