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거미 소녀’가 되고 싶었다. 장터 서커스단 천막에서 로프를 타고 가뿐히 위로 솟아오르던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거미 소녀. 번쩍이는 의상을 입고 우아한 팔과 다리를 뻗어 세상 어디로든 점프하며 살기를 꿈꾸던 거미 소녀에 대한 환상은 ‘스파이더맨’의 낡은, 여성 버전으로 유년의 창고에 처박혔다.
누구나 다른 자아, 다른 삶을 꿈꾼다. 격무에 시달리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카프카 ‘변신’의 주인공처럼, 의미 없는 버둥거림으로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는 ‘자기혐오’에 괴로워하다가도, 어딘가 ‘완전히 새로운 삶’ 나를 위한 ‘미지의 기회’가 남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살아간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더 넥스트’는 그렇게 삶의 방향 전환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 월스트리트저널(WSJ) 부편집장 출신으로 ‘USA투데이’에서 3000명이 넘는 언론인을 지휘하며 여러 차례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 조앤 리프먼은 코로나19 이후 대퇴사의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생과 커리어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도록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누가 성공하고 누가 실패하는가. 그 길은 행복한가. 막다른 곳에서 전환기를 맞이할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조앤 리프먼에 따르면, 경력 전환은 잊었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식지 않는 열망과 어느 순간 희미하게 흩어졌던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조합의 문제라고 한다. 전환에 성공한 사람들은 늘 다른 일을 하는 자기 모습을 상상했으며, 반복적인 시도로 패턴을 만들어냈고, 자기만의 중단 기준에 이를 때까지 섣불리 직장이나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 결정적인 성공 요인은 ‘끈기’도 ‘끊기’도 아닌 ‘준비’였다. 변화는 유기적이었고, 변화를 결정하기 전에 변화를 시작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도심을 활강하는 거미 소녀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히어로와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잃지 않은 덕에 최전선의 지혜자 곁에서 ‘자기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기자가 됐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의 다음 목적지를 상상하는 여러분을 위해 ‘더 넥스트’의 저자 조앤 리프먼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단도직입적으로, '더 넥스트'란 무엇인가.
“인생의 다음 단계를 찾는 일이다. 일종의 삶의 방향 전환을 뜻한다. 직업이든, 환경이든 인생을 재조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내려는 시도다.”
나도 오십이 넘었지만, 여전히 다른 인생, 다른 커리어를 꿈꾸고 있다. 사람은 왜 지속적으로 방향 전환을 원하나.
“성장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밟아나간다. 시기적으로 2020년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절묘했다. 많은 사람이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직업과 관계를 다시 생각한 시기였다. 꼭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결혼(혹은 이혼) 혹은 이직 같은 중요한 전환기를 다들 겪게 된다. 나는 ‘더 넥스트’ 즉 인생 전환에 성공한 수백 명의 사람을 인터뷰했다. 경력이나 회사를 재창조하는 데 성공한 사람, 벼랑 끝에서 삶을 재건한 사람, 트라우마를 이겨낸 사람⋯, 그들의 삶을 바꾸는 ‘아하!’의 순간에 과연 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궁금증을 찾아갔다.”
변화의 불꽃은 어떻게 일어났나.
“그 순간을 가까이서 지켜본 신경과학자, 심리학자, 경영 전문가 등에 따르면, 다음을 창조한 사람은 일관되게 네 개의 과정을 거친다. 탐색, 분투, 멈춤, 해결, 네 단계다. 나는 이걸 ‘재창조 로드맵’이라고 부른다.”
광고인이었다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임스 패터슨으로 책 서두를 열었다. 패터슨의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 있는 사례다. 특별히 그 인생의 어떤 순간이 당신을 매료시켰다.
“제임스 패터슨은 역사상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알렉스 크로스 형사 같은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그가 광고 회사 임원이었고 처음 작가가 됐을 때,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자기 목소리를 찾기 전까지 여러 편의 실패작을 쓴 작가다. 그는 ‘재창조 로드맵’의 훌륭한 예다. 내가 패터슨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광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작가가 되기 위해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첫 번째 책 중 하나가 막 출판됐는데 ‘지루함의 심연’이라는 평을 받았다. 최근에 그와 다시 연락을 취해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변화를 이룰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그는 자신을 재탄생시킨 과정을 설명해 줬다. 그는 재창조 로드맵의 모든 단계를 충실히 따랐다.”
네 단계를 다 거쳤다는 건가.
“그렇다! 첫 번째 단계인 ‘탐색’은 광고 회사에 다니면서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전환으로 이어질 경험과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던 거다. 그다음에는 오랜 ‘분투’가 이어졌는데, 수년간 책을 써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 마침내 책이 팔리기 시작하자 자신이 작가로서 성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패터슨의 멈춤은 갑작스러운 ‘아하!’의 순간과 함께 찾아왔다. 그는 50세에 이르렀고 책은 성공했지만, 여전히 광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일요일, 해변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다가 패터슨은 문득 해변으로 향하는 반대편 도로는 뻥 뚫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 그 순간 결단을 내리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사표를 냈다.”
인생의 다음 단계를 찾는 탐색→분투→멈춤→해결의 단계는 사실 모든 분야에서 도약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당신이 관찰하기에 보통 사람은 어느 부분에서 가장 힘들어하나.
“가장 어려운 단계이자 우리가 말하기 싫어하는 단계가 바로 ‘분투’다. 이전의 정체성을 버렸지만, 새로운 정체성을 찾지 못했을 때다. 비참한 거다. 다른 사람은 모두 성공의 길로 순항하고 있는데 나만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 같아, 막막한 거다.
문제는 우리가 위대한 변화를 원할 때, 이러한 지저분한 중간 부분을 건너뛰고 바로 ‘탐색’에서 ‘해결책’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대학생에서 억만장자가 되다니. 대박!’ 이런 식이다.
신데렐라, 스파이더맨, 슈퍼맨, 아메리칸 아이돌을 보면 다 그렇게 단번에 히어로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기를 쓰고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잘되지 않으면 ‘내게 문제가 있다’고 착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실 ‘분투’야말로 ‘넥스트 로드맵’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다.”
'그릿'의 안젤라 더크워스와 '큇'의 애니 듀크는 각각 극기와 포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보니 '극기'와 '포기' 중 무엇이 더 중요했나.
“선택은 ‘극기’나 ‘포기’가 아니라 준비의 문제다. 다음 커리어에 성공한 사람은 전환을 하기 훨씬 전부터 그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전환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시작한 경우도 있다. 취미, 부업 또는 단순한 관심사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 경험을 수집하는 것, 첫 번째 단계인 ‘탐색’이 바로 이 단계다.
예를 들어, 소 농장을 하는 윌 브라운은 하버드대에서 교육받은 경제학자로서 JP모건에서만 30년간 일했다. 어떻게 그런 극단적인 전환을 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그는 처음부터 의도한 게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 전에 그는 가족을 위한 주말 주택으로 오래된 농가를 구입했고, 수년 동안 주말을 이용해 조금씩 목장 일을 알아 갔다. 그다음 농사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농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나머지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 농부가 된 거다.”
한편 육감, 직관도 우리의 다음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던데.
“맞다. 나는 최고의 신경과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직감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를 살펴봤다. 직감과 직관은 옳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정말 그게 맞기 때문이다! 직감은 사실 패턴 인식의 한 형태다. 체스 장인들은 반사적으로 다음 수를 둔다. 그들은 굉장히 자주 체스를 두기 때문에 패턴이 뇌에 깊이 새겨져 있다. 패턴 저장고에서 꺼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두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최고 경영진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데이터를 무시하고 직감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전의 풍부한 경험 데이터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팬데믹 시기에 일상적인 배열이 깨지고 다른 맥락에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이 대퇴사의 물결에 동참했다. 나도 재택근무로 단련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 저널리스트로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이런 중간 단계의 멈춤, 휴식은 필수적인가.
“방향을 전환하는 데 필요한 관점은 일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야 생긴다. 그게 바로 재창조 로드맵의 세 번째 단계인 ‘멈춤’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터널 앞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에 과몰입하면 좌절만 깊어진다. 만약 변화를 꿈꾼다면 일상에서도 정기적으로 걷고 쉬고 노는 것을 권한다.
무의식은 꽤 유능하니 당신의 무의식이 일하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자기 정체성을 실현하려는 위대한 탐색은 늘 딴짓할 때 나온다.”
그런 맥락에서, 일할 때도 90분 집중 후 강제 휴식하는 루틴을 하루에 세 번씩 하라는 가이드는 매우 실용적인 것 같다. 당신도 그 방식을 신뢰하나.
“그렇다! 실제로 나는 책을 쓰거나 좀 어려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90분 법칙을 사용한다. 또한 대학 학기 논문을 작성하는 자녀들과 업무 문제로 고민하는 동료들에게 이 방법을 추천한 적이 있다. 마법 같은 효과가 있다. 뛰어난 음악가들도 장시간 훈련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하루에 90분씩 3세트로 적정 시간 연습하고, 휴식에 엄격했기 때문에 대가로 성장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안타깝지만 변화에 실패한 사람들만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너무 일찍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분투’의 과정이 짧았다. 또 하나의 프로젝트에 실패하면 이를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점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 수정해 나갔던 ‘성공한 실패자’와 다른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음 스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인을 위해 실질적인 팁을 부탁한다.
“일단 분투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분투가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린다. 무엇보다 당장 전문가를 동반자로 구하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팁을 주겠다. 약하거나 휴면 상태인 관계에 손을 내밀어 보라. 약한 유대 관계는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고, 휴면 상태인 유대 관계는 전 직장 상사나 대학 동창처럼 연락이 끊겼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연구자들은 이 넓은 네트워크(약하거나 휴면 상태인 유대 관계)가 가장 가까운 사람보다 더 많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비즈니스 전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링크드인(Linkedin)’에서 자체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회원들은 가장 가까운 지인보다는 이러한 넓은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경우가 더 많았다.
두렵겠지만 시도해 보라. 한 연구에 참여한 관리자는 같이 일했던 전 동료에게 연락해 조언을 구해볼 것을 요청받았다. 연락하기 전까지 모두 불안한 심정이었으나 대부분은 그 만남이 유용했을 뿐만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