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경북 포항시 송도해수욕장에서 바라본 포스코 포항제철소. 카이트보드가 제철소와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달리고 있다. 사진 뉴스1
5월 8일 경북 포항시 송도해수욕장에서 바라본 포스코 포항제철소. 카이트보드가 제철소와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달리고 있다. 사진 뉴스1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 산업은 자동차, 조선, 기계 등 대부분의 주요 산업과 인프라에 기초 소재를 공급하며 다양한 경제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국가의 산업화와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철강 산업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근대화를 견인하고 산업화의 근간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실제로 국내 철강 산업의 세계적인 위상은 여러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도 국가 및 회사별 조강 생산량을 비교한 세계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6580만t으로 조강 생산량 세계 6위이며, 단일 제철소로는 포스코(POSCO)가 7위, 현대제철이 18위를 차지하고 있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3위다. 철강사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세계적인 철강 전문 분석 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는 포스코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14년째 뽑고 있다.

이처럼 탄탄하게 자리 잡은 철강 산업 덕분에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철강 산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바로 탄소 배출이다. 국내 철강사들이 내뿜는 탄소 배출량은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한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 부문의 총탄소 배출량 중 약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탄소 중립과 철강 산업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배출량은 흡수하거나 상쇄하여 실질적인 순 배출량(배출량–흡수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미 전 세계 130여 개국이 탄소 중립을 선언했으며, 9000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도 동참하고 나섰다. 

철강 산업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9% 정도를 배출하는 대표적인 탄소 다(多)배출 산업이다. 전통적으로 철을 만드는 ‘고로(용광로) 공법’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기 위해 석탄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전 산업 중에서 철강 산업의 배출량이 절대적으로 많은 이유다. 

철강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야 한다. 석탄 대신 수소를 쓰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만 나온다. 이른바 수소환원제철 방식으로 세계 모든 철강사가 탄소 중립을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하고 있다.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과장 세종대 환경공학 학·석·박사, 현 세종대·카이스트(KAIST) 겸임교수
이시형 대한상공회의소 탄소중립실 과장
세종대 환경공학 학·석·박사, 현 세종대·카이스트(KAIST) 겸임교수

미국의 산업 실증 프로그램(Industrial De-mostrations Program)

올해 3월 미국은 철강, 화학, 시멘트 등 탄소 감축이 어려운 산업(hard-to-decarbon-ize industries)의 탈탄소화를 지원하기 위해 20개 이상의 주에서 33개 프로젝트에 60억달러(약 8조55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업 탈탄소화 투자이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매년 1400만t의 탄소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철강 부문의 경우 탈탄소화를 위해 약 15억달러(약 2조100억원)가 투입될 예정이며, 이 중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및 설비 전환을 위해 최대 10억달러(약 1조3400억원)의 투자가 확정됐다. 이번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 외에도 이전부터 진행해 온 각 주정부 지원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통한 세제 혜택 등을 포함하면 철강 산업에 투자되고 있는 공공 지원금의 규모는 훨씬 큰 상황이다. 

미국은 고로 기반 생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에서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기존 고로 설비의 폐쇄 및 수소환원제철 설비로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저탄소 철강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일본의 그린이노베이션(Green Innovation)

일본의 경우 ‘그린 성장 전략’을 발표하면서 2조엔(약 20조원) 규모의 그린이노베이션기금(GI 기금)을 조성했다. 이는 탄소 중립 사회 실현을 위한 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으로 철강, 수소, 배터리 등을 포함한 14개 중점 분야 연구개발 및 실증 프로젝트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철강 산업 역시 해당 기금을 통해 4499억엔(약 4조491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이 중 약 1조5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러한 대규모의 정부 지원을 통해 철강 산업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철강 산업이 경쟁력을 지속 유지할 수 있도록 타국보다 먼저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상용화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개발된 기술을 통해 해외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 지원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철강 생산량의 약 70%를 석탄 고로 공정을 통해 생산한다. 철강 제품 생산량이 곧 온실가스 배출량과 정비례하는 구조다. 이러한 특성으로 국내 철강 산업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배출권 거래제 등 국내외 탄소 감축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에 한국도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HyREX) 기술을 개발 중에 있다. 재생에너지와 고품질 철광석이 풍부한 유럽과 달리 자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내 여건에 맞춰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선도적으로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글로벌 저탄소 철강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나, 현재 기술 개발 속도는 다른 글로벌 철강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뒤처져 있다고 평가된다.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를 위해 현재까지 확정된 정부 지원금은 2685억원에 불과하며, 이 중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을 위해 배정된 예산은 고작 269억원뿐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해당 기술의 실제 적용 가능성과 효율성 등을 평가하는 실증 프로젝트 예산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수준의 정부 지원으로는 최소 5~10년을 앞서간 선도 국가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주요 경쟁국이 자국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다. 한국 철강 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해 정부의 대규모 공적 자금 투입과 실증 사업 추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