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미국 보스턴대 글로벌 개발정책센터(GDPC)는 지난 2월 낸 보고서에서 전 세계 62개 개발도상국이 전면적 부채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이들 국가는 현재 부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거나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이며, 예상 정부 수입과 예상 수출액 대비 부채 상환 부담이 높은 상태다. 보고서는 “주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개발도상국의 상황이 심각하다”며 “실제로 대부분의 신흥개발도상국은 추가 차입 여력이 없거나 신용 시장에 대한 접근이 제한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전 세계 금리가 급등하고 코로나19 이후에도 경제 회복이 부진한 상황에서 기후변화 비용까지 커지며 정부 수입의 2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사용하는 국가가 역대 최고에 육박했다고 GDPC는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면적 부채 위기를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 62개국 중에서 상환해야 할 부채의 절반을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개발은행에 갚고 있는 국가는 21개국이다. 부채의 절반을 중국에 상환하는 국가는 14개국, 주요 채권국들의 모임 파리클럽 서방 국가들에 돈을 갚고 있는 개발도상국은 12개국, 국제금융 자본시장에 빚을 상환 중인 경우는 11개국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들 국가에 대한 부채 구조조정, 다른 국가들의 자본 비용을 줄이기 위한 조치, 글로벌 금융 구조의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세계는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순간에 직면했다. 본질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부채와 환경 위기를 줄이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필자 역시 코로나19 이후 개발도상국 부채 위기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국제사회에서 이 의제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발생 이후 공공 부문 부채 취약성은 개발도상국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금리 인상과 국제 자본시장 접근에 제한받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했으며, 현재는 심지어 지급 능력이 있는 국가들조차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은 향후 몇 년간 개발도상국의 부채 수준이 2019년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저소득·중위 소득 국가들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에는 처하지 않더라도 부채 스트레스를 계속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심각성은 국제 협력 의제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는 개발 금융에 관한 중요한 제안들이 진전됐지만, 저소득 및 중위 소득 국가의 부채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세계는 여전히 이런 광범위하고 반복적인 문제를 다룰 포괄적인 채무 재조정 메커니즘이 부족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적 채무 재조정 메커니즘인 ①파리클럽은 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중심으로 22개 회원국의 국채만을 다룬다. 때때로 다자간 대출 기관과 외국 정부는 국가 부채 위기에 임시 대응책을 채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위기 이후 미국이 주도한 ②브래디 플랜은 일부 국가의 부채를 줄이고 개발도상국을 위한 국채 시장 발전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됐다. 또한, 1996년 IMF와 세계은행은 저소득 국가에 절실히 필요한 구제를 제공하기 위해 ③과다채무빈국(HIPC) 이니셔티브를 시작했고, 2005년에는 과다 채무 빈곤국에 대한 채무 탕감 지원 사업(MDRI) 등 이니셔티브로 이를 보완했다.

구조조정 절차를 개선하기 위한 다른 사후 대응 조치도 있었다. 1994년 멕시코 위기 이후 ④OECD G10은 채권 계약에 집단행동조항(CACs)을 도입하고, 필요한 경우 채권 보유자의 과반수가 동의하면 약관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2013년 그리스 채무 위기 이후 유럽연합(EU)은 회원국의 채권 계약에 CACs를 포함하도록 의무화해 여러 사안에 대한 공동 재협상을 용이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개혁에도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이 발행하는 국채의 절반가량에 CACs가 포함되지 않았고, 채권 계약과 다른 채무 계약 사이 비호환성 때문에 채권자들은 여전히 과반수(동의)를 막을 수 있다.

IMF는 2001~2003년에 국가 채무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제안된 메커니즘은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신속하고 질서정연하며 예측 가능한 절차를 통해 지속 불가능한 대외 부채를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더욱이 감독 기구는 IMF 집행이사회와 이사회로부터 독립적이 되도록 했다. 결국 미국과 일부 개발도상국(특히 브라질과 멕시코)이 이 이니셔티브를 거부했다. 그들은 이 메커니즘이 자본시장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것을 우려했다. 팬데믹 기간 공공 부채가 급증하자 G20과 파리클럽은 저소득 국가를 위한 채무 상환 유예 이니셔티브(DSSI)를 만들었고, 2020년 5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73개 대상국 중 48개 국가의 채무 상환을 중단했다. 이어 2020년 말에는 DSSI 대상국에 채무 탕감을 제공하기 위한 공통 프레임워크를 승인했다.

분명한 것은 국채 구조조정을 위한 영구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주목하지 않으면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필요한 구제를 받지 못할 것이다.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
대학원 교수전 콜롬비아 재무부 장관,
전 UN 경제사회담당 사무차장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컬럼비아대 국제공공정책 대학원 교수
전 콜롬비아 재무부 장관, 전 UN 경제사회담당 사무차장

그러나 지금까지 이 프레임워크에 따라 합의에 도달한 국가는 가나, 잠비아, 차드 등 3개국뿐이며, 에티오피아는 신청 이후 진전이 거의 없는 상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잠재적 수혜국들은 신용 등급 하락에 대한 우려로 참여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한 것은 국채 구조조정을 위한 영구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되도록 유엔(UN) 관리 아래 있는 제도적 메커니즘이어야 한다. IMF도 이런 메커니즘을 운영할 수 있지만, 2003년에 제안된 것처럼 분쟁 해결 기구가 기금의 집행이사회 및 이사회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재협상 프레임워크는 자발적 재협상, 조정, 중재의 3단계 프로세스를 요구해야 하며, 각 프로세스에는 명확한 기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법적 메커니즘은 길고 복잡한 협상을 거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임시 기구는 필수적인 보완책이다. 이를 위해 유엔과 다른 기관들은 구조조정 기간을 명확하고 짧게 설정하고, 협상 기간 채무 상환을 유예하며, 명확한 절차와 규칙을 수립하고, 민간 채권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자격을 중진국까지 확대하는 개정된 공통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구조조정 후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계약에는 만기 및 이자율 조정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채무 감면도 포함해야 한다. 

앞서 제안했듯 IMF, 세계은행 또는 지역 다자개발은행(MDBs)이 지원하는 메커니즘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주관 기관은 재협상 틀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자금 조달을 촉진하고 관련 국가의 거시경제 불균형을 해결하며, 구조조정 과정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채권이 발행될 경우에는 브래디 채권처럼 보증서를 첨부해야 한다. 

2005년 시행했던 저소득 국가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처럼 MDBs와 IMF에 대한 부채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있다. 이들 기관은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고부채 저소득 국가가 진 부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므로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손실을 충당하기 위해 개발 원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중국을 포함한 새로운 공적 대출 기관과 다양한 형태의 채무 계약이 늘어나면서 공적 채권자와 사적 채권자의 전통적인 분리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공평한 채권자 대우를 보장하고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적 및 공적 채권자와 모든 채무를 포괄하는 글로벌 채무 등록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은행 등은 미래 부채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경제 상황이나 원자재 가격에 따라 수익률을 조정하는 국채를 광범위하게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경기 침체기에 국가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주목하지 않으면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필요한 구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부채 구조조정은 올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과 2025년 스페인에서 열리는 제4차 국제개발금융회의에서 최우선 정책 과제로 다뤄져야 한다. 

Tip

파리클럽은 세계 22개 채권국 비공식 그룹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도국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파리클럽 회원국은 채무국에 빌려준 자금 규모와 채무 조건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이 가입해 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회원국이다. 

브래디 플랜은 1989년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이 부채 위기에 빠졌을 때 당시 미 재무 장관인 니콜라스 브래디가 제안한 개도국 채무 구제 방안이다.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의 채무를 일부 탕감해 주고 30년 만기의 채권인 ‘브래디 본드’를 발행해 채무 상환을 도왔다.

1996년 세계은행은 IMF와 ‘과다채무빈국(HIPC)’ 부채 탕감 프로그램을 집행했다. 전체 혹은 부분 지원을 받은 36개국은 대부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최빈국이다.

OECD G10은 OECD 내 선진국 모임이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5개국을 비롯해 캐나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 11개국이 회원국이지만, 관습상 G10으로 불린다. G10 그룹은 OECD 내 경제정책위원회 산하의 비공식 실무 기구로, 국제통화 및 금융정책을 협의한다. 사실상 OECD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기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