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시장의 기대치를 숫자에 반영한다. 경기 침체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도 그러하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경기가 망가져야 인플레이션이 잡힐 거란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제 경기 침체 없이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할 거란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금리가 내려오고, 경기는 그동안 침체로 가지 않고 버텨주니 주식 투자하기에 매우 좋은 시기가 됐다는 의견이다.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부의장으로 거론되는 오스탄 굴스비는 이를 ‘황금길(golden path)’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작년 말 인플레이션이 안정세를 찾으며 연착륙의 가시성을 높이자, 그의 주장에 힘이 실렸고, 2024년 미국 증시가 강한 상승을 이어가자 이에 동조하는 이도 늘어났다.
동시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역임하며 ‘오바마 경제 교사’로도 불렸던 굴스비를 향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이 재정 정책으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을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선거로 모든 원인을 대체하다 보니 주식시장의 계절성도 올해는 유행이 바뀌었다. ‘5월에 팔고 떠나라’라는 주장은 힘을 잃고,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서머 랠리’ 가능성이 거론된다. 민주당 지지자인 옐런과 굴스비가 바이든의 당선을 위해 무엇이든 할 거란 기대다.
주식시장은 숫자가 지배한다. 여의도 안팎에서 숫자의 오르내림을 놓고, 각기 다른 해석과 시각을 내놓는다. 주장은 숫자에 근거하고, 시장은 이 중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황금길’의 아버지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좁은 길(narrow path)’이다. 길 한쪽으로 떨어지면 경기 침체, 다른 한쪽으로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이 심화한다는 의미다.
황금길에 들어선 건지, 아닌지를 놓고 투자자들은 발표되는 경제 수치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예상과 실제의 간극을 활용한 ‘놀람 지수(Surprise Index)’는 이러한 심리적 변곡점에서 유용하다. 실제 발표된 지표와 시장 컨센서스가 얼마나 부합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수가 0 이상이면 시장 예상보다 실제치가 더 높은 지표가 많다는 뜻이고, 0보다 낮으면 예상에 못 미친 지표가 많다는 의미다. ‘좁은 길’은 경기가 예상보다 나아지고, 물가는 시장 기대보다 낮아져야 가능한 경로다.
경기와 물가, 두 놀람 지수의 차이로 이를 가늠해 봤다. 3월 이후 마이너스(-) 값이다. 경기가 기대에 못 미치고, 물가 압력이 여전하다는 의미다. 물론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파월은 두 가지 책무 중 물가보다는 고용을 중시할 거란 의견을 내비쳤고, 투자자들은 이제 물가가 아닌 고용 지표를 주시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파월의 신뢰도는 낮다.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그의 발언은 오랫동안 회자될 실언이었다. 돈을 푸는 것은 쉽지만 회수하기는 만만치 않다. 돈이 많이 풀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은 진행형이다.
커지는 ‘코스피 3000’ 시대 의구심
매크로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올해 들어 코스피가 강세다. 작년 10월 말 저점(2278포인트) 대비 20% 이상 상승했다. 지수 상승을 주도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였다. 작년 10월 말부터 올해 4월 말까지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25조원을 순매수했다. 4월 말 기준 코스피의 상장 시가총액 2194조원 대비 1.1%를 넘어서는 강한 순매수였다.
2024년 외국인 순매수는 의외인 부분이 있다. 원·달러 환율과 외국인의 순매수 관계 때문이다. 외국인 순매수는 원·달러 환율과 상반된 흐름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시기에 매수를 시작해, 강세 국면에선 매수가 주춤해지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2024년 들어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외국인의 순매수가 나타났다. 왜 달라진 걸까. 수익을 추구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고 판단한다.
고금리 환경에서도 강한 경기를 보이는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에 해당하며, 글로벌 경기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증시는 상당 폭 상승했다. S&P500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왔다. 그만큼 밸류에이션 부담은 높아졌고, 기대 수익률은 낮아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다른 투자 자산을 찾을 만한 환경이었다. 한국 주식이 그 대안이 됐다. 한국은 낮은 밸류 레벨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미국의 성장성을 누릴 수 있는 국가다. 한국 경제의 중심인 수출을 보면, 이제 대(對)미국 수출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충분히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하지만 외국인의 귀환만으로 ‘코스피 3000’ 시대가 열리긴 힘들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개선돼 주가순자산비율(PBR) 수준 자체가 올라서야 한다. 코스피가 연 고점을 기록했던 3월 말 당시 PBR은 1.0배까지 올라섰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PBR이 1.0배를 넘어서는 시기는 긍정적인 수출 증가율과 ROE가 뒷받침되는 시기로 국한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둔다면, 순자산을 감소시키고, 이는 ROE를 개선함에 따라 적정 PBR을 상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당장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익을 기대하긴 어렵다. 아직은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 실효성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채찍과 당근이 필요한데, 그 어느 것도 마땅치 않다.
수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하는 구간이 이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진 기저 효과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 올해 남은 기간에도 기저 효과가 이어지긴 하겠으나, 2023년 1월 수출 금액이 저점이었기에 그 효과는 점차 축소될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이익이다. ROE의 분자에 해당하고, 적정 PBR이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코스피의 상단을 열기 위해서는 이익이 성장해야 한다.
2024년 너무 큰 기대는 접어야
작년 말 2024년 코스피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257조원에 달했다. 2023년 153조원에 비해 100조원 이상 늘고, 과거 최고 수준인 2021년 221조원보다 높을 거란 기대였다. 이전 칼럼에서 이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2024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너무 높고, 결국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분기마다 계단식으로 내려올 거란 논리였다. 1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우려는 우려일 뿐이었다. 발표치를 반영한 영업이익은 51조7000억원에 달한다. 전년 동기 대비 57.7%, 전 분기 대비 72.7% 높은 수치다. 시장의 컨센서스보다도 12.2% 높다. 코스피는 일반적으로 1분기에 컨센서스를 상회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참고로 2015년 이후 매해 1분기 컨센서스 상회 폭은 평균 4.4%였다.
하지만 2024년 2분기 이후 실적 우려는 여전히 상존한다. 한국의 수출 대상국 1위인 미국이 상대적으로 견조한 경기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파월이 5월 FOMC에서 언급한 대로, 현재의 금리는 수요를 억누르는 제약적인 수준이다. 이미 미국의 소비는 소득 증가분을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은 올해 3월을 기점으로 과잉 저축 누적액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즉, 저축을 통해 소비를 늘리는 행위가 이제 마무리되고 있다. 미국의 수요 확대가 주춤해지면, 한국 기업의 수출도 이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영업이익 컨센서스 추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상반기가 지나면 2024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급하게 내려올 수 있다. 2023년 10월 이후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G20 선행지수의 정점은 3분기 중에 도달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11월에 있다. 기대만으로 달려가기에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 실적이 망가지고, 주가가 부러지는 상황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0만 전자’ ‘코스피 3000 시대’는 앞서간 기대일 뿐이라 판단한다. 가치 투자의 구루, 세스 클라먼은 “투자자들은 가격이 하락할 때 공포를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하며, 가격이 상승할 때 너무 열광하거나 욕심부리지 않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거나 파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가만히 있는 것이다. ‘좁은 길’이 진행되는 시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