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 인공지능(AI),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분야의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2030년까지 국제 표준 250여 건 개발을 추진한다. 첨단산업 분야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 국제 표준의 국내 도입을 서두르고, 첨단산업 분야별 산업 정책과 연계한 국제·국내 표준화 전략을 매년 점검해 기술 발전에 대응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과 한국표준협회는 5월 2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2024 첨단산업 표준 리더십 포럼 총회’ 에서 이 같은 내용의 ‘첨단산업 국가 표준화 전략’을 발표했다.
국표원은 미래 첨단산업 분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인공지능 △미래 차 △미래 선박 △로봇 △첨단 제조 △양자 기술 △핵심 소재 △원자력 △청정에너지 등 12개 분야를 선정하고, 분야별 표준 전략을 수립했다. 전략은 전문가 1000여 명이 참여하는 업종별 민간 표준화 포럼을 중심으로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200여 일간 논의해 마련됐다. 국표원은 “민간 포럼에서 산업별 기술개발 전략을 분석해 1000여 건의 표준 수요를 발굴했다”면서 “시급성과 산업 필요성을 검토해 우선적으로 집중할 국제표준 개발과제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첨단산업 국가 표준화 전략은 △신속화 △민간 주도 △지속 가능성을 3대 원칙으로 삼았다. 국표원 관계자는 “첨단산업은 기술 과 제품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면서 “시장 선점을 위해선 표준 개발의 속도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개발과시장 변화가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민간 주도형 표준화 체계’를 운영할 것”이라며 “민간 중심 표준 개발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도 계속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2030년까지 추진할 첨단산업 국제 표준 250여 건은 △초격차 유지 △신시장 확보 △ 국산화 지원 △미래기술 방향성 정립 등 4개 유형으로 나눠 개발한다. 우선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 중이고, 대규모 R&D 투자가 예정된 첨단산업 분야는 초격차 유지를 목표로 국제표준 개발을 추진한다. 반도체에선 3D· 칩렛 패키징, 디스플레이에선 가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미래 차에선 전기차 충전 커넥터·케이블 및 배터리 안전과 자율주행차 안전 센서 사양 표준화 등을 추진한다. 미래 성장성이 촉망받는 기술의 표준 개발도 추진한다. AI 분야의 신뢰성 확보, 차세대 원전 무선 원격 제어·감시 장비 요건, 초대형 해상 풍력 설계 및 부품 성능 평가 등이 포함됐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부품·기술 국산화 지원 국제 표준과 미래 기술 방향성 정립을 위한 국제 표준 제안도 추진한다. 첨단산업 분야의 국가 표준(KS) 개발·보급도 촉진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청정에너지 등 국내 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관련 국제 표준의 국내 도입을 서두르고, 이차전지, 소재, 자율차 분야 국내 기업 개발 제품·기술의 평가 결과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표준도 개발한다. 국표원은 이러한 표준 개발 계획이 시류에 뒤처지지 않도록 매년 분야별 표준화 전략 이행을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보완할 방침이다.
표준화 국제 협력도 강화한다. 국표원 관계자는 “한국이 첨단산업 분야 국제 표준화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표준 개발 과정에서 글로벌 표준 리더 국가와 국제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 표준 논의에서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ISO와 IEC 등 국제표준화기구 의장단 내 한국인의 진출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AI, 양자기술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협력해야 할 신흥국과의 표준 논의 대화체 신설도 추진한다.
기업의 표준화 활동 지원도 확대한다. 기업과 표준 전문가를 연결해 표준 동향을 제공하고, 기업의 표준안 개발을 지원하는 사업을 확대한다. 아울러 기업 인력의 국제 표준 교육 및 표준화 현장 참여 기회도 늘린다. 기업을 중심으로 ‘세계표준포럼’을 신설해, 기후변화·AI 등 글로벌 이슈를 논의하는 장도 개최한다. 정부 표준 예산도 첨단산업 국제 표준 개발에 집중 투자한다. 국표원 관계자는 “국제 표준 개발과 국가 표준 정비에 표준화 예산의 70%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특히 첨단산업 분야 R&D를 추진할 때 표준 개발도 병행 추진할 수 있도록 연계 지원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블루오션으로 가는 길, 표준"
경제가 어렵다. 고물가 속 치솟는 환율 그리고 중동발 위기까지. 이 밖에도 경제 불안을 야기하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블루오션을 보장하는 시장이 있다고 하면, 누구나 솔깃해할 것이다. 그 시장은 바로 ‘표준’이다.
매일 마주하는 우리 생활 거의 모든 영역에서 표준을 찾을 수 있지만, 표준이 구체적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대표적인 국제 표준화 기구인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는 각각 1947년과 1904년에 시작됐다. 2차 산업혁명의 끝자락에서 출발했다. 산업의 본격적인 발전과 함께 시작된 표준은 기술‧서비스 개발의 가이드로, 품질 보증의 수단으로, 국가 간 중재자로서 그리고 신기술의 선구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시대를 견인해 왔다.
ISO에서 9개 회원국의 사례를 종합해 발간한 ‘표준과 경제성장(Standards & economic growth)’에 따르면, 표준은 기업에 정보를 전달하고, 운영 효율성을 제고하고, 시장 진출을 지원하며, 기술 혁신을 지원한다. 표준이 직접적으로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기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표준협회(BSI)가 527개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는 표준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조사 대상 기업의 48%가 표준으로 인해 순이익이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자동차 산업에서 식품 산업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일관된 응답이었다. 51%의 기업은 표준화를 통해 기업 신뢰도 향상과 고객과 공급 업체 간 관계 개선 효과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품질‧환경같이 산업 기반을 정의하는 표준은 수요자가 기업을 찾게 하는 최소 조건이 된다. 어떤 표준은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분야에 따라서는 표준이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주는 나침반으로 작용한다.
산업의 전방위에서 함께해 온 표준은, 글로벌 경제 시대이자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한 빅 블러(Big Blur) 시대에 글로벌 공급망을 지원하고, 상호 무역을 촉진하는 기반으로서 가치가 더 커질 것이다. 기업으로선 국제 표준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표준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표준 주도권을 차지해 해당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3년 우리 기업들과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OLED 디스플레이가 국제 표준으로 채택된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시장 판매량과 점유율 1위를 지켜 오고 있다. 국제 표준 선점이 10년 이상의 시장을 보장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수출 7000억달러(약 960조4700억원) 달성을 위해 범부처 차원의 청사진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수출 주도 경제성장 국가로서 우리는 표준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올해 국제표준화기구(ISO·IEC)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기술 전문가와 정책 임원은 총 300여 명에 달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20년 전 40여 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성장이다.
한국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12개 첨단산업 분야별 표준 전략 공유를 위한 포럼을 준비 중이다. 2024년이 우리나라 표준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되도록, 필자도 ISO 회장으로 있는 2년 동안 ‘표준 대사’로서 힘을 보태려고 한다. ‘블루오션을 찾고 있는가?’ 표준의 문을 두드려 보길 적극 권한다.
조성환 ISO 회장은 누구?
2022년 회원국 투표를 거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ISO 회장에 취임한 인물이다. 올해 1월 임기를 시작한 조 회장은 2025년 12월까지 2년간 ISO를 진두지휘한다. 1947년 창설된 ISO는 국제 표준을 개발·보급하는 비정부 기구다. 현재 170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1963년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조 회장은 현대오트론 대표와 현대차 연구개발본부 부본부장 등을 거쳐 2020년 현대모비스 대표에 취임했다. 2023년 대표직을 마친 후, 현재까지 현대모비스 고문으로 재임 중이다. 2021년부터는 제1대 한국자율주행산업협회 회장을 맡아 자율주행 기술 확보와 기반 산업 구축에도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