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다처럼 눈에 검은 마스크를 쓴 동물이 있다. 검은발족제비(black-footed ferret)다. 둘 다 멸종 위기에 몰렸다는 공통점도 있다. 미국 과학자들이 36년 전 냉동한 세포로 멸종 위기에 몰린 검은발족제비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검은발족제비 복제는 2020년 처음 성공했지만, 후손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 두 마리를 추가로 복제해 개체 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어류야생동물보호국(USFWS)은 최근 “지난해 5월 노린(Noreen)과 안토니아(Antonia)라는 이름을 가진 검은발족제비 두 마리가 복제 방식으로 태어났다”고 밝혔다. 두 검은발족제비는 모두 1988년 윌라(Willa)라는 이름의 야생 암컷에게서 채취해 냉동 보관해 온 조직으로 복제됐다.
19세기 100만 마리서 현재 300마리로 급감
검은발족제비는 몸통은 희거나 연한 갈색을 띠고 꼬리와 발, 눈에 검은색 무늬가 있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평원에 산다. 1800년대에는 야생 개체 수가 50만~100만 마리에 달했지만, 농경지가 늘면서 서식지가 사라지고 감염병마저 돌면서 지금은 370마리 정도만 야생 상태로 살고 있다.
과학자들은 야생 검은발족제비를 포획해 사육하면서 개체 수를 늘려왔다. 윌라는 처음 포획된 야생 검은발족제비 중 하나다. 윌라는 생전 새끼를 낳지 못했지만, 샌디에이고 있는 냉동 동물원(Frozen Zoo)에 자신의 유전자와 조직 시료를 남겼다. 냉동 동물원은 약 1000종에서 채취한 세포와 정자, 배아 시료를 1만 개 이상 냉동 보관하고 있다.
연구진은 윌라의 냉동 세포를 배양해 수를 늘렸다. 사육 중인 암컷 족제비에서 채취한 난자에 이 세포를 넣은 뒤 전기 충격을 가해 수정란을 만들었다. 융합 전에 미리 난자의 핵을 제거해, 수정란의 유전자는 윌라 세포와 같다. 마지막으로 복제 수정란을 대리모 암컷의 자궁에 이식해 자라도록 했다.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것과 같은 체세포 핵융합 복제 방식이다.
검은발족제비 복제는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2020년에 역시 윌라의 조직으로 엘리자베스 앤(Elizabeth Ann)이 처음으로 복제됐다. 아쉽게도 앤은 후손을 낳지 못했다. 앤은 콜로라도주에 있는 검은발족제비 보호센터에 살고 있는데 수컷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고 해도, 선천적으로 생식 기관에 문제가 있어 새끼를 낳을 수 없다고 USFWS는 밝혔다.
검은발족제비 유전적 다양성 높일 수 있어
노린은 현재 검은발족제비 보호센터에 살고 있고, 안토니아는 버지니아주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보존생물학 연구소에 있다. USFWS는 “노린과 안토니아는 모두 건강하며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두 마리 모두 짝짓기가 가능한 나이가 되면 번식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복제 동물이 검은발족제비의 유전적 다양성을 늘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2020년 앤, 2023년 노린과 안토니아를 탄생시킨 윌라의 조직에는 현재 개체군에서 평균적으로 발견되는 것보다 유전적 변이가 세 배나 많았다. 지금 검은발족제비에 없는 이러한 유전자를 기존 개체군에 도입하면 종의 유전적 다양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USFWS는 밝혔다.
현재 사육 중인 검은발족제비는 복제한 세 마리를 빼고 모두 1980년대에 포획된 야생 개체 일곱 마리의 후손이다. 조상이 같아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 동물이 감염병에 걸리면 모두 위험해진다. 그만큼 개체 수 회복에 어려움이 있다. 과학자들은 복제를 통해 검은발족제비의 유전적 다양성을 늘리고 자연에 풀어주는 방식으로 개체 수를 늘릴 계획이다. 물론 노린과 안토니아를 수컷과 짝짓기시켜 번식하는 노력도 포함된다.
감염병 막기 위해 드론과 백신도 동원
과학자들은 멸종 위기에 몰린 검은발족제비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USFWS는 1979년 검은발족제비가 자연에서 멸종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다행히 1981년 와이오밍주에서 야생 개체군이 재발견되면서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었다. USFWS는 포획한 야생 검은발족제비를 보호센터에서 번식시켜 수를 늘린 다음 미국 8개 주 34개 지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자연에 풀었다.
동시에 과거 검은발족제비를 몰살시킨 감염병을 막는 노력도 했다. USFWS는 세계자연기금(WWF)과 손잡고 검은발족제비를 감염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몬태나주 서식지 일대에 드론으로 페스트 백신을 살포하는 계획도 추진했다.
백신은 북미 초원 지대에 사는 설치류인 프레리도그(Prairie Dog)를 목표로 했다. 검은발족제비는 프레리도그를 잡아먹고, 그들의 굴도 사용한다. 이 때문에 프레리도그가 페스트에 걸리자, 검은발족제비도 위기를 맞았다. 프레리도그가 백신을 먹고 페스트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면 검은발족제비의 생존 가능성도 커진다. 과학자들은 백신 표면을 프레리도그가 좋아하는 땅콩버터로 덮어 살포했다.
과학자들은 인류를 위협한 감염병 대유행 기간에도 멸종 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2021년에는 보호센터에 있는 검은발족제비들에게 동물용 코로나19 백신도 접종했다. 검은발족제비는 호흡기가 사람과 비슷해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에 사람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백신으로 접종받고 면역력을 얻었다. 검은발족제비는 mRNA백신 대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로 만든 백신을 접종받았다.
2020년 덴마크의 농장에서 키우는 밍크가 사람을 통해 코로나19에 걸린 뒤 다시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옮겼다. 덴마크는 전 세계 밍크 사육의 40%를 차지한다. 그해 11월 덴마크 정부는 농장에서 사육하는 밍크 1700만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좁은 우리에서 밍크 사이로 급속히 퍼지면서 독성이 강한 형태로 변신해 다시 인간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검은발족제비는 과학자들이 접종한 코로나19 백신 덕분에 감염은 물론 살처분도 피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