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은 폐쇄된 딜링룸에서 멋진 헤드기어를 쓰고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외환딜러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환율은 우리의 관심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환율은 편의점의 라면에서부터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자국 통화의 대외 가치가 약한 신흥국 국민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매일 환율 변동의 부침에 떠밀려 다녀야 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 화폐의 황제인 달러를 보유한 미국인은 환율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까. 입장을 바꿔 미국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가계 살림살이

강한 달러는 미국이 수입하는 물건을 더 싸게 만든다. 그것은 미국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낮추고 생활비를 낮춰준다. 강한달러는 미국인이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인이 삶의 질을 해치지 않고 더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그들은 비 오는 날(사고)이나 은퇴에 대비해 저축할 여력이 생긴다. 한 줌의 퇴직금과 국민연금만 바라보는 신흥국 국민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에 비해 약한 달러는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건의 가격을 상승시킨다. 주변의 캐나다, 멕시코 등에서 수입하는 채소, 청바지 등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되므로 생활 수준이 낮아진다. 약한 달러는 달러의 구매력을 잠식하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이것이 2022년 3월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한 이유 중 하나다.

석유 가격

달러 강세, 즉 다른 나라 통화에 비해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하락한다. 왜 그럴까. 미국 휘발유 가격의 70% 이상이 국제 유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모든 석유 계약은 달러로 체결된다. 전 세계 석유의 대부분을 판매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통화 리얄화를 달러에 고정시키고 있다. 사우디처럼 달러와 자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고정시키는 것을 ‘쐐기를 박는다’ 는 의미에서 페그(peg)라고 부른다. 악어의 등에 올라탄 악어새가 되는 것이다.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면 리얄화 가치도 상승한다. 이것은 사우디에서 수입하는 생필품 가격을 더 싸게 만든다. 

따라서 사우디는 달러가 상승할 때 유가를 낮출 여유가 생긴다. 이에 반해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석유 가격이 상승한다. 달러에 페깅된 리얄화도 약세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유 판매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석유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 사우디는 수입하는 생필품 가격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석유 수출을 더 늘려야 한다. 최근 미국 달러가 강세로 돌아섰지만,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것은 코로나19 해제 이후 미국인의 국내 이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환율 효과를 압도해 버린 것이다.

산업과 일자리

강한 달러는 미국의 수출 기업에 좋지 않다. 그것은 미국 수출 업체가 더 적게 수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그럴까. 강한 달러는 미국 제품을 외국 제품에 비해 더 비싸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속되면 경제성장이 둔화한다. 이것은 미국 기업이 해외에서 일자리를 아웃소싱하게 만든다. 통상적으로 외국 근로자는 달러 대비 약한 자국 통화로 급여를 받기 때문에 미국 기업의 입장에서 비용이 적게 든다. 강한 달러는 미국 내수 기업에도 피해를 준다. 그들은 더 저렴한 수입품과 경쟁하게 된다. 미국 소비자는 비싼 미국산보다 저렴한 수입산을 선호하게 된다. 미국 제조 업체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 상품 가격 인하는 기업의 수익성이 둔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강한 달러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경제성장이 둔화하면 미국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든다. 최근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를 저울질하는 이유다.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돈의 불장난’‘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신상준 한국은행 이코노미스트
연세대 법학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 박사, ‘중앙은행과 화폐의 헌법적 문제’‘돈의 불장난’‘국회란 무엇인가’ 저자

대출

강한 달러는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해외 국가가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구입한다. 미국 국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데다 이자까지 지급한다. 다른 나라가 미국 통화를 보유하는 이유는 자국의 무역 업체가 미국 기업과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 무역 대금의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된다.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 미국 국채 가격이 상승하고 미국 국채 금리(수익률)가 낮아진다. 이자 수입은 고정돼 있는데 투자 원금이 많아지기 때문에 국채 수익률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국채 수익률이 낮아지면 신규 발행되는 국채 금리도 낮아지게 된다. 이런 국채 금리는 다른 채권 금리, 특히 모기지(주택대출) 금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중장기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주택 대출 금리도 함께 오른다. 국채 수익률이 떨어지면 모기지 이자율도 함께 하락해 주택 융자가 더 저렴해진다. 이런 금리 하락은 사람들이 주택 건축과 구매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만드는 유인이 된다. 부동산 수요가 증가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촉진된다. 

반면 달러 약세는 미국 내 금리 상승을 의미한다. 여기서 금리는 중앙은행이 마음대로 주무르는 기준금리가 아니라 시장에서 형성되는 시장금리를 의미한다. 우선, 달러 약세는 국채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더 많은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채 금리를 인상하려 한다. 그리고 달러 약세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하기 때문에 연준은 연방기금 금리를 인상하려 한다. 연준의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2% 이내로 잡아두는 것이다. 최근 어느 신흥국의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3%를 웃돌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거의 돈을 풀지 않았으면서도 천문학적인 헬리콥터 머니를 뿌린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물가상승률을 달성한 신흥국 중앙은행의 재능이 부럽다.

주식 투자

강한 달러는 미국 주식시장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해외 투자자는 미국 경제가 강하다고 생각할 때 달러를 산다. 이 경우 해외 투자자가 주식시장을 통해 미국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도 커진다. 반면에 강한 달러는 미국 주식을 비싸게 만든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이익이 남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는 미국 주식 매입을 주저하게 된다. 해외 투자자가 이미 미국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달러 약세가 도움이 된다. 기보유 주식의 가치가 환율 덕분에 더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는 수출에 도움이 된다. 수출 증가는 경제성장을 강화한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 주식과 비교해서 미국 주식을 더 싸게 만든다.

해외여행

환율은 해외여행자가 목적지에서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을 알려준다. 달러가 강하면 미국인은 해외에서 더 많은 것을 구매할 수 있다. 달러가 약하면 미국인이 해외에서 구매하는 모든 물건이 비싸진다. 달러가 약해지면 미국인은 해외여행을 연기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환율의 영향을 회피하는 방법도 있다. 사우디, 홍콩처럼 자국 통화를 달러에 페그한 국가로 여행하는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달러가 하락하더라도 여행 비용이 더 비싸지지 않는다. 지금은 달러가 강해서 미국인이 전 세계 어느 나라로든 여행하기 좋은 시기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이 빠졌다. 환율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교환(exchange) 비율(rate)이다. 무엇의 교환 비율일까. 돈과 돈의 교환 비율, 즉 돈의 가격이다. 금본위제하에서는 대내 환율(금과 종이돈의 교환 비율)과 대외 환율(자국 종이돈과 외국 종이돈의 교환 비율)이 모두 존재했다. 하지만 1971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금 불태환 선언(달러를 가져오더라도 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국가부도 선언) 이후 지구상에서 금화가 사라지고 종이돈만 남게 됐다. 그래서 오늘날 경제학자들이 환율을 말할 때면 대외 환율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