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사진 뉴스1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사진 뉴스1

샘 뱅크먼-프리드는 미국 MIT를 나온 수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였고 스탠퍼드대 안에 있는 집에서 자랐다. 그는 MIT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그 후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트레이더로 일하며 금융을 익혔고 ‘알라메다 리서치’라는 투자회사를 창업했다. 이때 하루에만 100만달러(약 14억원)의 수익을 올릴 정도로 큰돈을 벌었다. 드디어 2019년 4월에는 바하마에 본사를 둔 암호화폐거래소 ‘FTX’를 창업했다. 뱅크먼-프리드의 명성, 기술력, 과감한 홍보로 순식간에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로 급부상했다.

2021년 10월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순자산은 260억달러(약 35조9370억원)였고 당시 미국 부자 순위 25위에 도달했다. 그가 서른 살이 되기 직전에 이런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암호화폐 ‘테라-루나’ 사태와 맞물려 암호화폐가 폭락했고, 업계 붕괴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그는 수십억달러를빼돌려 알라메다 리서치의 부채를 메우고 긴급 대응에 나섰으나 결국 고객 돈을 돌려줄 수 없게 돼 파산 신청을 했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인하대 경영학 박사, 현 멘토지도자협의회 회장, 전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그는 사적 용도로 부동산, 호화 아파트 등을 사들이고 유력 정치인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기부하는 등, 경영 부실을 자초했다. 미국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선 캠프의 개인 후원자 중 두 번째 고액 기부자였다. 회사에는 아예 이사회가 없고 개인 독점 지배 구조로 독단적 의사결정을 했다. 여자 친구를 회사 대표로 앉혔다. 결국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25년에 전 재산을 몰수당하는 판결을 받았다.

판사가 평결하면서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사업 목적이 사치와 권력 추구에 있었다.” 젊은 나이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하던 뱅크먼-프리드는 지금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

한국인 권도형은 누구인가. 1991년생인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복수 전공했다.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 웅변과 토론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수재 소리를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에서 인턴을 하고 2015년 와이파이 공유 스타트업 ‘애니파이’를 창업했다. 2018년엔 암호화폐 발행사인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해 테라와 루나를 발행했다. 2019년 포브스 선정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인에 선정됐고, 루나 코인 급상승으로 승승장구하며 여러 언론에 천재 사업가로 보도됐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한국의 일론 머스크라고 치켜세웠다. 거기까지였다.

2022년 4월 테라-루나 동시 대폭락 사태가 벌어지면서 피해자가 속출했고 그는 세계적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그는 잠적해 세계 곳곳을 떠돌다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신병 인도를 요청한 상태인데, 어느 쪽에서 재판받든지 중형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게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다.

천재들이 사업을 하면 왜 몰락할까. 순수과학과 순수예술계에서는 천재들이 큰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천재들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현실은 대체로 그 반대다. 한때 기업사례연구학회 회장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살펴보니 오너 경영자들보다는 그들이 채용한 전문경영자나 임원이 학력도 더 좋고 더 똑똑했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듣던 사람은 핵심 역량은 잘 갖출 수 있지만, 협업 역량은 크게 떨어진다. 머리가 좋고 역량이 뛰어나니 어지간한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월감이 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 모든걸 혼자 구상하고 결심하려 한다. 독단·독선·독점이라는 3독 증상이 강하다. 사업에서는 독(獨)이 독(毒)이고 협(協)이 약(藥)이다. 사업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게 팀워크고 협업이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서 힘을 합치는 능력이 좋아야 한다. 

천재는 순수과학, 순수예술을 하면 성공한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 대개 망한다. 협업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스펙과 역량이 다소 부족해도 협업을 잘할 줄 아는, 그릇이 큰 사람이 진짜 사업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