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에 혼다(Sae Honda)의 ‘우리 모두는 돌이 필요하다(Everybody Needs a Rock)’ 표지. 사진 김진영
사에 혼다(Sae Honda)의 ‘우리 모두는 돌이 필요하다(Everybody Needs a Rock)’ 표지. 사진 김진영

버려지는 물건을 새롭게 활용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은 리사이클링(recycling)과 업그레이드(upgrade)의 합성어다. 리사이클링, 즉 재활용은 버려지는 것을 그대로 다시 활용하거나 재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다시 사용하는 것을 넘어, 높은 가치와 의미를 지닌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버려지는 방수천을 활용해 만들어진 방수가 되는 가방, 다 먹고 난 우유 팩으로 만들어진 지갑, 사용되지 않는 자전거 부품을 활용해 디자인한 조명 등이 업사이클링의 사례다. 

보석 디자이너 사에 혼다(Sae Honda)는 업사이클링 개념을 보석에 적용했다. 보석이라고 하면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같은 아름답고 희귀한 광물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혼다는 그러한 것만이 가치 있는 보석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보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가운데, 하와이 카밀로 해변에서 플라스틱이 혼합된 돌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접했고, 여기에서 혼다는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하와이 남동쪽에 위치한 카밀로 해변의 21개 지점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돌이 발견됐는데, 이 돌은 플라스틱과 화산암, 조개껍질, 나뭇조각 등 주변의 자연 퇴적물이 뒤엉켜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플라스틱이나 해변으로 쓸려온 플라스틱이 녹아 자연의 산물과 결합해 생겨난 새로운 종류의 돌이 발견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플라스틱 암석을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plastiglomerate)’라고 명명했다. 

김진영 사진책방 ‘ 이라선’ 대표,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 이라선’ 대표,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이 새로운 형태의 암석은 쉽게 분해되지않을 것이며 오랜 시간 살아남을 것이라 짐작된다. 먼 미래에는 이 플라스틱 암석을 21세기를 대표하는 화석으로 여기며 분석할지도 모른다. 혼다는 더 나아가 이런 상상을 했다. 오늘날의 다이아몬드나 루비처럼, 먼 미래에는 이 플라스틱 암석이 가치를 지닌 것이 되어 있진 않을까. 미래의 인류가 플라스틱 암석을 땅에서 파내고 수집하고 가치를 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출발점으로 혼다는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돌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돌이 필요하다(Everybody Needs a Rock)’는 혼다가 길거리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료로 만든 돌을 담은 책이다. 우선 혼다는 다양한 재료를 수집했다. 비닐봉지, 과자 봉지, 과일 포장 그물, 음료병, 병뚜껑, 빨대 등 플라스틱을 주웠다. 뿐만 아니라, 하와이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주위의 자연물과 일체화됐던 것처럼 그 과정을 모사하기 위해, 수집한 플라스틱 주위에 있던 나뭇가지, 조개껍데기, 자갈 등 자연의 재료 역시 함께 수집했다. 

이렇게 모은 재료를 함께 녹이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혼다는 아름답고 독특한 세상에 하나뿐인 돌을 탄생시켰다. 제작 과정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마주한 이 돌은 한편으로 자연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보석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로 아름다운 디테일을 보여준다.

책에는 돌 컬렉션과 각 돌에 관한 텍스트가 수록되어 있다. 우선 혼다는 돌마다 ‘밤 산책(Night Walk)’ ‘박하 맛 구름(Minty Cloud)’ 등 시적인 이름을 붙였다. 미니멀하게 포착한 돌 사진 옆에는 돌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재료를 발견한 장소는 어디인지, 또 발견한 날짜는 언제인지가 기록돼 있다. 

책에는 길거리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료로 만든 돌 컬렉션과 각 돌에 관한 텍스트가 수록돼 있다. 우선 혼다는 돌마다 ‘밤 산책(Night Walk)’ ‘박하 맛 구름(Minty Cloud)’ 등 시적인 이름을 붙였다. 미니멀하게 포착한 돌 사진 옆에는 돌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재료를 발견한 장소는 어디인지, 또 발견한 날짜는 언제인지가 기록돼 있다. 사진 김진영
책에는 길거리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료로 만든 돌 컬렉션과 각 돌에 관한 텍스트가 수록돼 있다. 우선 혼다는 돌마다 ‘밤 산책(Night Walk)’ ‘박하 맛 구름(Minty Cloud)’ 등 시적인 이름을 붙였다. 미니멀하게 포착한 돌 사진 옆에는 돌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재료를 발견한 장소는 어디인지, 또 발견한 날짜는 언제인지가 기록돼 있다. 사진 김진영
인상적인 것은 혼다가 쓰레기를 주웠을 때 장소의 풍경, 날씨, 소리, 향기 등을 함께 기록한 것이다. ‘강한 바람과 강한 빗줄기, 우산 없이 걸어가는 금발 소녀, 땅에 있던 가짜 크리스마스트리 조각’ ‘일하는 복장을 하고 수다를 떠는 두 나이 많은 남성, 손님을 기다리는 텅 빈 레스토랑, 갈매기 울음소리, 벤치에 앉아 통화 중인 젊은 남성’ 등 짧게 쓰인 글은 돌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라기보다 주변 환경에 대한 배경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혼다는 미래 인류학자의 일을 대신 수행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플라스틱을 수집한 특정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를 전달하려 노력한다. 

이 책은 현대의 환경문제를 다룸과 동시에, 버려진 것을 의미 있는 대상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전달한다. 혼다의 작업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폐품에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창의적 과정을 보여준다. 

혼다는 이렇게 말한다. “다이아몬드가 지구가 형성되는 동안 맨틀이 활동한 결과물인 것처럼, 이 암석들은 현재 인류 활동의 퇴적물이다. 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라는 무관심의 대상을 소중히 여기고 기념함으로써, 이것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가장 일상적인 순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비록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혼다의 손을 통해 섬세하게 만들어진 이 돌은 우리가 이 대상에서 여전히 신비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매료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환경문제를 상기시키면서도, 예술과 인간의 창조성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버려진 자원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