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타 테료신(Nikita Teryoshin)의 ‘개인적인 것은 없다-전쟁의 백오피스(Nothing Personal-The Back Office of War)’ 표지. 사진 김진영
니키타 테료신(Nikita Teryoshin)의 ‘개인적인 것은 없다-전쟁의 백오피스(Nothing Personal-The Back Office of War)’ 표지. 사진 김진영

매일 뉴스에서 우리는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파괴 이미지를 접하게 된다. 이는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고 세계 무기 지출이 증가함을 암시한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불행인 전쟁이 일부 사람에게는 좋은 사업의 기회가 된다. 주요 방산 업체는 전쟁이 중단되기보다는 지속되는 것을 희망할 것이다. 무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수십억달러 규모의 거래를 이어가려면 전쟁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무기는 어떻게 소개되고 홍보되며, 방산 산업을 둘러싼 주체들은 누구이며, 이들의 거래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일반인이 글로벌 무기 사업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니키타 테료신(Nikita Teryoshin)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사하기 위해,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간 세계 곳곳에서 개최된 열여섯 개의 무기 박람회를 방문했다. 무기 산업의 글로벌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테료신은 한국, 프랑스, 남아프리카, 페루, 러시아, 중국, 미국, 인도, 아랍에미리트, 벨라루스, 폴란드, 베트남 등 모든 대륙에서 대중에게는 비공개로 개최되는 무기 박람회에 접근권을 얻어 작업을 진행했다.

‘개인적인 것은 없다-전쟁의 백오피스(Nothing Personal-The Back Office of War)’는 무기 박람회에서 촬영한 사진을 통해, 전쟁터 정반대 편에 존재하는 전쟁의 백오피스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바주카포, 기관총, 탱크 등 전쟁 무기를 배경으로 정장이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간다. 음료와 주류, 다양한 핑거푸드가 제공되는 무기 박람회에서 테료신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해 있는 장면을 대담하게 포착한다. 박람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고 과일과 케이크 등 핑거푸드를 먹으면서 전쟁 시뮬레이션을 관람하고 반짝이는 대량 살상 무기를 살펴본다. 무기 사이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커피잔이 있고, 탱크 앞에는 맥주병이 얼음에 둘러싸인 채 놓여있다. 이렇다 보니 전시돼 있는 미사일이 언뜻 샴페인병으로 보일 정도이다. 우리가 전쟁과 연관시키기 어려운 요소들의 등장은 시각적 유머로 작동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냉소적인 반응을 유도해 낸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 점은 테료신이 박람회에 참가한 인물들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총, 아이패드, 무기 브로슈어같이 인물이 들고 있는 물건이나 현장에 놓인 소품, 혹은 모형 탱크나 현장 구조물이 인물의 얼굴을 절묘하게 가린 순간 촬영한 사진들이 돋보인다. 또는 인물의 얼굴이 포함되지 않도록 사진을 크롭핑하기도 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무기 산업에 참여하는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게 하기보다 산업을 작동시키는 전반적인 시스템에 주목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책은 무기 박람회에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해 있는 장면을 대담하게 포착한다. 무기 사이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커피잔이 있고, 탱크 앞에는 맥주병이 얼음에 둘러싸인 채 놓여있다. 우리가 전쟁과 연관시키기 어려운 요소들의 등장은 시각적 유머로 작동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냉소적인 반응을 유도해 낸다. 사진 김진영
책은 무기 박람회에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해 있는 장면을 대담하게 포착한다. 무기 사이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커피잔이 있고, 탱크 앞에는 맥주병이 얼음에 둘러싸인 채 놓여있다. 우리가 전쟁과 연관시키기 어려운 요소들의 등장은 시각적 유머로 작동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냉소적인 반응을 유도해 낸다. 사진 김진영

책은 이러한 사진들을 장소나 시간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플래시를 터트려 찍는 일관된 방식으로 촬영된 이 사진들은 사실 열여섯 개나 되는 무기 박람회를 보여주지만, 하나의 박람회를 관찰하는 듯 느껴지게 한다. 서로 유사해 보이는 전 세계 곳곳의 박람회는 방산 산업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책에는 여덟 장마다 회색 페이지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벨 헬리콥터(Bell Flight), 라인메털(Rheinmetall), 사브(Saab) 같은 주요 방산 업체와 이들의 국적 그리고 33억달러(약 4조5091억원), 67억달러(약 9조1549억원), 659억달러(약 90조458억원) 같은 이들의 연 수익이 기재돼 있다. 더불어 이들의 주요 광고 문구가 굵은 글씨로 선명하게 쓰여 있다. ‘70년 동안 평화를 지켜왔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선봉에 섭니다’ ‘우리는 모든 총이 항상 새것처럼 발사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원히’ ‘먼저 보고, 먼저 죽입니다’ 같은 문구는 전쟁, 파괴, 살인을 발전, 미래, 진보와 하나의 개념 쌍인 것처럼 자연스레 펼쳐 보인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즘 기업들은 ‘70년 동안 평화를 지켜왔습니다’나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같은 슬로건을 사용한다. 무기 산업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이 이러한 말을 믿는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총 발명가 리처드 개틀링은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한 사람이 100명이 할 수 있는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 즉 총을 내가 발명할 수 있다면, 그 빠른 발사 속도로 인해 대규모 군대의 필요성을 줄이고, 그에 따라 전투와 질병에 대한 노출이 많이 감소할 것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발명품은 전장에서 병사 수를 줄이는 대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유혈 사태를 초래했다.”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는 산업이라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계속해서 목격하고 있다. 테료신의 사진은 단순히 전쟁 무기의 냉혹한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에 대한 입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결과, 우리는 전쟁이 국가 간 갈등일 뿐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좇는 거대한 방산 산업과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기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