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로 시작된 정부와 의사 단체의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디지털 진료와 의료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 진료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그동안 의사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왔다.

비대면 진료 반대의 근거는 환자의 안전이었다.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한 AI가 잘못 진단하면 환자에게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전공의 파업이 이어지자 결국 2024년 2월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 경보를 최고 단계 ‘심각’ 수준으로 격상하고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기로 했다. 정말 의사들이 우려한 만큼 AI 진료와 의학이 못 믿을 수준일까.

의사 면허 시험도 척척 통과한 AI, 말하는 것만 들어도 치매 판단한다

해외에서 의료 AI를 바라보는 시각은 우려가 아닌 기대 수준이며, 훨씬 효율적 업무와큰 경제적 가치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의료 AI를 전 세계에 배포할 경우, 미국에서만 연간 의료비 지출 총액 4조5000억달러(약 6219조원, 또는 GDP의 약 17%) 중 2000억~3000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또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거의 1000만 명에 이르는 의료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고, 이미 매년 약 80만 명의 미국인이 오진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는 통계가 집계됐는데, 해당 매체는 AI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썼다.

AI가 진단하는 미래의 의료. 챗GPT가 만든 일러스트
AI가 진단하는 미래의 의료. 챗GPT가 만든 일러스트

특히 헬스케어 부문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은 생성 AI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에 따르면, 선도적인 헬스케어 기업 중 75%가 이미 생성 AI를 도입해 헬스케어 혁신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령 환자의 생체 데이터를 생성 AI에 입력하면 AI가 이를 분석해 맞춤형 진단을 내려줄 수 있다. 병원이나 보험사의 고객 데이터도 생성 AI를 활용한다면 금세 취합하거나 처리할 수 있다. 121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선 90% 이상이 올해 생성 AI가 헬스케어 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AI를 통한 실제 진료도 이미 일반 전문의 수준과 비슷하거나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오픈AI의 챗GPT는 미국과 일본의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했다. 2023년 1월 챗GPT는 미국 의사 면허 시험(USMLE)에서 생화학, 진단 추론, 생명윤리 등 세 개 과목에서 52.4∼75.0% 정답률로 합격권에 들었다. 또한 챗GPT는 말하는 패턴만으로도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80%의 정확도로 선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UCSD) 퀄컴연구소 존 에이어스 교수팀에 따르면, 의사와 챗GPT 중 진단의 질과 공감도 모두 챗GPT 쪽이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를 2023년 5월 발표한 바 있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선정한 동일한 내과 분야 질문에 이들이 도출한 답변을 전문가에게 비교 평가하게 했는데, 어느 것이 의사의 답변이고 어느 것이 챗GPT의 답변인지 알 수 없도록 블라인드 처리했다. 그 결과 전문가 평가 중 79%가 챗GPT의 진단이 의사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AI는 의료 영상 판독과 의료 기기에 알고리즘을 접합해 환자의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의사에게 알리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영상 촬영 결과물 분석 쪽의 진보가 두드러지는데, X-ray, MRI, CT, 초음파 영상, 내시경 영상이나 이미지를 AI가 분석하고 사용자에게 질환 발생 여부를 분석해 준다. 다만 현장에서 AI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 아직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질환마다 AI 판별과 정확도가 큰 차이를 보여서인데, 예를 들어 초기 유방암 검진율은 정확도가 90%에 육박하지만, 기흉 판독 정확도는 60%에 불과한 식이다.

AI가 진단하는 미래의 의료. 챗GPT가 만든 일러스트
AI가 진단하는 미래의 의료. 챗GPT가 만든 일러스트

10년 걸리는 신약 개발도 AI 덕분에 속도↑ "그래도 넘어야 할 장애물 많아"

제약 분야에서도 AI가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 신약 개발 시 AI 데이터 마이닝과 표적 분자 구조 분석 등을 통해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정확성과 예측성을 향상하고 속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해외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노바티스가 개인 맞춤형 황반변성 치료제,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개발을 마치고, 약물 디자인 등을 AI로 활용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한 상태다. 국내에서는 동아제약, 한미약품 등 제약 기업들이 AI 기술 기업들과 연달아 업무 협약을 맺었다.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역시 제약 분야에서 AI 확장성을 강조한 바 있다. 허사비스 CEO는 올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에서 “범용인공지능(AGI)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확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만큼, 2~3년 내 AI가 설계한 약을 병원에서 보게 될 것”이며 “AI는 신약 개발에 평균 10년이 걸리는 것을 수개월 정도로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AGI란 컴퓨터로 사람 같은 또는 그 이상의 지능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의료 서비스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특히 의료와 제약, 바이오라는 분야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기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AI의 오류나 실수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AI 의료의 장벽의 수많은 걸림돌 중 대표적인 것은 의료 빅데이터다. AI 답변은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가 입력될수록 정확도가 올라간다. 그러나의료 데이터는 환자의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나라에서 파편화되어 있으며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로버트 슈멀링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3월 27일(현지시각) ‘하버드 헬스 퍼블리싱’에 실은 글을 통해 “정확성에 대한 확실한 검증과 의료 전문가 감독 없이 환자가 AI 답변에 의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UCSD 퀄컴연구소의 연구 결과 역시 실제 정확성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다. 챗GPT에 직접 물어봐도 (자신의 진단보다는) 의사가 낫다고 답변했다”고 지적했다.

AI에 입력하는 데이터가 잘못될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I가 고도로 발달해 의사만큼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해도 입력하는 데이터에 문제가 생기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하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된다.

‘이코노미스트’는 AI 도입으로 불거질 비용 절감 이슈와 혁신을 따라가지 못할 정부 규제 당국도 걸림돌로 꼽았다. 현 의료 체계는 서비스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AI 도입 시 비용과 복잡성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AI를 사용할 경우 얻을 방대한 이점이 있기 때문에 극복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