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건대 앞 특 A급 상권인데, 권리금 3억원에 월세 1000만원을 주고도 셀프 스튜디오가 살아남는다는 거죠.”(광진구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5월 10일 찾은 서울 광진구 서울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앞 상가 골목. 고깃집과 술집이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좁은 도로 사이에 몇 발짝 건너 한 곳씩 눈에 띄는 점포가 있었다. 가게마다 일반인 얼굴 사진이 붙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지만, 사진 콘셉트가 겹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셀프 스튜디오’다. 셀프 스튜디오에선 평일 낮 시간임에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촬영 전 거울을 보며 사진을 찍기 위해 단장 중인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셀프 스튜디오는 과거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과 비슷한 콘셉트로 몇 년 전 ‘인생네컷’ 을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애초 인생네컷도 건대 인근 길거리에 자판기 형태로 시작했다. 이용자가 점점 몰려들고 줄을 서기도 하는 등 인기를 끌자, 지금의 점포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후 셀프 스튜디오 프렌차이즈까지 생겨나면서 대학가에만 수십 곳의 셀프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되는 셀프 스튜디오 프랜차이즈만 10여 곳이 넘는다.
과거 ‘대만 카스텔라’처럼, 한 철 유행에 불과한 게 아니냐는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최근까지 ‘국민 간식’으로 열풍이 불었던 탕후루 가게도 올해 들어 폐업 점포 수가 개업 점포 수를 앞질렀다. 행정안전부에따르면, 올 들어 5월 13일까지 전국 탕후루 가게 누적 폐업 건수는 118건으로 집계됐다. 반면 신규 개업 누적 건수는 71건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수치다. 2023년 한 해에만 1374곳의 탕후루 가게가 새로 문을 열었다. 폐업 건수도 2022년까지는 10곳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23년엔 72곳으로 뛰었고 올해 100곳 이상이 또 문을 닫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가 부동산 전문가는 “예전부터 단발적으로 유행하는 아이템은 2~3년을 주기로 반짝 흥했다가 사라졌다”면서 “셀프 스튜디오 역시 이 같은 전철을 밟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셀프 스튜디오 유행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유행이 사라지려면 폐업 사례가 많아야 하는데, 폐업보다 리뉴얼하거나 같은 점주가 추가로 개점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랜차이즈로 첫 매장에서 큰 수익을 거두고 다른 콘셉트로 개인 사업자 셀프 스튜디오를 내는 식이다.
실제 건대입구역 1번 출구 인근에 있는 한 셀프 스튜디오는 문을 닫은 채 공사 중이었는데, 업종 변경이 아니라 브랜드 리뉴얼을 위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광진구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한 군데 운영해 보고 수익이 좋아, 한 골목 건너 추가로 개점하는 사례도 있다”면서 “추가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점주도 있다”고 했다.
건대 인근에서 셀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C씨는 “처음에는 2030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했지만, 점차 동창회나 산악회 등 5060을 주축으로 한 모임에서 셀프 스튜디오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서 “수요층이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셀프 스튜디오 임대를 여러 건 성사시켰다는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셀프 스튜디오는 카메라 각도와 조명, 반투명 필름 등 콘셉트가 다양하다”면서 “유행이 지나거나 사업성이 나오지 않으면 리뉴얼을 통해 다시 오픈하기 때문에 문의가 꾸준하다. 다른 업종보다 수익이 덜 남는다고 하더라도 무인으로 운영돼 인건비가 절감되고 고정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국내 사진 촬영 및 처리업 사업체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9138곳에 불과했지만, 2018년 9662곳으로 급증한 뒤 2019년 9862곳까지 늘어났다. 최근에는 1만 곳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셀프 스튜디오가 늘어난 만큼 경쟁도 심해졌다. 창업한 지 1~2년 내 폐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셀프 스튜디오는 기기 구입 비용이 대당 1500만원 수준으로 창업 비용이 적은 게 장점이지만, 폐업 시에는 500만원 안팎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창업 이전 주변 입지 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종필 상가레이다 대표는 “요즘 폐업보다는 가게를 넘기는 추세이기 때문에 기곗값보다는 트렌드의 지속성을 생각하고 투자해야 한다”면서 “유행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당장 벌이가 좋다고 창업이나 투자 비용을 크게 가져갈 경우 원금만 겨우 회수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건대입구 상권 쇠퇴 영향도
한편으로 최근 높아진 셀프 스튜디오 인기가 대학가 상권 쇠퇴와 관련 있다는 의견도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대학가 상권으로 알려진 건대 역시 공실률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건대입구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9.3%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공실률이 치솟았던 2020년 4분기 공실률(5.5%)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2022년 1분기(4.8%)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는 건대입구와 인접한 성수동 상권 성장과도 연관돼 있다. 성수동이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열광하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하면서 건대 상권의 기존 수요층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성수동의 오피스 공실률은 0%에 달한다. 이는 서울 3대 업무 지구인 광화문(4.4%), 강남(3.7%), 여의도(2.9%)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성수동은 부동산 침체기였던 2022년 1분기 이후 8분기 연속 오피스 공실률 0%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임대료도 상승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 기업 알스퀘어는 실제 계약된 사례를 기준으로 성수동 임대료가 2021년 기준 3.3㎡당 21만1000원이었지만, 지난해 3.3㎡당 23만9000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성수는 지금도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패션 브랜드 무신사가 남(南)성수 곳곳에 둥지를 틀었고, 올해는 젠틀몬스터와 3세대 오피스 ‘팩토리얼 성수’의 신사옥이 들어선다. 2027년에는 성수 이마트 부지에 약 21만4500㎡ 규모의 초대형 오피스도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