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6회 연속 동결해 연 5.25~5.50%로 유지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5월 1일(이하 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연준의 다음 행보가 금리 인상은 아닐 것”이라며 ‘매파 피벗(hawk-ish pivot·통화 긴축에서 벗어나는 전환)’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로써 한국은행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대표되는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 시점도 덩달아 늦춰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동결한 상태에서 타국의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한다면 해당국 자금이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해당국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수입 물가가 뛰며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美 기준금리 6회 연속 5.25~5.50% 동결

연준은 5월 1일 이틀간 진행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준금리를 5.25~5.50%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한국(연 3.50%)과 금리 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최대 2%포인트가 유지된다. 

파월 연준 의장은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하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물가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얻기까지 이전 예상보다 오래 걸릴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은 완화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2%)에 대한 추가적인 진전이 부족하다(lack of further progress)”고 말했다. 이 표현은 앞서 지난해 12월 연준이 노동시장과 인플레 이션에 대해 “더 균형 있게 움직이고 있다(moving into better balance)”면서 금리 인하 의사를 밝혔을 때와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 이는 올해 3월 성명서에서도 없던 표현으로, 인플레이션이 예상만큼 떨어지지 않음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실망스러운 인플레이션 수치는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무너뜨렸다”면서 “(금리 인하) 논의를 재개하려면, 더 완만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5월 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5월 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파월, 떠도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일축

3월 25일 1분기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속보치가 1.6%로 집계돼 지난해 4분기 수정치(3.9%)보다 크게 둔화하자 시장에선 침체 속 인플레이션을 뜻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했다. 이에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장에서 “스태그(stag)나 플레이션(flation)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10%의 실업률과 높은 한 자릿수의 인플레이션이었고 지금은 3%의 성장률과 3%의 인플레이션율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이어 금리 인하를 위한 시나리오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노동시장이 실질적이고 예상치 못한 약세를 보이는 경우, 다른 하나는 인플레이션이 작년에 보였던 하락세를 재개하는 경우다. 파월은 “이 두 가지 시나리오는 우리가 금리를 인하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경로”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확신이 들 때까지 금리 인하를 하지 않는 한편 금리 인상도 현재로선 기본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파월 의장은 “현재 금리 수준이 충분히 제한적이며 노동시장은 수요 측면에서 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전보다 정상화되고 있다”면서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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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다시 오를 가능성도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런 결론이 나온다면 기준금리를 올려야겠지만 여러 데이터를 봤을 때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올해 3회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FOMC 위원들은 올 1분기에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향한 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2% 달성 확신을 얻기 위해선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남겼다.

한편 연준은 이날 “6월부터 대차대조표 축소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밝혔다. ‘대차대조표 축소’는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거나 만기 후 재투자하지 않는 식으로 유동성을 흡수하는 양적 긴축 방식이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연준이 사용하는 긴축 수단 중 하나다. 금리가 높은 가운데 유동성도 줄이면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속도 조절을 하겠다는 의미다. 금리 인하는 늦추지만, 통화량 감소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주게 된다. 연준은 “6월부터 국채는 월 600억달러에서 250억달러로 경감 속도를 줄인다”면서 “기관 부채와 모기지담보증권(MBS)은 지금과 같이 월 경감액 목표를 350억달러로 유지한다” 고 했다. 이 한도를 초과하는 원금 상환액은 모두 국채에 재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연내 美 금리 인하 폭 축소 전망

“연준, 올해 단 한 차례 금리 인하 나설 듯”

미국 금융시장에서 지난 3월 FOMC 이후에는 연준의 6월 금리 인하 개시 및 연내 3회 인하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었으나, 현재는 연내 한 차례 정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5월 1일 “올해 초 투자자들은 6차례 인하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많은 이가 단 한 차례 인하를 기대하거나 전혀 인하를 예상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 역시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은 9월로 예상되지만, 인플레이션 하락이 더딜 경우 12월로 늦춰질 수 있다”고 내다봤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연준은 금리 인하를 위한 확신을 갖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향후 정책 방향을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체계(wait-and-see)’로 전환했는데, 이는 더 길게 현 금리를 유지하며 인하 시기를 더 늦추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 인하 지연 배경에 대해 △인플레이션율의 하방 경직성 △고용 및 소비 지표의 호조세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인한 디스인플레이션 지연 우려를 꼽고 있다. 이어 올해 하반기 연준의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으며, 인하 횟수도 연내 1~2회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 3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2.7% 상승했다고 4월 26일 밝혔다. 2.6%인 월가 예상치를 상회한 것이다. 연준이 주시하는 수치인 근원 PCE(변동성이 큰 식료품과에너지를 제외한 수치) 물가지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예상치였던 2.7%를 웃돌았다.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