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끝으로 17년간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재정 추계 때마다 기금 고갈 시점은 계속 앞당겨졌고, 저출산과 악화하는 인구구조 때문에 후세대의 부담은 급격하게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는 세계 최악의 노후 빈곤국이자 가장 많은 노인이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연금 도입의 기본 취지인 소득 보장도, 후세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재정 안정도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여 년간 연금 개혁 논의는 이념의 대리전과도 같았다. 진보 진영의 소득 보장론자와 보수 진영의 재정 안정론자는 편을 나눠 끝나지 않을 평행선을 그려왔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마저 깊어지며 합의가 될 만한 사안도 무위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 팽팽한 대립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2022년 가을, 국회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를 발족했다. 

국회가 나선 것은 편을 나눠 대립하는 전문가들에게 합의된 개혁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에서는 의제와 대안을 정리하고, 500인의 시민 대표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개혁 방식을 선택하게 하자는 데 여야가 합의했다. 필자도 민간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이번 연금 개혁 논의에 참여했다. 안타깝지만 1년 반에 가까운 논의는 5월 7일 주호영 위원장의 연금특위 종료 선언과 함께 완전 무위로 돌아갔다.

1년이 넘는 기간에 거의 매주 진행된 민간자문위원회가 공론화위원회에 올린 핵심 의제는 보험료와 소득대체율 결정이었다. 소득 보장론자가 제안한 1안, 즉 더 내고 더 받기(보험료 13%, 소득대체율 50%)는 500인으로 구성된 시민 대표 중 56%의 지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재정 안정론자가 제안한 2안, 즉 더 내고 그대로 받기(보험료 12%·소득대체율 40%)를 제치고 국민연금 개혁안으로 최종 선택됐다.

일부 불만의 목소리는 있으나 공론화위원회의 모든 절차가 소득 보장론자와 재정 안정론자 양측의 합의와 감독하에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소득 보장에 더 많은 국민이 공감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비록 21대 국회에서는 실패했지만, 22대 국회에서 연금 개혁 입법 논의가 이어진다면 이런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될 여지가 크다.

다만 상황을 조금 더 분석적으로 살펴보면, 재정 안정론자의 전략적 실책 때문에 1안이 선택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2안의 핵심은 인구구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기금이 고갈되면 다음 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져 국가 재정이 이를 버틸 수 없고, 따라서 이번 세대부터 미래 급여 지급을 충분히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2안도 1안과 유사하게 2060년대 초반에 기금이 고갈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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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 고갈 이후 세대는 오롯이 그 시점 경제활동인구의 보험료와 세금으로 연금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재정 안정안이라는 2안을 선택해도 2080년 무렵 보험료는 35% 수준으로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 된다. 어차피 2080년 기준, 1안의 보험료 43%나 2안의 35%나 감당 불가능한 것은 매한가지다. 

시민 대표단에 다른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소득 보장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1안이 설득력 있다고 느낄 여지가 크다는 것이 해당 분석의 요지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재정 안정론자가 실질적으로 재정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안을 냈다면 결과는 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재정 안정론자는 최초 보험료 15%에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는 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이는 재계와 자영업자 대표의 격렬한 반발에 막혔고 결국 재정 안정에 한참 모자라는 보험료가 12%인 안을 제출하게 됐다. 연금보험료 절반을 고용주가 부담하는 것을 감안하면, 급격한 보험료 인상은 영세사업자나 중소기업의 감당할 수 없는 비용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현시점, 우리 사회가 부담할 수 있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12~13% 정도가 상한임이 명백해진 거다.

재정 안정에 방점을 찍은 2안조차 기금 고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 보험료와 소득대체율 조정만으로는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 달성은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거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정부 재정의 선제적 투입 없이는 더 이상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 달성은 불가능한 것이 이번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확인됐다.

왼쪽부터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5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왼쪽부터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5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러한 인식하에서 필자는 작년 연금특위에 연금 개혁 3115라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3% 인상해 12% 수준으로 유지하고, 기금 운용 수익률을 지난 30여 년간 달성했던 연평균 5.9%에서 약간 더 끌어올려 6% 수준으로 개선하며, 정부가 국내총생산(GDP) 1% 수준의 재정을 투입하자는 것이 골자다. 2030년까지 이 방식의 개혁을 달성하면 기금은 GDP 120% 수준으로 항구적으로 유지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세대든 다음 세대든 대대손손 같은 부담을 지고 같은 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현세대부터 재정이 투입된다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도 항구적인 기금 유지와 완전한 세대 간 형평성 달성은 어렵지 않게 달성 가능하다.

비록 21대 국회의 연금 개혁 시도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공론화위원회의 결론은 났고 이를 최대한 반영하는 방식의 개혁이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13% 보험료, 50% 소득대체율만으로는 다음 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우는 것이 명백하다. 결국 재정 투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결단만이 다음 세대에게 굴레를 씌우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김우창 한국과학 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美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김우창 한국과학 기술원(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美 프린스턴대 경영과학 및 금융공학 박사

12~13% 수준까지의 보험료 인상을 전제한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현세대부터 재정을 투입하여 향후 모든 세대가 같은 부담과 혜택을 누리느냐, 아니면 재정 투입을 미뤄 기금을 고갈시켜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느냐, 이렇게 두 가지뿐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재정 투입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필자는 6년 전 국민연금 4차 재정 추계 당시 위원으로서 재정 투입 없이 보험료와 소득대체율만을 변경하는 모수 개혁만으로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시기는 그때가 마지막이었음을 증명해 공식 보고서로 제출한 바 있다.

개혁 지연으로 우리 사회가 대대손손 부담해야 할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 10여 년간 연금 개혁 논의에 지속적으로 참가했던 사람으로서 속상하다. 하지만 지금은 개혁 지연 책임자를 찾고 있을 여유가 없다. 지금은 약간의 보험료 인상과 재정 투입을 통해 재정 안정 달성이 가능하지만, 또 5년이 지나면 그것조차 불가능해진다. 우리 세대부터 가입자와 정부가 모두 제 역할을 시작하면 감당 가능한 보험료와 재정 투입으로 막을 수 있다. 더 이상 개혁이 늦어지면 높아진 보험료뿐 아니라 후세대 정부에 지우게 될 부담이 GDP 10%를 훌쩍 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정답은 명확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