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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는 4월 하순 일본 상장사 가운데 10년 뒤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을 두 개 사로 니덱(NIDEC)과 다이킨(DAIKIN)을 꼽았다. 일본 증시가 올해 사상 처음으로 4만엔(약 35만원)을 돌파한 뒤 조정 국면이지만, 시장 전문가는 10년 안에 닛케이평균주가가 8만엔(약 70만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두 회사를 최우량 종목으로 추천했다.

양사는 강한 기술력과 상품을 보유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니덱은 스마트폰에서부터 로봇까지 다양한 모터를 공급하며, 급성장하는 전기자동차(EV)용 모터 매출도 급증하는 추세다. 다이킨은 공조기 시장에서 세계 1위 업체다. 이 회사는 세계 인구 증가로 인한 주택 증가와 신흥국의 경제 발전에 따른 공조기 수요 확대로 수혜를 입을 기업으로 분석됐다. 올해 창업 100주년을 맞은 일본형 기술 기업 다이킨의 급성장 비결을 소개한다.

고효율 에너지 제품으로 미국에서 2025년 1위 예상

1924년 창업한 다이킨은 글로벌 전략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에도 불구하고, 2위에 그쳤던 북미 지역에서 정상 등극이 가시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진출 실패를 거쳐 2012년 미국 업체 ‘굿맨글로벌’ 인수를 통해 시장 공략에 나서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 아시아 시장에선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레인테크놀로지(20.6%)에 이어 점유율 16.9%(2021년 기준)로 2위다. 가정용 공조기 제품은 선두지만, ‘어플라이드’로 불리는 대형 건물용 제품에서 2위다. 회사 측은 2025년 1위 달성이 가능할 걸로 예상한다. 

미국 시장에서 공조기의 경우 최종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시공 업자나대리점이 주도권을 가진다. 유럽이나 아시아 시장보다 기존 업체들과 경쟁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에너지 절약형 제품 보급률도 떨어져 전통적인 미국 업체의 아성이 견고하다. 다이킨은 이런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경쟁의 룰을 바꾸는 ‘규제’ 개선에 힘을 쏟아왔다. 

다이킨은 10여 년 전부터 워싱턴 D.C.에 미국인 로비스트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현지 사무실을 개설, 에너지소비효율(EER) 측정 방법을 개선하도록 대정부 로비전을 벌여 왔다. 4계절을 통해 24시간 동안 전력량을 얼마나 줄이느냐로 측정 방법을 개편하도록 정부와 소비자단체를 설득했다. 관련 규정은 올해 안에 개정될 예정이어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다이킨의 공조기 제품 판매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이노우에 회장 30년간 매출 10배, 영업이익 100배 증가

다이킨의 북미 지역 매출은 최근 5년 새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유럽, 아시아 등 다른 시장과 비교해 증가율이 훨씬 높다. 2023회계연도에 다이킨의 매출은 4조2000억엔(약 36조5400억원)을 넘어, 사상 처음으로 4조엔을 돌파한다. 영업이익도 사상 최고로 추정된다. 북미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면 20세기 후반부터 추진해 온 글로벌화 전략이 완성되는 것이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최근 30년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릴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떨어졌다”고 지적한 뒤 “이런 기간에 세계 정상을 차지한 다이킨은 일본 기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이킨이 글로벌 1위 기업으로 올라선 최근 30년은 이노우에 노리유키(井上礼支) 다이킨 회장 겸 글로벌그룹 대표의 경영 기간과 일치한다. 이노우에 회장이 1994년 사장에 취임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그룹 매출은 10배, 영업이익은 100배 이상 증가했다. 2023회계연도에도 고속 성장세가 이어졌다. 매출과 이익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부진한 경영 환경 속에 각 지역에서 중점 시책을 철저히 시행하고, 판매 확대 및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선 결과다. 

이노우에 회장은 지난 30여 년간 세계 주요 시장에 환경 및 에너지 효율 관련 규제에 적극 개입해 스스로 시장을 키웠다. 최고 기술력만 있으면 생산된 제품이 잘 팔려나갈 걸로 보는 다수 일본 경영자와 달리 자사 기술을 현지 정부와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관련 규정을 바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FUSION 25’, 공기에서 답을 내는 기업

다이킨은 장기 비전으로 ‘공기(空氣)에서 답을 내는 회사’를 내걸었다. 환경과 공기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제품을 만들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선도 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략 경영 계획인 ‘FUSION 25’를 실행 중이다. 퓨전 경영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경영을 지칭한다. 그룹 전체의 5년 뒤 모습을 상정해 중점 전략을 만들었다. ‘FUSION’은 단기와 장기, 해외와 국내, 장기근속 사원과 중도 입사 사원, 본사와 인수 기업 등 다양한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대립과 분리를 융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회사의 5년 단위 중기 경영 계획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2025년까지 진행되는 FUSION 25의 핵심 골자는 국내외 생산 시설의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 도전과 솔루션 사업 확대다. 지역별로는 미국과 함께 인도 시장 개척에 힘을 쏟고 있다. 인도 시장의 경우 에너지 절약형 에어컨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여서 기대를 걸고 있다. 시장이 급팽창하는 인도에 생산 거점을 확대해 현지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으로 수출에 나설 방침이다.

野人이 회사를 성장시킨다 

1935년생 이노우에 회장은 다이킨을 글로벌 1위 기업으로 키웠다. 도시샤대(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오사카금속공업소(현 다이킨공업)에 입사한 뒤 주로 인사 부서에서 일했다. 1994년 사장, 2002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2014년 현직에 올랐다. 그는 최근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다이킨의 세계 1위 달성 비결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건 것이다. 그가 사장에 취임한 30년 전, 다이킨그룹의 매출에서 해외 비중이 10% 선에서 지금은 83%까지 높아졌다. 둘째는 ‘야인(野人)’을 우대하는 기업 문화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노우에 회장은 요즘 주말마다 돗토리현의 회사 연수 시설로 출퇴근하고 있다. 4월 초 입사한 신입사원과 대화를 통해 직원이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게 큰 즐거움이다. 인사 전문가인 이노우에 회장은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 총합(總合)’이 회사 발전의 토대”라며 “야인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늘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야인은 어떤 사람일까. 이노우에 회장은 “야성미 넘치는 한 마리의 늑대로, 상사가 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사원”이라고 정의했다. 다이킨에서는 ‘튀어나온 말뚝(잘난 인물)’도 인정하는 기업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계급장을 떼어 놓고 토론하자며 부하 직원에게 먼저 제안하는 상사도 많다. 이런 회사 풍토 덕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실행하고,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는 사원이 꾸준히 생겨난다. 

사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된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풋내기 직원들도 자신이 관심을 가진 특정 테마에 대해 정통하게 되면, 그를 중심으로 신규 사업을 논의하고 업무를 맡기는 분위기가 뿌리를 내렸다. 기술을 중시하는 일본형제조 기업이지만, 글로벌화에 성공한 것은 이런 인재가 계속 배출되는 덕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