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켄트주 파버샴에 있는 셰퍼드 님 브루어리에서 직원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 연선옥 기자
영국 켄트주 파버샴에 있는 셰퍼드 님 브루어리에서 직원이 작업하고 있다. 사진 연선옥 기자

“우리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맥주를 만들고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그 누구보다 유연하고 민첩하다.”

런던에서 동쪽으로 80㎞ 떨어진 켄트주(州) 파버샴에 브루어리(맥주 양조장)를 운영하는 셰퍼드 님(Shepherd Neame)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 업체다. 매년 2850만L의 맥주를 생산하는 이 양조장이 파버샴에 공식 설립된 해는 1698년. 하지만 지역 비공식 기록에 따르면 최소 1573년부터 여기서 상업적인 양조가 이뤄졌다고 한다. 4세기 넘게 이곳에서 맥주가 생산돼 시장에 판매된 셈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많은 주류 업체는 전통 생산방식을 고수하는 것을 중요한 브랜드 가치로 내세운다. 그런데 셰퍼드 님은 최근 몇 년, 생산 자동화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며 주목받았다. 셰퍼드 님은 “그동안 성장해 온 것보다 더 크게 사업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지속해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브루어리

최근 방문한 셰퍼드 님은 영국 맥주 양조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물에 담가 싹을 틔운 보리(맥아)를 말리기 위해 석탄을 때던 ‘맥아 가마’는 1600년대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된 시설이다. 당시 작업자들이 보리를 건조하던 작업 도구들도 그대로 남아있다.

지름 5m의 거대한 원통 장비가 가동되는 공장 내부에는 영국 엔지니어링 회사 비커스(Vickers)가 100여 년 전 나무로 만들어 공급한 맥아 제조 장비가 있다. 이 장비는 지금도 작동할 수 있을 만큼 잘 보존돼 있다.

수백 년 전 맥주를 가득 실은 마차가 다니던 좁은 통로로 지금은 트럭이 완제품을 실어 나른다. 오래된 길에 꾸며진 스팀 룸(steam room)에는 셰퍼드 님이 영국 공학 기술자 제임스 와트에게 직접 주문해 100년 넘게 사용한 증기기관이 전시돼 있다. 

이 브루어리에서 상업적 양조가 이뤄진 것은 450여 년 전이지만, 그전에도 이곳은 맥주를 만드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1100년대 마을 수도원이 건립된 이후, 브루어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수도사들이 지역정부가 양조를 금지하기 전까지 400년간 에일 맥주를 만들었다. 이후 프랑스로 향하던자산가 리처드 마시(Richard Marsh)가 파버샴 부지를 사들여 상업 양조를 시작했고, 셰퍼드와 님 가문이 이를 이어받았다.

사진1 셰퍼드 님이 최근 독일에서 수입해 설치한 자동화 설비. 셰퍼드 님 사진2 마이크 언스워스 브루어리 디렉터. 셰퍼드 님
사진1 셰퍼드 님이 최근 독일에서 수입해 설치한 자동화 설비. 셰퍼드 님 사진2 마이크 언스워스 브루어리 디렉터. 셰퍼드 님

세계적인 홉 생산지로 유명한 켄트 지역 농가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맥주를 생산하는 셰퍼드 님은 ‘스핏파이어 앰버’와 ‘마스터 브루’ ‘비숍스 핑거’ 등 영국 정통 에일로 평가받는 자사 제품을 포함해 미국 라거 ‘사무엘 애덤스’와 태국 라거 ‘싱하’를 생산한다. 브루어리에서 생산된 맥주는 셰퍼드 님이 런던과 잉글랜드 동남부 지역에서 운영하는 300개 펍을 포함한 다양한 유통 채널을 통해 국내외 시장에 판매된다.

셰퍼드 님은 지난 2023회계연도 매출액 1억6630만파운드(약 2830억원), 영업이익은 760만파운드(약 129억원)를 기록했다.

신기술 활용해 맥주 품질 개선

수백 년의 역사가 깃든 오래된 장비 바로 옆에서 맥주 생산이 한창이었다. 거대한 맥아 발효 설비와 효모 증식 장비들은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현대적인 모습을 자랑한다. 맥아즙을 만드는 은색 거대한 여과조(Lauter tun) 근처에는 스크린 여러 개가 설치돼 있었다. 작업자는 수시로 이 스크린을 확인했다.

마이크 언스워스(Mike Unsworth) 셰퍼드 님 브루어리 디렉터는 “상호작용 스크린을 도입해 생산공정 전반을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다”며 “이 시스템 덕분에 생산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라고 설명했다.

언스워스 디렉터의 설명대로 셰퍼드 님은 원료·제품 품질 관리와 맥아 담금·발효, 제품 포장 등 전 과정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그 수준도 꾸준히 높이고 있다. 가열 작업이 많은 양조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지난 2020년에는 효모 배양 과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빅토리아시대에 지어진 벽돌 건물의 일부를 허물었다. 그 자리에 강철 프레임을 세우고 스웨덴 산업용 장비 업체 알파라발에서 수입한 효모 배양 플랜트를 설치했다. 실험실에서 배양된 소량의 효모를 대량 증식하는 이 플랜트가 설치되면서 셰퍼드 님의 효모 배양 시스템은 완전히 자동화됐다. 작업 효율성이 개선됐고, 맥주 품질 일관성도 높아졌다.

셰퍼드 님이 생산하는 주요 맥주 제품. 사진 연선옥 기자
셰퍼드 님이 생산하는 주요 맥주 제품. 사진 연선옥 기자

최근에는 독일 산업용 로봇 제조 업체 쿠카(Kuka)가 생산한 로봇이 공장에 새로 설치됐다. 이 로봇은 빈 맥주 통을 컨베이어에 올려놓고 세척한 뒤, 맥주를 채워 적재함에 올려놓는 과정을 반복해 하루 최대 2000통을 처리한다.

과거 맥주 통을 옮기고 쌓는 작업을 담당했던 직원 프랭크 러시(Frank Rush)의 이름을 따 ‘프랭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셰퍼드 님은 20년 전 이미 해당 작업을 자동화했지만, 작업 속도가 더 빠르고 에너지 소비가 적은 쿠카 로봇을 설치하기 위해 추가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분에 셰퍼드 님은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브루어리라는 명성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생산 효율과 제품 품질을 높이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가족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셰퍼드 님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작업 효율을 높인 사례는 역사만큼 오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조 과정에 증기기관을 활용한 것이다. 1800년대 초까지도 많은 양조장이 맥아를 분쇄하는 작업에 말을 사용했다. 셰퍼드 님은 런던 외 지역의 브루어리 중 처음으로 맥아 분쇄와 펌핑 공정에 증기기관을 도입했다. 1789년 와트의 증기기관을 시작으로 1874년까지 4대의 증기기관이 맥아를 분쇄하고 가열, 세척하는 작업의 동력원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생산 설비의 현대화작업이 두드러졌다. 셰퍼드 님은 2004년, 맥주 포장을 위한 새로운 공장을 설치하고, 유통센터도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셰퍼드 님의 적극적인 신기술 수용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언스워스 디렉터는 “히트펌프같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공정에 더 많이 도입될 것”이라며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 계속 최신 기술을 수용하고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