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산업이 성장하면 폐배터리 물량도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동안 폐배터리의 잔여 수명·용량을 파악하려면 10시간씩 걸렸는데, 우리 회사 기술을 쓰면 수 초 만에 잔량을 파악, 어떤 배터리는 재활용하고, 폐기 처분할 수 있을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5월 10일 일본 도쿄 도라노몬 힐스 모리 타워에서 만난 고이쿠배터리의 타바타 아키라 최고경영자(CEO), 타바타 이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이같이 말했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다. 2014년 일본 오사카에 설립된 고이쿠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잔량을 10초 내에 진단하는 기술을 특허로 보유하고 있다. 샤프 에너지연구소 소장을 지낸 다카오카 히로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핵심 기술을 만들었다. 이를 진단하는 장치 개발도 마쳤다. 이날 도쿄에선 GS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GS벤처스가 고이쿠배터리 측에 8000만엔(약 7억원)을 투자하는 계약 체결식이 열렸다.

 GS는 전기차 충전 사업자 1위인 GS차지비와 전국 500여 개 자동차 정비소 ‘오토오아시스’를 운영 중인 GS엠비즈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홍석현 GS벤처스 이사(투자심사역)는 “전기차 시대에 고이쿠배터리의 배터리 진단 기술이 사업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GS에너지·GS건설이 폐배터리 재활용을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어 여기에서도 협력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했다.

 그동안 보수적이었던 일본 창업계는 2022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일본은 2027년까지 10조엔(약 88조원)을 투자해 스타트업 10만 개,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100개를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타바타 CEO는 “최근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이뤄지진 않고 있다”면서 “일본에는 숨겨진 기술 좋은 회사가 매우 많은 만큼 한국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발굴해 투자해 준다면 사업화에 속도를 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CEO및 COO와 함께 진행한 일문일답.

고속으로 배터리 잔량을 진단하는 기술을 소개해 달라.

 “지금까지 배터리 잔량을 측정하려면 배터리를 100% 충전했을 때 방전한 양을 용량으로 산출해 왔다. 이는 시간·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고이쿠배터리는 충전하는 순간 리튬이온이 들어가는 전극의 반응 면적으로부터 용량을 역산하는 방식으로 단 수 초 만에 이를 구현한다. 배터리를 차량에서 분리하지 않고, 충전해 보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배터리 잔량 측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기술이 사업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나.

 “전기차 정비소나 중고차 판매회사 등 배터리 잔량 측정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장비를 팔 수 있다. 기술·진단 소프트웨어(SW) 사용료도 받을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차의 남은 가치를 빠르게 파악해 잔존 가치 평가, 수명 예측 증명서를 발행하는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수익화할 것이다.

 배터리 재활용(리사이클) 시장에도 진입할 수 있다. 현재는 사용 가능한 배터리까지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잔존 수명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면 수거된 배터리 상태에 따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용도 전환할 수 있다.

 꼭 전기차뿐 아니라 리튬이온배터리가 들어가는 휴대전화 등 장비를 리스해 주는 회사가 이를 회수했을 때 얼마만큼 더 쓸 수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GS로부터 받은 투자금은 어떻게 쓸 생각인가.

 “세계적으로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배터리 고속 진단은 필수 기술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배터리 잔량 진단 장치 개발을 마친 만큼 실제 이를 제조하기 위한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또 내수용 전기차 배터리 진단 기술을 한국 등 해외에서도 쓸 수 있도록 현지화하기 위한 연구에도 나설 예정이다. 인재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최근 일본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약 20년 전 대기업이 사내 혁신(이노베이션) 팀을 만들어 신기술·신사업을 육성하고 개발하려고 노력했다. 결론적으론 실패했다. 대기업이 보수적이고 매뉴얼을 중시하다 보니 맞지 않았던 것이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아이를 키우듯 회사를 오래 육성해 나가는 편이다. 미국처럼 빨리 성장시켜 매각하거나 상장시키는 속전속결 문화가 없다 보니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데 관심이 커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지원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파격적이진 않아 아쉽다. 일본에는 고이쿠배터리처럼 기술력이 좋은 회사가 많이 숨겨져 있다. 한국 투자회사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투자해 준다면, 일본 스타트업 업계뿐만 아니라 좋은 기술을 쓸 수 있는 한국에도 좋은 일이다.” 

Plus Point

日 두드리는 韓 스타트업 “라인 사태? 인재 찾는 게 더 힘들어”

5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
관과 만난 스타트업 대표들. 왼쪽부터 조민희 알리
콘 대표, 윤찬 에버엑스 대표, 최재용 채널코퍼레이
션 일본지사장.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5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 관과 만난 스타트업 대표들. 왼쪽부터 조민희 알리 콘 대표, 윤찬 에버엑스 대표, 최재용 채널코퍼레이 션 일본지사장. 사진 중소벤처기업부

 최근 일본 정부는 국민 메신저 ‘라인’이 작년 11월 해킹당한 것을 빌미로, 네이버 측에 ‘라인야후’의 지분 정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현지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한국 스타트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5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정세형 오비스 대표는 “이번 라인 사태는 굉장히 의외였다”면서 “SaaS (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납품할 때 해외에 데이터를 보존해도 된다는 것이 일본 정부다. 개인 정보보다는 많은 사람이 쓰는 ‘라인’의 영향력을 견제한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인공지능(AI) 비즈니스 메신저 ‘채널톡’으로 현지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채널코퍼레이션의 최재용 일본지사장은 “일본 정부의 요구가 너무 이례적이어서 불확실성이 없지는 않지만, 이는 사업이 라인만큼 컸을 때 일인 만큼 스타트업이 걱정하기엔 먼 미래”라고 말했다. 또 “라인 인재가 새로 창업하거나 이직하면서 스타트업 시장엔 좋은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라인 사태보다는 일본 현지 사업 세팅, 공략을 위해 적합한 인재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했다.

 6월부터 현지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1위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는 “필요한 경우 일본에 있는 좋은 회사를 인수합병(M&A)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AI 공간 운영 자동화 솔루션을 운영하는 알리콘의 조민희 대표는 “(선후배, 전문가가 서로 끌어주는)네트워크가 많이 필요하다”며 “이 덕에 통상 3년 이상 걸린다는 현지법인 세팅이 1년 만에 마무리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