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가운데 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왼쪽) 일본 총리 부부가 4월 10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 행사 도중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AFP연합
조 바이든(가운데 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가운데 왼쪽) 일본 총리 부부가 4월 10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 행사 도중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AFP연합

“한 세기 전에 일본이 선물한 3000그루의 벚나무 덕분에 매년 봄 워싱턴 D.C. 전역에 벚꽃이 피어난다. 이 멋진 벚꽃을 보기 위해 미국과 전 세계에서 여행을 온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벚나무는 일본과 미국 간 우정의 상징이다. 일본과 미국 동맹의 벚꽃 같은 유대는 계속 자라고 강해질 것이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4월 1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정상회담 환영식에서 만난 두 정상은 112년 전 일본에서 건너와 미국의 명물이 된 워싱턴 D.C. 포토맥강 주변의 벚나무를 언급하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일본은 1912년 미국에 약 3000그루의 벚나무를 선물했고, 포토맥 강변을 따라 심어진 이들 벚나무는 미·일 우호의 상징이 됐다.

기시다 총리와 부인 유코 여사는 4월 8일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공군 기지에 도착해 4월 14일까지로 예정된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일본 총리의 미국 국빈 방문은 2015년 아베 신조 전 총리 이후 9년 만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친밀한 모습이 연일 보도되면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이번 방문은 사상 최저 수준인20% 지지율로 궁지에 몰린 기시다 총리가 던진 승부수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동맹국과 경제·안보 유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싶어 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일본 공영방송 NHK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23%로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같은 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에 대한 부정 평가는 58%였다. 자민당이 4월 4일 비자금 스캔들 관련 의원 85명 중 39명만 징계 처분한 것과 관련해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졌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미 성과를 앞세워 4월 28일 세 개 중의원(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지율이 반전에 성공하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승리한 후 9월 총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겠다는 시나리오다.

바이든 대통령도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을 크게 따라잡았으나 아직도 다수 경합 주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선거 분석 업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에 따르면 경합 주인 애리조나주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평균 지지율은 44.5%로, 트럼프 전 대통령(49%)에게 밀렸다. 

우주·경제·바이오 등 70건 이상 합의 도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양국은 10일 정상회담을 통해 우주·경제·기술·기후·바이오· 외교·인도 지원 등을 포괄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70건 이상의 합의를 쏟아냈다. 우주 협력 분야에서는 일본 우주인이 달 탐사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인이 아닌 우주인으로는 최초로 달 착륙에 나서기로 했다. 양국은 인공지능(AI)·퀀텀·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일 양국은 정상 공동성명에서 △미사일 공동 개발과 공동 생산 등을 위한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에 관한 포럼(DICAS)을 소집하고 △평시 및 유사시 상호 운용성 강화 등을 위해 양국 군의 지휘·통제 체제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또 △극초음속 위협 대응을 위한 활공 단계 요격기(GPI) 개발 추진 방침을 재확인했으며 △미국·일본·호주 간 미사일 방어 체제 네트워크를 처음으로 구축하고 △미국·일본·영국 간 정기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키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국(일본)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기회를 얻는 것을 환영한다”며 미국은 일본이 추진하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지지 입장을 밝혔다. 

다만 두 정상은 양국 간 통상 현안인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기시다 총리는 “법에 따라 적절하게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노동자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기시다 총리의 미국 국빈 방문에 맞춰 투자 유치 소식도 전해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일본을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의 아시아 거점으로 정하고 29억달러(약 3조8900억원)를 투자한다고 4월 9일 발표했다. MS의 일본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앞서 챗GPT 개발사 오픈AI도 이달 중 도쿄에 아시아 첫 사무실을 만든다고 밝힌 바 있다.

MS는 이와 함께 일본의 AI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30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AI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일본 도쿄대·게이오대와 미국 카네기멜런대의 AI 연구 파트너십에 향후 5년간 1000만달러(약 134억3000만원)의 지원금을 제공할 예정이다. 

‘일본이 中 포위망 핵심’ 공감대 형성

안보 분야에서 기시다 총리는 미국 주도의 다자간 협력 구도의 중요한 일원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동맹국도 돕고 나섰다. 일본이 중국 견제를 위한 포위망 구축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미국과 영국·호주 3국의 군사동맹 오커스(AUKUS) 3국 국방 장관은 8일 공동성명에서 “일본의 강점 그리고 일본과 오커스 3국 간의 긴밀한 양자 국방 협력 관계를 인정한다”며 “일본과 오커스 ‘필러(pillar·기둥) 2’의 첨단 역량 프로젝트 협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커스가 외부 참여를 허용한 것은 2021년 출범 이래 처음이다. 필러 2는 △양자 기술 △AI와 자율 무기 △사이버 △극초음속과 대(對)극초음속 등 8개 핵심 방위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만남을 위한 미국 방문이었지만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나리오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일본 총리 관저의 한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대외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우리의 목적은 ‘만일 트럼프가 당선’이 돼도 일·미 관계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다자간 협력과 동맹 관계를 등한시했다. 나아가 일본이 독자적인 방어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미국과) 일본의 방위 협력이 정체될 위험이 있다”면서 기시다 총리의 이번 미국 방문에 “미·일이 손을 잡고 군사적 위협에 대항하는 체제를 정비하려는 생각이 엿보인다”고 해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무성의 한 간부는 닛케이에 “중국과 러시아의 대두로 이기적인 국제 정세 아래, 미국에서 어느 후보가 이기더라도, 일본이 안보에서도 경제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10일 저녁 백악관에서 국빈 만찬을 가졌다. ‘활기찬 봄 정원’이 콘셉트였다. 유리와 비단으로 만든 나비가 만찬 테이블을 장식했다. 

질 바이든 여사는 “나비의 우아한 비행은 양국이 변화의 바람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평화와 번영의 파트너로 함께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이날 미 대통령 전용차 ‘비스트’에 함께 타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연출했다. 

두 정상이 험난한 국내 정치의 도전을 극복하고 내년에도 나비의 비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