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에 입성하게 된 기업인, 경제 관료, 경제학자 등 ‘경제통 의원’이 10명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총선에서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들이 낙마했고, 경제 관료 및 경제학자 출신도 고배를 마시면서 총 18명만 당선됐다. 국회의원 300명 중 6% 수준이다. 앞서 제21대 국회에 입성했던 경제통 의원은 20여 명이었다. 제21대 국회 또한 양적으로는 30명 이상이 포진했던 이전 국회보다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대형 증권사 사장, 국책 연구원 원장 출신 경제학 박사들이 여기저기 포진했었다. 그러나 제22대 국회에서는 경제 이론에 해박한 전문가를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당별 경제통 후보 생존율(비례대표 포함)을 살펴보면, 26명이 출마한 국민의힘에선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장관 등을 포함해 10명(약 38.5%)만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경제통 후보 총 16명이 출마해 안도걸 전 기재부 2차관을 비롯해8명(50%)만 살아남았다. 개혁신당과 무소속 후보 5명은 모두 낙마했다.
대기업 출신 당선인 드물어
이번 총선에 당선된 재계 및 기업 출신 후보는 국민의힘의 고동진, 최은석, 조정훈, 박충권 등 4명과 더불어민주당의 이언주 등 총 5명이다.
우선 국민의힘의 대표적인 기업인 출신 후보였던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보수 텃밭’ 서울 강남구병에 출마해 당선됐다. 상대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박경미 후보였다. 고 당선인은 삼성전자에서 개발자로 시작해 이른바 ‘갤럭시 신화’ 를 이끌며 삼성 스마트폰의 사령탑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CJ제일제당 대표를 지냈던 최은석 후보도 대구 동구군위군갑에서 무난하게 당선됐다. 그는 2004년 CJ에 입사해 CJ대한통운 경영지원실장, CJ 경영전략총괄 등을 역임하며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재계에선 재무·전략통으로 통한다.
서울 마포갑에 당선된 조정훈 후보는 공인회계사로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던 인물이다.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된 박충권 후보는 탈북자 출신 공학도로 현대제철 연구개발본부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 국민의힘 인재 영입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의 기업인 출신 당선인은 국민의힘에 갔다가 7년 만에 복당(復黨)한 2선 출신 이언주 후보가 유일하다. 이 당선인은 과거 에쓰오일에서 30대에 상무 자리에 올라 최연소 여성 임원 기록을 쓴 기업인 출신이다. 그러나 변호사 자격을 갖고 법무임원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기업 경영 전문가라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경기 용인정에 출마해 국민의힘 기업인 1호 영입 인사였던 강철호 전 현대로보틱스 대표를 제치고 승리를 거뒀다.
강 후보를 비롯해 낙선의 고배를 든 기업인 출신 후보가 적지 않다. 국민의힘에선 효림그룹 회장 출신 한무경(경기 평택시갑),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 한정민(경기 화성시을), 소룩스 대표 출신 김복덕(경기 부천시갑) 후보 등이 낙마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경기 화성시을에 출마한 현대차 사장 출신 공영운 후보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에게 패했다. 이 밖에도 엔씨소프트 전무 출신 이재성(부산 사하구을)부터 금융인 출신 김병욱(경기 성남시 분당구을), 한용산업 대표 출신 이재한(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군) 후보도 당선되지 못했다. 삼성전자 상무를 지냈던 양향자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경기 용인시갑에 출마했지만, 득표율 3위로 낙선했다.
희비 엇갈린 기재부 출신
기재부 출신 12명 후보도 이번 총선 레이스에 참가해 7명(국민의힘 5명·더불어민주당 2명)이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이례적으로 이번 총선에서 기재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역임했던 후보가 4명이나 나왔는데, 2명(송언석·안도걸)이 영호남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국민의힘 당선인부터 살펴보면, 직전까지 경제사령탑을 맡았던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대구 달성군 지역에서 3선에 성공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추 당선인은 미국 오리건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행정고시 25회로 입직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공사참사관,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기재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정통 경제 관료로 통한다. 역시 3선에 성공한 경북 김천의 송언석 당선인은 기재부 예산실장, 2차관을 역임해 예산실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 관료로 통한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출마한 이종욱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황기철 후보를 누르고 신승했다. 그는 기재부 국토해양예산과장, 국고국장, 기획조정실장, 조달청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 강남구을 박수민 당선인 역시 기재부 재정분석과장·조세지출예산과장을 거친 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 근무 후 공직을 마쳤다. 인공지능(AI) 솔루션 기업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부산 북구을의 박성훈 당선인은 기재부 기획조정실 과장, 세제실 과장, 기재부 국장 출신으로, 부산시 경제부시장, 해양수산부 차관을 지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안도걸 당선인이 ‘호남 정치 1번지’로 불리는 광주 동구·남구을에서 당선됐다. 안 당선인은 기획예산처 제도관리 과장,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실 선임 행정관,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 복지예산심의관, 예산실장 역임 후 기재부 2차관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광주 서구갑에서 당선된 조인철 당선인도 기재부 출신으로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을 지냈다.
낙선한 기재부 출신 후보도 5명에 이른다. 국민의힘 후보로 경기 수원시병에 출마했던 기재부 예산실장·2차관 출신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김완섭(강원 원주시을) 전 기재부 예산실장·2차관도 당선하지 못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최경환(경북 경산시) 전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조지연 국민의힘 후보에게 석패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권오봉(전남 여수시을) 전 여수시장, 김병규(경남 진주시을) 전 경남 경제부지사도 낙선했다.
반면, 국토교통부 출신들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차관 출신인 손명수(경기 용인시을) 전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 재선에 성공한 맹성규(인천 남동구갑, 전 2차관), 정일영(인천 연수구을, 전 교통정책실장) 등이다. 경기 이천시에서 3선에 성공한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도 국토부 국장 출신이다. 국세청 출신으로는 경기 수원갑에 출마한 김현준 전 청장이 낙선했지만, 임광현 전 국세청 차장은 더불어민주연합 비례 4번을 받아 의원 배지를 달게 됐다.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부산 중·영도구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KDI 등 국책연구소 출신 전멸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경제학자 출신 후보들도 이번 총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국내 대표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출신 국민의힘 후보들은 모두 낙마했다. 윤희숙(서울 중·성동구갑), 이혜훈(서울 중·성동구을), 유경준(경기 화성시정) 후보 등은 선수 늘리기에 실패했다. 한국 금융연구원장 을 지낸 윤창현(대전 동구) 의원도 재선에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출신 이재영 후보가 경남 양산시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립안동대 교수 출신 김상우(경북 안동시 예천군) 후보도 낙선자에 이름을 올렸다. 무소속으로 경기 용인시갑에 출마한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우제창 후보도 낙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