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세 시장이 심상치 않다.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 매물이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가격도 50주 연속 올랐다. 향후 주택 시장의 이슈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함께 전세 시장 불안이 꼽힌다. 특히 전세 시장은 서민과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과 직결되는 문제다. 물론 아직 2년 전보다 전셋값이 낮다. 하지만 계속 오를 가능성이 커 시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전셋값 상승 이유와 매매가격에 미치는 영향까지 두루 짚어보고자 한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1년 가까이 올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월 첫째 주(6일 기준) 51주 연속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서울 전세가격은 0.09% 오르며 전주(0.07%) 대비 상승폭을 확대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전주(99.3)에 비해 0.8포인트 오른 100.1을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100보다 높으면 전세 수요가 많고, 낮으면 공급이 많다는 뜻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가 100을 넘어선 것은 2021년 11월 넷째 주(100.5) 이후 처음이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그나마 전세 매물이 많지 않다고 전한다. 일부 지역에선 소단지는 물론 대단지에서도 매물을 찾기 어렵다. 마포구의 한 중개업자는 “전세를 찾는 사람은 많은데 마땅한 매물이 없어 거래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5월 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 건수는 2만8955건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3만5305건)에 비해 18%가량 줄어든 것이다. 이 바람에 인기 아파트 단지에선 월세 물량까지 줄어들고 있다. 전세를 구하지 못하자 일부 수요자가 반전세 혹은 반월세 매물을 찾고 있어서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KB부동산에 따르면, 4월 서울 전셋값전망지수는 111.4, 전국은 100.4를 기록했다. 전셋값전망지수는 0~200 범위이며 지수가 100을 초과할수록 ‘상승’ 비중이 높다. 서울 지역은 지난해 7월부터 100을 넘었다. 서울 지역 전세 시장 불안이 상대적으로 더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셋값 왜 오르나

아파트 전셋값 상승 원인은 복합적이다. 빌라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대거 이동한 게 큰 원인이다. 아파트는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을 쉽게 파악할 수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위험을 가늠할 수 있다. 아파트 전세 쏠림 현상은 세입자의 생존 본능이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서울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전달 대비 0.32% 올랐다. 하지만 같은 달 연립, 다세대주택의 경우 오히려 0.01% 하락했다. 아파트 시장에는 수요자가 몰리고 비아파트 시장은 외면받고 있는 요즘 전세 시장 흐름을 보여준다. 

또한 전세 재계약이 부쩍 많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전세 갱신 계약을 통해 보증금을 5% 이내로 올리는 증액 갱신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 114 분석 결과, 월간 기준으로 지난해 갱신 계약 비율이 매달 25∼29%로 30%를 밑돌았다. 하지만올해 들어서는 1월 31%, 2월 39%, 3월 35%, 4월 36% 등으로 30%를 넘어섰다. 아파트 전셋값이 상승하자 기존 세입자가 새로운 전셋집으로 갈아타는 것보다 기존 전셋집에 눌러앉는 경향이 심해진 것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계약 갱신을 한 세입자는 “전셋값이 최근 많이 오르고 매물도 귀한 데다 이사를 하면 길바닥에 뿌리는 돈이 많아 집주인과 협의해 재계약했다”고 말했다. 전세 재계약이 많아지면 시장에 유통 물량이 그만큼 줄어든다. 물량이 많지 않으면 작은 수급 불균형만으로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요인이 된다. 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눌러앉으려는 세입자도 적지 않고,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입주 물량이 줄어든 것도 전세 시장 불안의 또 다른 요인이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서울 강북 지역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 안내가 세워져 있다. 사진 뉴스1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서울 강북 지역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 안내가 세워져 있다. 사진 뉴스1

전세난? 여전히 역전세난

최근 들어 아파트 전셋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2년 전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2년 전 이맘때보다 15%, 전국은 14.7% 낮다. 수치만 본다면 전세난은커녕 역전세난을 걱정할 판이다. 실제로 많은 아파트 단지 전세 시세는 2년 전보다 회복하지 못한 곳이 많다. 2022년 미국발 고금리 쇼크로 매매가격과 전셋값 모두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수도권 중심으로 아파트 매매가격은 제법 올랐지만, 전셋값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2023년 한 해 동안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는 10%가량 올랐지만, 전세 실거래가 상승률은 5.2%에 그쳤다. 전세 실거래가 수치에는 신규 계약 이외에 재계약분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매매가격보다 상승률이 낮은 셈이다. 따라서 아파트 전셋값이 최근 들어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도 큰 틀로 보면 고점을 향한 회복 과정으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 전세 시장은 안정보다는 불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전세 시장은 입주 물량과 금리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입주 추정 물량은 33만 가구가량으로 지난해 36만 가구보다 소폭 줄지만 2025년은 24만 가구, 2026년은 13만 가구 정도로 대폭 감소한다. 여기에다 기준금리도 향후 인하된다면 수요가 더 늘어난다. 요즘은 전세를 구할 때 대부분 대출을 받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전세 수요는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저가 전세를 공급해 왔던 다세대주택이나 다가구주택, 빌라도 공급이 거의 끊겼다.고금리에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데다 건축비가 큰 폭으로 올라 사업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매매가격 밀어 올릴까

최근 서울 지역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 매매가격이 오른 것이 전셋값 상승과 무관치 않다. 전셋값이 오르니 아예 집을 사려는 수요자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구입자 중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전한다. 전셋값이 오른다고 해도 매매가격을 밀어 올릴 정도는 아니다.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4월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전세가 비율)은 서울 53.2%, 전국은 66.9%다. 서울은 바닥권이었던 지난해 4월 50.8%에 비하면 소폭 올랐다. 하지만 과거 고점인 2016년 6월 75.1%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다. 전셋값이 올라 매매가격을 압박하려면 전세가 비율이 60%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지금처럼 전셋값이 계속 오르면 갭 투자가 유입되면서 매매가격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