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이 급속 성장하면서 탈중앙화된 금융시장을 뜻하는 디파이(DeFi·탈중앙 금융)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디파이는 암호화폐를 이용해 은행·증권사 등 금융기관 없이 사람들끼리 암호화폐를 이체하거나 대출해 주고 보험에 가입하는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생태계다.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금융 서비스가 발전한 게 현재의 금융시장이라면, 디파이는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형성된 금융 서비스를 통칭한다.

하지만 기자가 디파이를 직접 이용해 본 결과는 참담했다. 수수료가 만만치 않아 소액으로 재테크하기에는 비효율적이었다. 신뢰할 만한 정보도 찾기 어려운 데다 클릭 실수 한 번에 모든 암호화폐를 영영 잃어버릴 위험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디파이가 안전성·신뢰성을 제고하지 않으면 대중화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자가 20만원으로 도전한 디파이 프로젝트는 ‘리도(Lido)’였다. 리도는 이더리움을 예치(스테이킹)하면 보상으로 예치한 이더리움의 3~5%를 이더리움으로 돌려주는 프로젝트다. 예치한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검증’에 활용된다. 내 이더리움을 빌려준 대가로 이자 명목의 수익을 받는 셈이다. 은행 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은행이 이 돈으로 수익을 내고 수익 중 일부를 이자로 돌려주는 것과 유사한 구조다. 디파이 분석 사이트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리도에 예치된 암호화폐 규모는 4월 18일 기준 282억달러(약 38조9780억원)로, 디파이 프로젝트 중 1위다.

디파이 프로젝트 중 총예치 금액(TVL) 규모 1위인 리도(Lido)의 홈페이지 화면. 사진 리도
디파이 프로젝트 중 총예치 금액(TVL) 규모 1위인 리도(Lido)의 홈페이지 화면. 사진 리도

수수료 아끼는게 중요

예치 방법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빗썸 등에서 이더리움을 구매하고 이를 리도 측이 제시한 암호화폐 지갑으로 전송하면 된다. 현금을 은행 계좌에 입금하듯, 소유한 이더리움을 지갑으로 이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리도를 직접 이용할 수 없다. 이더리움을 국내 거래소→해외 거래소→개인 지갑→리도 지갑 순서로 전송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문제는 이더리움을 전송할 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업비트 기준 이더리움을 전송하려면 0.01이더리움(약 4만8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원금(20만원)의 20%가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어떤 디파이가 가장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지보다 수수료를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가 암호화폐 재테크의 핵심인 것이다.

수수료를 최소화하기 위해 또 다른 암호화폐인 ‘리플’을 이용하기로 했다. 리플은 전송 수수료가 1리플(약 850원)로 이더리움보다 저렴하다. 국내 거래소에서 20만원어치의 리플을 구매해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전송하고, 이를 이더리움으로 교환(스와프)한 뒤 다시 개인 지갑으로 보내 리도에 예치하는 방식이다.

리도에 예치할 이더리움 수량을 정하는 화면. 기자가 보유한 이더리움은 0.0355개이지만, 수수료(gasfee)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 예치 가능한 이더리움은 0.028개로 표시된다. 사진 리도
리도에 예치할 이더리움 수량을 정하는 화면. 기자가 보유한 이더리움은 0.0355개이지만, 수수료(gasfee)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 예치 가능한 이더리움은 0.028개로 표시된다. 사진 리도

이 과정에서 발생한 총수수료는 0.006이더리움(약 2만8000원)과 1리플이었다. 수수료가 원금의 14%나 됐다. 이더리움을 리도에예치한 4월 3일 기준 리도의 리워드 수익률은 3.13%였다. 리워드를 10번 이상 받아야 낸 수수료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수수료는 예치 당시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몇 초 만에 비싸지거나 저렴해져서 낸 수수료가 합리적인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예치 이후 2주가 지났지만 3%의 손실만 본 채 암호화폐 재테크는 막을 내렸다. 예치 대가로 이자 명목의 이더리움을 돌려받았지만, 그사이 이더리움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체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글로벌 코인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더리움 가격은 기자가 예치를 완료했던 4월 3일 3300달러(약 456만원)에서 4월 18일 3000달러(약 414만원)로 하락했다. 

금융 사고는 모두 고객 책임

디파이 이용 과정에서 수익률보다 더 큰 문제점은 안전성이다. 디파이는 은행 같은 통제 기관이 없다. 잘못된 은행 계좌에 돈을 이체하는 착오 송금을 포함한 모든 금융 사고는 고객이 책임지는 구조다. 암호화폐를 전송하는 과정에서 대·소문자 알파벳과 숫자 42개로 이뤄진 지갑 주소를 하나라도 잘못 써넣으면 입금한 암호화폐를 영원히 찾을 수 없다.

암호화폐 지갑을 만들어주는 메타마스크는 지갑을 생성한 기자에게 공인인증서와 유사한 12개의 영어 단어로 구성된 ‘비밀 복구 문구’를 제시했다. 메타마스크는 지갑 계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 문구가 없으면 암호화폐가 보관된 지갑을 영영 찾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자신들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문구를 석판에 새기는 등 현물로 안전하게 보관할 것을 추천했다. 언제든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을 수 있는 전통 금융시장보다 효율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디파이가 정말 금융의 미래가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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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이 프로젝트는 3617개나 되지만, 믿고 활용 가능한 프로젝트는 제한적이다. 프로젝트 중 1979개는 총예치 금액(TVL)이 1만달러 미만이고, 0달러인 프로젝트도 688개나 된다. 특히 해킹·러그풀 등 공격에도 여전히 취약하다. 앞서 이더리움을 예치하고 코인· 토큰을 빌리는 담보대출 서비스를 제공했던 오일러 파이낸스는 2023년 3월 해킹 공격을 받아 1억9700만달러(약 2722억원)의 피해를 봤다. 이 영향으로 6달러였던 토큰 가격이 2달러로 폭락했고, 피해액 중 절반 수준인 1억1000만달러(약 1520억원)만 반환된 채 사건은 마무리됐다.

김지혜 쟁글 리서치센터장은 “비트코인 가격이 전 고점을 경신했는데도 불구하고 디파이 예치금 규모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메타마스크 같은 암호화폐 전용 지갑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대부분 서비스가 영어로 되어 있어 일반 투자자가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프라이빗 키’를 직접 관리하고 수수료를 내면서 사용해야 하는 디파이는 구조적 리스크 극복과 더불어 사용자경험(UX) 개선이 필요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