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다스’가 등장한 지 2년이 됐다. 구찌가 아디다스와 협업으로 선보였던 컬렉션의공식 명칭은 ‘익스퀴지트 구찌(Exquisite Gucci)’였다. 구찌는 ‘역대급 컬래버’ ‘기대를 뛰어넘는 협업’이라는 찬사를 들었고 밀레니얼 세대(1981~96년생)에게서의 브랜드 존재감을 강력하게 구축했다는 평을 들었다. 리브랜딩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마케팅은 ‘시장을 만드는 것’, 브랜드는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브랜딩은 ‘브랜드의 의미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원래 브랜딩은 ‘이름 짓고 슬로건 뽑아내고(버벌 브랜딩)’ ‘로고나 패키지 등 그림 그리는(비주얼 브랜딩)’ 작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쓰였다. 브랜딩을 기술적인 작업으로만 생각하면 ‘로고나 심벌 등 비주얼 요소를 바꾸는 것이 리브랜딩’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브랜딩은 브랜드의 ‘의미를 경험하게 하는 활동’, 즉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기에 리브랜딩을 ‘브랜드 리뉴얼(브랜딩 요소를 바꾸는 작업)’로 보면 안 된다. 리브랜딩이란 다시(re) 브랜딩(brand-ing)을 한다는 말, 그래서 리브랜딩은 ‘브랜드 경험을 다시 만든다, 브랜드 경험을 개선한다’는 의미여야 한다. 좋아진 브랜드 경험으로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고 호감도가 상승해서 그 결과 매출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활동이 리브랜딩이다. 리브랜딩을 하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다. 개념적인 정리를 위해 유형화가 필요하다. 리브랜딩 유형은 목적의 방향성(긍정 강화냐 부정 약화냐)과 집행의 시기성(상대적으로 선제적인가 사후적인가), 두 축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1 | 포지셔닝 조정, 브랜드 리프레시
세상은 빨리 변한다. 변화를 무시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일관성 유지와 브랜드의 신선감 제고가 양립할 수 없는 일로 여기며 아무런 변화도 수용하지 못하는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는 ‘브랜드 피로감(Brand Fa-tigue)’을 느끼게 된다. 이 경우 타깃이나 메시지를 재설정하는 포지셔닝 조정으로 선제적인 리브랜딩을 할 수 있다. ‘핵심 고객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타깃 고객층에 맞게 브랜드 경험을 개선하는 것’이 성공 요건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구찌는 노쇠한 브랜드로 인식될 우려가 있어 보였다. 2015년 구찌는 결단을 내린다. 핵심 타깃을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수정한 것이다.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빈티지하면서 젠더 구분이 없는 스타일의 제품을 선보였다. 아디다스와 협업도 포지셔닝 조정의 일환이었다. 커뮤니케이션 채널도 온라인 중심으로 조정하면서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1997~2010년생)가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설화수 리브랜딩도 구찌와 비슷한 맥락에서 진행됐다. 한샘은 토털 홈 인테리어 기업이라는 지향점에 맞는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려고 최근 30여 년 만에 로고를 부분적으로 변경했다. 브랜드 리프레시의 좋은 사례다.
2 | 부정적 인식 탈피, 이미지 혁신
부정적 인식이 쌓이는 것을 뒤늦게 감지하고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가 떠올리는 ‘연상 이미지’를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리브랜딩이다. 비주얼 등 브랜드 리뉴얼 작업이 수반돼야 한다. 이때 성공 조건은 ‘JND(Just Noticeable Difference)를 훌쩍 뛰어넘는 변화’다. JND는 두 자극이 서로 다르다고 식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차이를 뜻한다. 예전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구나’라는 반응이 나오도록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아니라면, 시장이나 사회적 가치의 변화에 대응하는 리브랜딩이 있다. 이때의 성공 조건은 ‘관점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BP’는 1909년에 설립된, 전 세계 2위 석유화학 기업이다. BP는 ‘British Petroleum’의 약자이자, 애칭이다. 환경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어젠다로 부상한 후 BP는 2000년에 의미 재해석을 통한 리브랜딩을 단행했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ritish Petroleum)’을 ‘비욘드 페트롤리엄(Beyond Petroleum)’으로 바꾸고, 로고도 태양 이미지로 교체했다.
KFC는 ‘Kentucky Fried Chicken’의 약자다. 1991년부터 약칭인 ‘KFC’로 기업명을 변경했다. Kentucky Fried Chicken에서 KFC로 바꾼 이유는 ‘fried’가 주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에서 ‘케이 에프 시’로 바꾼다고 ‘프라이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부정적 의미 축소를 위한 리브랜딩의 성공 사례다.
3 | 부정적 인식 탈피, 이미지 혁신
‘우리는 무엇을 한다’를 재정립하고 ‘혁신 가치’를 추가하는 선제적이며 긍정적인 리브랜딩이다. 이 경우 성공 요건은 ‘확장된 업의 개념’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미래 가치를 높이는 ‘업의 개념’이 브랜딩 요소로 잘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리뉴얼 작업이 부분적으로 수반된다.
2021년 사명에서 ‘차(車)’를 떼고 리브랜딩에 나섰던 기아는 3년 만에 영업이익이 여섯 배나 뛰었다. 기아차에서 기아로 사명을 변경하고 로고와 슬로건도 바꾼 것은 기아가 차량 제조와 판매를 넘어 고객에게 혁신적인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함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브랜드 슬로건 ‘Movement that inspires’는 차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모빌리티, 차원이 달라진 업의 개념을 잘 나타낸 것으로 호평받았다.
토스는 2015년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간편송금’을 선보이며 성장한 금융 플랫폼이다. 2022년 가을 새로운 로고로 리브랜딩의 시작을 알린 바 있다. 금융 슈퍼 앱으로 성장한 토스는 시장 진입 초기 마케팅을 위해 강조한 ‘송금 서비스’가 미래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빨리 자각했다. 브랜딩 요소의 변화 즉 메인 컬러는 유지한 삼차원 디자인의 로고로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4 | M&A 등 非일상적인 상황
법인격이 바뀌는 상황의 리브랜딩이다. 신규 브랜드 도입에 준하는 리브랜딩이다.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이름도 얼굴도 다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CJ헬스케어가 ‘HK이노엔’으로 바뀐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가장 중요한 성공 조건은 바로 ‘브랜드 목적의 재정립’이다. 비록 인수합병(M&A)이 됐어도 우리가 그동안 해왔고 앞으로 하려고 하는 자랑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거기에 우리가 어떤 세상을 바라고 세상을 향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자랑거리와 세계관에서 공통점을 찾아 궁극적인 브랜드 목적을 정립해야 한다. 또 브랜드 목적이 소비자의 직접 경험에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을 전제로 브랜딩 요소를 만들어내면 된다. ‘이름과 얼굴이 바뀌었는데 그전과 다른 게 없더라’는 반응이 나온다면 확실한 실패의 신호다. 경영자의 강력한 의지로 리브랜딩하는 경우 종종 브랜드 목적의 재정립이란 재미없는 과정을 생략하기 쉽다. 트위터에서 바뀐 ‘X’, 페이스북에서 리브랜딩한 ‘메타’의 경우가 그러하다. 얼굴과 이름이 바뀌었지만 ‘소비자 경험이 개선됐나’ ‘어떤 의미를 나에게 주는가’에명쾌한 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