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사진 셔터스톡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사진 셔터스톡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서기 284년부터 305년까지 21년간 로마를 통치한 제43대 황제였다. 그는 50년간 20명이 넘는 황제를 등장하게 했던 군인 황제 시대를 마감한 인물이다. 당시 로마는 제국의 확대로 국경선이 길어진 탓에 외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자신 외에 한 명의 공동 황제와 두 명의 부제를 둬 네 명의 황제가 제국을 다스리고 방어하는 4두 체제를 도입했다. 제국의 방위와 경영에 대한 부담을 나누기 위한 이 방안은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국경도 안정됐고 자신이 제1 황제여서 내부의 권력투쟁도 통제할 수 있었다. 유명무실한 황제의 임면권으로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원로원을 폐지하고 전제정에 해당하는 도미나투스 체제를 도입했다. 새 체제를 보좌하고 행정의 전문화를 위해 관료제를 채택하여 행정의 효율성도 높였다. 

국방과 정치는 안정됐지만, 경제가 문제였다. 근 1세기 동안 지속된 정치적 불안정과 국경 지역에서 전쟁으로 재정 부족과 고물가가 만연했다. 4두 체제 도입으로 크게 늘어난병력과 관료제 도입에 따른 공공 부문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재정도 필요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몇 가지 중요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첫 번째 조치는 화폐개혁이었다. 화폐개혁은 더 많은 돈을 찍어 재정 부족을 메꾸기 위한 것이었다. 금화는 기존 표준 금화에 비해 금 함유량이 60%에 불과했다. 은화 역시 이전 표준 은화보다 은 함량이 96%에 불과한 새 화폐로 대체했다. 은도금한 청동 주화도 발행해 통화량을 늘렸다. 통화 증발을 통해 부족한 재정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았지만,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치솟게 했다. 두 번째 조치는 세제 개혁이었다. 세금은 토지세에 해당하는 유굼(jug-um)과 인두세 카피타티오(capitatio) 두 가지로 부과하고 토지세는 생산성과 경작 유형에 따라 결정했다. 자산 평가는 5년마다 실시해 비례세로 부과했다. 세금 결정 근거가 명확해진 것은 커다란 진전이었지만 문제는 세액 결정 방식이었다. 생산액과 상관없이 해마다 정부의 재정 수요에 의해 세금이 결정됐기 때문에 정부의 무절제로 인한 납세자의 고통이 극심했다. 세 번째 개혁 조치는 최고가격법 도입이다. 물가가 잡히지 않고 시민의 불만이 고조되자 황제는 301년 가격통제칙령을 공포했다. 모든 상품과 용역에 상한제를 도입해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한 벌을 부과하기로 했다. 그러나 화폐량은 늘고 세금도 인상되는 상황에서 생산량 증대 없이 행정력으로 물가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물교환이 확대됐고 세금 부담을 피하려고 농민의 이농 현상이 확대되면서 오히려 생산이 감소하고 인플레이션은 심화됐다. 물가 통제는 실패했다. 시민의 삶은 힘들어졌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을 정상화한 황제로 기록됐다.

윤덕룡 경기도 일자리재단 대표이사
윤덕룡 경기도 일자리재단 대표이사
최근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소비자물가 연중 상승률 전망은 2.6%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는 1월에 전년 같은 달 대비 2.8%, 2월과 3월에는 3.1%씩 상승해 전망치를 상회했다. 식료품 및 에너지 물가는 1월 3.8%, 2월 5.1%, 3월 5.4% 올라 소비자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먹거리 물가로 지칭하는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가격 상승률은 지난 2월 기준 6.9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3위를 기록했고 3월에도 6.7%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소비자의 구입 빈도 및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들로 작성되는 생활물가지수는 지속해서 상승 중이다. 전년 동월 대비 1월 3.4%, 2월 3.7%, 3월에는 3.8% 올랐다. 

그렇지만 정부가 주목하는 것은 주로 근원물가지수다. 근원물가지수는 일시적 외부 충격에 의해 물가 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하여 장기적이고 기초적인 물가 추세를 파악하기 위한 지수다. OECD 기준 식료품 및 에너지 가격의 변동을 제외한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 근원물가지수는 1월 2.5%, 2월 2.5%, 3월 2.4% 상승에 그치고 있어 크게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14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기획재정부는 근원물가가 주요국 대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낙관 중이다. 중동 지역 전쟁이 확산해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더라도 근원물가는 큰 변동이 없을 테니 정부의 물가 관리는 성공적으로 인정받을지 모른다. 민생을 어렵게 만들고도 성공한 개혁가로 인정받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