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품 업계가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면서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1분기 전체 화장품 수출액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K뷰티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그룹과 LG생활건강도 긴 부진을 털고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화장품류 수출액은 지난해보다 21.7% 증가한 23억달러(약 3조1558억원)로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였다. 나라별 비중은 중국이 26.6%로 여전히 가장 높았지만 2021년 53.0%에 비하면 중국 쏠림 현상이 크게 완화됐다.
수출액은 미국과 일본에서 많이 증가했다. 수출 비중도 각각 16.4%와 10.5%로 중국의 뒤를 이었다. 미국은 3억7800만달러(약 5186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8.7% 증가했고, 일본도 수출액이 18% 늘었다. 수출국도 175개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이 가운데 110개국이 동기간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중국 의존도 줄이고 美·日로 나가는 K뷰티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으로 대표되는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2010년대 중국 시장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성장했다. 그러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을 시작으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면서 실적이 악화하자 주가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때 178만원까지 치솟았던 LG생활건강 주가는 30만원까지 추락했다. 아모레퍼시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산 화장품의 중국 유통이 막힌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국 화장품 업체들은 상품 개발과 마케팅 강화에 나서 점유율을 늘렸다. 궈차오(國潮·애국 소비) 운동에 자국 제품 소비가 늘면서 한국 제품 입지가 줄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새 중국 내 자국 색조 화장품 브랜드 점유율은 14%에서 28%로 높아졌다.
LG생활건강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3% 감소한 6조8048억원, 영업이익은 31.5% 줄어든 4870억원으로 집계됐다. 화장품 사업만 보면 영업이익 감소율이 52.6%에 달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5% 줄어든 4조213억원, 영업이익이 44.1% 감소한 1520억원이었다. 이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체질 개선을 위해 시장 다변화에 집중했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중소 및 현지 브랜드 인수에 나섰다. 중국 시장에서는 자사 브랜드를 그대로 들고 나가 현지화를 노렸다면, 보다 문턱이 높은, 세계 1위 화장품 시장 미국이나 3위 일본 등에는 이미 현지에서 성공한 브랜드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다가갔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9351억원을 들여 코스알엑스를 사들였다. 아모레퍼시픽의 역대 인수합병(M&A) 가운데 최대 규모다. 아마존부터 뚫는 유통 전략으로 세계 140여 개국에 진출한 코스알엑스는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60%를 웃돈다.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4700억원으로 90% 이상을 북미(미국·캐나다)와 유럽, 일본 등에서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퍼시픽은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2022년 미국 클린 화장품 브랜드 타타 하퍼도 인수했다. 지난해 9월엔 라네즈 브랜드를 내세워 멕시코에 진출했다. 비슷한 시기 헤라가 일본에 공식 진출하는 등 일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사 브랜드를 한데 모아 소개하는 축제도 연다. LG생활건강은 북미 시장에서 본격적인 사업 전개를 위해 2019년 인수한 더 에이본 컴퍼니에 이어 2020년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지역 사업권, 2021년 미국 헤어케어 보인카 등을 각각 품에 안았다. 지난해 미국 더크렘숍도 포트폴리오에 추가했다. 다각화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통해 해외 현지에 맞는 맞춤형 공략법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K뷰티, 올해 1분기 실적 반등… 회복세 본격화
시장 다변화 전략으로 올해 1분기 아모레퍼시픽그룹 매출은 1조68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 대비 0.2%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830억원으로 1.7% 늘었다. 주력 계열사 아모레퍼시픽의 영업이익(727억원)은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중국 등 아시아권 매출(2316억원)이 14% 줄어들었음에도 미주 매출(878억원)이 40%, 유럽·중동 매출(173억원)이 52% 각각 증가했다.
일본에선 색조 브랜드인 VDL, 힌스, 글린트 등을 앞세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힌스는 2019년 일본에 진출한 브랜드로, LG생활건강은 435억원을 들여 지난해 9월 힌스의 모회사인 비바웨이브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5월부터 화장품‧생활용품 브랜드 각각 9개를 일본 온라인에 진출시켰다.
LG생활건강도 2년 만에 영업이익이 반등했다.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지난해 대비 2.7% 늘어난 1조7287억원을, 영업이익은 3.5% 증가한 1510억원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은 같은 기간 일본에서 931억원, 기타 지역(국내, 중국, 북미, 일본 제외)에서 861억원 매출을 올렸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6%, 6.3% 성장했다. 북미 지역 매출은 전년 대비 10.9% 감소한 1216억원에 그쳤다. 여전히 최대 매출 지역인 중국 시장에서는 수익성 개선과 리브랜딩을 동시에 추진해 효과를 봤다. LG생활건강은 더후 리브랜딩 이후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한 결과 중국 매출이 전년 대비 9.9% 증가한 2135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향후 집중 성장 지역을 중심으로 유통 파트너십을 강화할 계획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성장 잠재력이 큰 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지형을 재편하기로 했다. 또 핵심 고객 기반의 새로운 고객관계관리(CRM) 프로그램 실행 등에 주력할 예정이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정상화와 미국 효율화를 추진한다. 미국 자회사 ‘에이본’ 사업의 흑자 전환이 목표다. 또 일본 및 동남아 내 멀티숍 강화, 브랜드 추가 등의 비중국 확장을 이어갈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업황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비중국 판로 개척을 통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것이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기업 분석 보고서를 통해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국내는 채널 다변화, 기타 아시아는 브랜드 추가, 서구권은 포트폴리오 강화가 계속될 것”이라면서 “(실적이) 확실한 개선세”라는 평가를 내놨다.
박은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LG생활건강은 대중국 성장 전환, 국내 성장 채널 확충, 비중국 판로 개척 등으로 지난 2년간의 매출 감소 추세가 종료될 것”이라면서 “수요 회복에 따라 이익 안정성이 정상화하는 가운데, 비중국의 성장 동력 확보로 성장성 또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