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지코어 드레스를 입은 켄달 제너. 사진 켄달 제너 인스타그램
코타지코어 드레스를 입은 켄달 제너. 사진 켄달 제너 인스타그램

바비코어(barbiecore), 걸코어(gilrcore), 고프코어(gorpcore), 발레코어(balletcore), 테니스코어(tenniscore). 몇 년 전부터 패션 트렌드의 접미사에 ‘코어(core)’가 공식처럼 붙기 시작했다. 이제는 트렌드를 표현하는 공식 용어가 된 듯 보인다. 패션 트렌드를 표현하는 ‘시크(chic)’는 지난 세대의 언어가 됐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져 나간 젠지(Gen-Z·Z 세대, 1997~2010년생) 언어 코어가 그 왕관을 물려받았다.

패션계가 사랑하던 단어, 시크

코어는 뉴 시크다(Core is the New Chic)! 미국 ‘보그’를 비롯한 해외 패션 언론이 내린 정의다. 코어 이전에 시크는 대체 불가의 패션 언어로 군림했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은 시크를 ‘일반적으로 특정 종류의 스타일리시함과 우아함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패션계에서 시크를 사용한 역사도 꽤 깊다. 흥미로운 건, 1864년 프랑스 평론가 샤를 보들레르가 “시크는 최근에 만들어진 끔찍하고 이상한 단어로, 철자법도 모르는 자들의 언어”라고 악평한 것이다. 그의 악평에도 불구하고 시크는 패션계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의 하나가 됐다. 옥스퍼드영어사전은 시크가 1860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1887년 영국 주간지 ‘더 레이디(The Lady)’ 기사에도 시크가 사용된 기록이 발견된다. 그 후 미국 재즈 시대가 한창이던 1920년대부터 시크는 패션계에 대유행을 일으켰다. 여러 오스카상을 받아 가장 영향력 있는 할리우드 의상 디자이너로 꼽히는 에디스 헤드는 1954년 영화 ‘사브리나’의 오드리 헵번 드레스에 대해 “시크함이 없는 사람이 입었다면 결코 스타일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시크함에 트렌드가 붙어 하위 집합이 생기기 시작한 건, 1960년대다. 화려한 프랑스 스타일에서 영감받은 트레 시크(très chic), 독일에서 영감받은 우버 시크(uber chic) 등이 당시 나타난 시크의 하위 집합 트렌드다. 이후 오늘날까지 프렌치 시크, 어반 시크, 미니멀 시크, 보호 시크(boho chic·보헤미안 스타일), 헤로인 시크(heroine chic·1990년대 케이트 모스로 대표되는 몽롱하고 다소 퇴폐적인 이미지), 긱 시크(geek chic·괴짜 스타일) 등 매년 수없이 많은 시크 트렌드가 탄생돼 왔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코어, 시크를 대체하다

그러나 틱톡 같은 SNS가 급부상하며, 전통 깊은 패션 언어 시크는 코어로 교체돼 가기 시작했다. 코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하드코어(hardcore·어떤 분야에서 매우 심한 속성을 지녔음을 가리키는 말)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코어라는 단어 자체가 지닌 ‘핵심’이라는 의미는 어떤 특정한 것에 집중하는 일종의 ‘덕후’적인 성향이 있다. 노멀(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가 합쳐진 놈코어(normcore·일상복 같은 자연스러운 룩)가 트렌드 어로 제시된 이후, 코어는 트렌드 경향에 붙는 접미사가 됐다. 코어 트렌드들은 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젠지에게 폭발적으로 바이럴 됐다. 뭔가 하나에 깊게 빠지고 몰두하는 덕후 성향이 있는 젠지가 코어라는 강렬한 접미사에 말 그대로 ‘꽂힌’ 것이다.


코어 트렌드가 처음 퍼져 나가기 시작할 땐 덕후적인 경향이 강했다. 만약 바비코어 트렌드를 즐긴다면, 누가 봐도 바비 덕후라고 인정할 만하도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비 그 자체인 패션과 뷰티를 보여줬다. 그래서 틱톡을 돌아다니는 코어 패션은 ‘주의력 결핍 패션’이라고 진단받기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좋아요’와 ‘구독’ 버튼을 유도하기 위해, 단번에 눈을 사로잡는 독특한 ‘도파민 패션’을 선보여야 했고, 그 바이럴의 물결 속도는 지나치게 빨라 ‘주의력 결핍 패션’이라 불릴 만했다.

1 영화 ‘챌린저스’ 프레스 투어에서 테니스코어 룩을 입은 젠데이아 콜먼과 테니스공 모양 굽인 구두. 사진 AFP연합 2 바비코어 열풍을 일으킨 영화 ‘바비’. 사진 바비 공식 인스타그램  3 발레코어 룩을 연출한 제니. 사진 제니 인스타그램
1 영화 ‘챌린저스’ 프레스 투어에서 테니스코어 룩을 입은 젠데이아 콜먼과 테니스공 모양 굽인 구두. 사진 AFP연합 2 바비코어 열풍을 일으킨 영화 ‘바비’. 사진 바비 공식 인스타그램 3 발레코어 룩을 연출한 제니. 사진 제니 인스타그램

코어 트렌드, 소비자를 추종자에서 창조·전파자로 

코어 트렌드는 ‘마이크로 트렌드’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전에는 몇 개의 메인 트렌드가 패션과 뷰티 전반을 독점하듯 지배했지만, 그런 메인 트렌드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한 시즌에도 수많은 트렌드가 떠오르고, 사라지며, 겹치고, 또한 진화돼 간다. 예를 들어, 지난여름 영화가 일으킨 바비코어 트렌드는 크게 걸코어 트렌드 안에 들어간다. 소녀 취향의 걸코어 트렌드 아래, 바비코어, 발레코어, 테니스코어 등이 가지를 뻗어 나간다. 소녀 룩이 유행이어도 다양하게 취향대로 즐기고 변화시켜 가고 또는 모든 걸 믹스해 즐기는 마이크로 트렌드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패션 심리학자이자 컨설턴트이며, ‘빅 드레스 에너지(Big Dress Energy)’의 저자인 샤카일라 포브스 벨은 소셜미디어가 뒤바꾼 코어 트렌드의 등장이 소비자를 ‘트렌드 추종자’에서 ‘트렌드 큐레이터’로, 다시 ‘트렌드 창조자 및 전파자’로 변화시켜 왔다고 설명한다. 몇몇 패션 관계자는 코어 트렌드가 개성을 잃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고 비판했지만, 그건 코어 트렌드에 대한 ‘수박 겉핥기’ 식 분석이다. 메인 트렌드 안에 수많은 마이크로 트렌드를 파생시키는 코어는 트렌드 큐레이터로서, 자신의 취향대로 트렌드를 선별하고 즐기도록 한다. 또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창조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하게끔 한다. 코어를 끝에 붙인 트렌드가 왜 이렇게 많냐며 정신없다고 말하면, 이미 당신은 구세대적일 수 있다. 혼란스럽거나 정신없어 보일 수 있지만, 개인 크리에이터 시대의 코어는 트렌드를 바라보는 각양각색의 시선이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