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중국의 공급망을 대체하는 문제에 굉장히 관심이 크다. 중국의 ‘과잉 공급’은 미국 경제에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공급망 재편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KITA) 워싱턴지부장은 4월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지부장은 오는 11월 열리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기업이 다가올 공급망 문제에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워싱턴 D.C.는 세계 통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시다. 무역협회 워싱턴지부는 워싱턴 D.C.에 진출해 우리나라 무역 업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민간 무역 단체로, 대미(對美) 민간 통상 협력 창구 역할과 회원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한다. 삼성, LG, 현대, SK, 한화, 포스코, 현대제철 등이 무역협회 워싱턴지부와 소통하면서 미국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제 지부장은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 또는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공급망 분절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미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맹공격을 이어가고 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보다 더한 규제 정책을 내놓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제 지부장은 “미국이 중요시하는 것은 국가 안보와 공급망”이라며 “중국의 과잉 공급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채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는데, 중국을 뺀다는 일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조업 강국 중 미국의 동맹국인 나라로는 한국, 독일, 일본 정도뿐”이라며 앞으로 “한국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美 보편 관세 부과하면 기업 부담 '눈덩이'
미국 현지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는 제 지부장은 대선을 앞두고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민주당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1기에 비해 2기는 보다 개방적인 정책으로 선회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다만, 현재 상황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산업 정책과 보호주의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에 ‘관세 부과’가 포함되면서 불확실성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훨씬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할 경우 무역 적자 해소를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며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외에도 대중국 관세 60%, 상호주의 관세 부과 등 관세정책을 내놓은 상태다. 상호주의 관세는 미국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의 수입품에 대해 같은 비율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제 지부장은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2.5%인데, 10%를 부과하겠다는 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며 “그것도 전 품목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다는 건 기업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관세 조치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심 중이다. 제 지부장은 “품목별로 영향은 다를 수 있지만, 수입품에 대한 관세가 오를 경우 공급망상의 수입업자에게 차례로 전가될 수 있다”며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든다고 해도 부품은 한국에서 공수해야 하니 관세가 붙어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 지부장은 “관세가 오른 부담을 기업이 떠안으면 이익이 줄어들고, 차량 가격을올리면 소비자 수요가 떨어질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FTA 체결국' 내세워 트럼프와 협상해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제 혜택 인센티브가 지연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사항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 EP)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를 주요 통상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한국의 총수출액은 최대 수백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KIEP는 관세 부과 수준과 적용 대상국, 상대국의 보복관세 시행 여부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려했을 때 한국의 총수출액이 적게는 53억달러(약 7조1963억원)에서 많게는 241억달러(약 32조7230억원)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는 한국산 물품이 상대국 물품 보다 가격이 더 낮아지는 경우 중장기적으로 한국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반면 한국산에 대한 대체 수요 발생이 제한적이고 제삼국으로의 수출 전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최대 0.27% 감소할 전망이다.
제 지부장은 우리나라가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지렛대 삼아 관세 조치를 피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관세 조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진행될 전망인 데, FTA 체결을 이유로 보편 관세에서 제외된다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 지부장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외교통상부 FTA 상품교섭과 통상전문관으로 파견 근무한 경험이 있다. 제 지부장은 한미 FTA, 한·캐나다 FTA, 한·인도 FTA 협상에 참여해 활약하기도 했다. 제 지부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명확한 근거 없이 관세 10% 공약을 제시한 상태”라며 “미국의 최혜국대우(MFN) 관세 인상은 세계무역기구(WTO)뿐만 아니라 FTA 규정 위반이 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한 언급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캐나다, 멕시코, 호주 등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협정 위반을 근거로 예외를 요구해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고받기’식 협상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