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인구가 급증하면서 육류 소비도 4500만t에서 2억2900만t으로 다섯 배 증가했다. 이에 맞춰 가축 사육과 사료 생산량도 늘다 보니 생태계 파괴를 피할 수 없었다. 사료작물을 키우려면 삼림을 없애고 농지를 늘려야 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던 숲이 줄어들자, 지구온난화 속도도 빨라졌다. 고기를 먹으면서 숲도 보호할 방안이 없을까. 과학자들이 대안 단백질을 제시했다. 바로 뱀과 곤충이다. 사람들이 혐오하는 식품이지만, 생산성이 워낙 월등한 데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다른 가축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1 버마비단뱀. 동남아시아에서 사육하는 비단뱀은 같은 단백질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사료가 다른 가축보다
훨씬 적다. Daniel Natusch 2 미국 프로야구팀 시애틀 매리너스는 메뚜기튀김을 구장에서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시애틀 매리너스
1 버마비단뱀. 동남아시아에서 사육하는 비단뱀은 같은 단백질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사료가 다른 가축보다 훨씬 적다. Daniel Natusch 2 미국 프로야구팀 시애틀 매리너스는 메뚜기튀김을 구장에서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시애틀 매리너스

단백질 생산에 들어가는 사료량 가장 적어

 호주 매쿼리대의 대니얼 나투시(Daniel Natusch) 박사 연구진은 3월 15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동남아시아에서 사육하는 비단뱀이 다른 가축보다 사료량도 적고 환경 피해도 적어 지속 가능한 육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는 예전부터 뱀 고기를 즐겼다. 뱀 가죽은 패션 제품의 재료로 인기가 높으며, 쓸개즙은 한약재로 팔린다. 

 나투시 박사는 영국과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베트남 과학자들과 함께 태국 우따라딧주와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비단뱀 농장 두 곳에서 그물무늬비단뱀(학명 Malayopy-thon reticulatus)과 버마비단뱀(Python bivittatus) 4601마리의 성장률을 분석했다. 비단뱀은 농장이나 논에서 잡힌 쥐나 생선을 갈아 만든 어분(魚粉) 사료를 먹고 자란다. 분석 결과 비단뱀은 다른 가축보다 사료를 덜 먹고도 1년 만에 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에 따르면, 뱀의 ‘사료요구율(feed conversion ratio)’ 은 1.2로 다른 가축보다 월등했다. 사료요구율은 사료량을 가축의 건조 중량으로 나눈 값이다. 숫자가 작을수록 같은 사료로 더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소고기는 사료요구율이 10.0이며, 돼지와 닭은 각각 6.0과 2.8이다. 논문 공동 저자인 매쿼리대 릭 샤인(Rick Shine) 교수는 “포유류나 조류 같은 항온동물은 체온을 유지하는데 섭취한 음식의 에너지 90%를 소비한다”며 “변온동물인 뱀은 햇볕을 받아 체온을 올려 섭취한 음식을 살로 바꾸는 데 훨씬 효율적” 이라고 밝혔다. 같은 변온동물인 연어, 귀뚜라미도 사료요구율이 각각 1.5, 2.1로 낮았다.

 사료에 들어간 단백질량을 동물의 단백질 무게로 나눈 값도 뱀이 2.4로 다른 동물보다 작았다. 연어와 귀뚜라미는 각각 3과 10이었다. 항온동물인 소와 돼지, 닭은 각각 83, 38, 21로 훨씬 높았다. 기존 가축은 단백질을 키우려면 뱀보다 단백질 사료를 훨씬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동남아시아 비단뱀 농장. 비단뱀은 고기와 가죽, 지방과 담즙을 얻기 위해 사육된다. Daniel Natusch
동남아시아 비단뱀 농장. 비단뱀은 고기와 가죽, 지방과 담즙을 얻기 위해 사육된다. Daniel Natusch

폐기물 거의 없어 친환경 사육도 가능

 연구진은 뱀이 농가에 피해를 주는 설치류나 해충을 먹이로 삼기 때문에 사료를 제공하려고 농지를 개간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나투시 박사는 “특히 뱀은 최대 127일 동안 먹이를 먹지 않아도 체중이 0.004%밖에 줄지 않아 사료 공급이 어려워지는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축산 농가들은 가축들에게 제때 사료를 주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샤인 교수는 “상업적 뱀 농장의 투입물과 산출물, 비용과 편익을 처음으로 심층 분석한 결과”라며 “돼지보다 비단뱀을 키우는 것이 농민에게 경제적으로나 위기 적응력에서나 더 낫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뱀은 먹이를 찾지 않을 때는 좁은 공간에 가만히 있어, 기존 대형 축산 농가에서 문제 되는 동물 복지 문제도 없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뱀은 뼈까지 소화해 소나 돼지처럼 축산 폐기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가축은 분뇨와 트림, 방귀 등으로 메탄 같은 온실가스를 직접 배출한다.

 나투시 박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과 함께 야생동물 보전과 병립할 수 있는 비단뱀 사육 기술을 연구해 왔다. 비단뱀 사육이 투명하게 관리되면 관련 산업과 야생 비단뱀을 모두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전 세계에서 뱀 고기를 소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화적 장벽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뱀에게 먹일 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야 대량 사육이 가능하다. 뱀에게 먹일 쥐를 따로 사육해야 한다면 경제성이 떨어진다.

곤충은 가축 사료로 먼저 상용화

 전문가들은 비단뱀이 새로운 단백질원이 되려면 곤충 사육의 전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곤충 역시 뱀 같은 변온동물이어서 생산성이 높다. 물 소비도 적고 온실가스 배출 문제도 없다. 닭과 돼지는 절반 정도만 먹을 수 있지만, 귀뚜라미는 80% 이상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친환경 고단백질이라고 해도 곤충을 극도로 꺼리는 서구에서는 식품으로 소비하기에는 문화적 장벽이 있다. 대신 서구 국가들은 가축 사료를 곤충으로 대체하는 데 집중했다. 사람이 먹을 가축이나 물고기를 곤충으로 키우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닭 배설물로 키운 집파리 구더기를 압착, 건조해 돼지 사료로 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세운 빌&멀린다게이츠재단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료용 곤충 공장을 지원했다. 전 세계 콩의 80% 이상이 가축 사료로 쓰인다. 곤충은 그 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영국 식품환경연구소는 1헥타르(1만㎡) 면적에서 1년에 콩 1t을 수확할 수 있지만, 곤충 단백질은 무려 150t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19년 바이오 기업 요라(Yora)는 영국 최초로 곤충으로 만든 반려견 사료도 출시했다. 물론 최종 목표는 사람이 먹는 식품이다. 2016년 미국에서 북미식용곤충연합이 출범했다. 회원사를 보면 대부분 과거 미끼용으로 곤충을 기르던 농가들이다. 미국 프로야구팀 시애틀 매리너스는 멕시코인이 즐겨 먹는 메뚜기튀김을 구장에서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2015년 농촌진흥청과 세브란스병원이 갈색거저리 유충을 이용한 암 환자용 식단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암 환자는 체력 유지와 상처 회복에 단백질이 필요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시험한 결과 곤충식을 먹은 환자는 일반식을 먹은 환자보다 체중 손실이 덜했다고 한다. 뱀 고기도 곤충처럼 사료를 거쳐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