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앞서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5월 6일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앞서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AFP연합

“중국과 프랑스는 오랫동안 서로를 흠모하며 흡수해 왔다. (중략) 중국 인민도 볼테르와 디드로, 위고, 발자크 등 프랑스 문화의 거장을 잘 알고 있다.” 

유럽 3개국(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 순방에 나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5월 5일(이하 현지시각) 오후 프랑스 파리 오를리공항에 도착해 서면으로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이번 순방은 시 주석에게 2019년 3월 이후 5년 만의 유럽 방문이었다. 당시 시 주석은 이탈리아·모나코·프랑스를 차례로 찾았다.  

시 주석이 프랑스 국빈 방문을 시작으로 엿새 동안의 유럽 3개국 순방에 나선 것에 대해서는 서구의 반(反)중국 동맹의 힘을 빼기 위한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미국과 함께 서구 동맹의 양대 축인 유럽연합(EU)의 취약한연결 고리를 집중 공략해 견제 기조에 균열을 내기 위한 일종의 ‘이간질 전략’인 셈이다. 

EU는 2019년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협력 파트너이자 경제적 경쟁자, 체제 라이벌로 규정했다. 모순된 내용이 공존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중국에 대한 27개 EU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특히 EU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2022년 4260억달러(약 578조4228억원)로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미국은 인구 14억의 거대 시장과 첨단 기술, 가격 경쟁력까지 두루 갖춘 중국을 자국의 패권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보고 집중 견제해 왔다. 반면 ‘패권 마인드’가 없는 EU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나 적대감이 미국만큼 강하진 않다. 시 주석은 그런 EU의 회원국과 잠재적 회원국(세르비아는 2012년부터 EU 가입을 추진 중이다) 중에서도 중국에 특별히 더 호의적인 세 나라를 순방국으로 택했다.

헝가리는 EU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一带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다른 EU 국가보다 중국과 훨씬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헝가리의 친(親)중국 움직임이 워낙 노골적이다 보니 서구 매체들로부터 ‘중국이 EU에 설치한 트로이 목마’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중국은 지난 2년 동안 헝가리에 100억달러(약 13조5800억원)가 넘는 투자를 약속했다. 테슬라의 최대 라이벌인 중국 전기차 대기업 BYD(比亞迪·비야디)는 지난해 12월 헝가리에 자동차 조립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헝가리는 중국의 투자에 힘입어 자동차 배터리 등 신기술 부문의 허브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역내 관세 면제 혜택을 원하는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헝가리를 생산 거점 삼아 EU의 중국산 전기차 규제 돌파를 모색할 전망이다.

세르비아도 코소보 문제 등으로 EU와 갈등을 겪으면서 중국,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시 주석의 세르비아 방문은 나토군 폭격기가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피폭 25주년에 맞춰 이뤄졌다. 1999년 5월 7일 미국이 이끄는 나토군의 중국 대사관 폭격으로 중국 기자 세 명이 숨진 사건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바로 오폭이라며 사과했지만, 중국은 이 사건이 고의적이면서 야만적인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시 주석이 세르비아 방문일을 이날로 정한 것은 중국 견제를 위해 동북아시아로의 영역 확장을 시도 중인 나토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中·佛, 녹색 개발과 항공 등 18개 분야 MOU

하지만 시 주석 입장에서 무엇보다 반가운 건 영국이 떠난 EU에서 독일과 함께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세계 7위 경제 대국 프랑스의 환영이다. 프랑스는 EU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독일 에도 핵무기가 배치돼 있지만, 미군의 전략 자산이며 사용 승인 권한도 미국에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4월 25일 파리 소르본대에서 ‘유럽의 미래’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유럽은 미국의 속국이 아니며 세계 모든 지역과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중심 일극 체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일정 부분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을 ‘프랑스식 특급 환대’로 예우했다. 프랑스의 문화적 힘을 은근히 뽐내면서도, 중국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5월 6일 파리 대통령 관저(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는 중국 여배우 공리와 남편인 음악가 장 미셸 자르, 영화감독 뤼크 베송 등 세계적 스타가 출동했다. 이 자리에는 루이비통과 디올, 티파니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명품 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프랑스 출신인 아르노 회장은 2142억달러(약 290조8400억원, 5월 8일 ‘포브스’ 추산)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 1위 부자이기도 하다. 아르노 회장에 등장에는 시 주석의 환심을 사 무역 마찰을 부드럽게 풀어 보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계산이 담겼다. 중국은 올해 초 프랑스산 코냑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는데, LVMH는 코냑 브랜드 ‘헤네시’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이번에 시 주석에게 전달한 선물에는 헤네시 XO를 비롯한 고급 코냑과 와인이 포함됐다. 만찬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 명의 요리사가 출동했다. 시진핑과 마크롱은 식전주로 ‘모엣 샹동 임페리얼 브뤼 로제’ 샴페인을 마셨다. 프랑스 매체들은 “엘리제궁 만찬에 화이트가 아닌 로제 샴페인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며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 문화를 감안했다”고 분석했다. 만찬 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한 외교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이 프랑스 코냑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할 때까지 어떤 종류의 세금이나 관세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프랑스는 이 밖에도 이번 회담을 통해 적잖은 경제 이익을 챙겼다. 

시 주석은 프랑스 농산품에 대한 중국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프랑스의 대중국 주력 수출품은 와인, 치즈 등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두 정상은 중동 정세, 인공지능(AI), 농업 교류, 생물 다양성과 해양 협력 등 4개 분야의 협력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녹색 개발과 항공 등 18개 분야에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프랑스는 항공 분야에서 미국과 세계시장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미국 보잉의 최대 경쟁사인 에어버스는 등기상 본사를 네덜란드에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본사는 프랑스 툴루즈에 있다. 

외교·경제 등 주요 현안에서 입장 차 여전

하지만 공통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오간 두 정상의 ‘덕담’이 중국과 EU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외교·경제 등 주요 현안에서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관련,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과 회담 후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 및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제품 판매·지원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그러나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명분 삼아 러시아·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화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유럽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두고도 긴장이 감돌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이 자국산 제품에 보조금을 과도하게 지급하고 역외 상품에는 차별을 두는 방식으로 불공정한 경쟁을 조장하고 있다’는 EU 인식을 토대로 시 주석에게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EU가 전기차 등 중국산 제품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광범위하게 검토 중인 상황을 염두에 둔 듯 “무역 문제의 정치화, 이데올로기화에 반대한다”고 맞섰다. 

한편 중국과 프랑스의 밀착이 반가울 리 없는 미국은 5월 7일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에 반도체 등을 수출하는 일부 기업의 수출 면허를 취소하며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면허가 취소된 기업에는 인텔과 퀄컴 등 미국 대기업이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