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인근 상가 거리. 점심시간에 가까운 시간대여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가 많았다. 한 프랜차이즈 식당 앞에는 손님이 줄을 길게 서 있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당시 문을 닫았다는 소극장에는 지난해 7월부터 공연을 재개했다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한동안 텅 비어 있던 거리가 북적이는 사람으로 온기를 찾은 듯했다.

5월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 상권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사진 방재혁 기자
5월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 상권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사진 방재혁 기자

대학가 전통 상권 중 하나로 꼽히는 혜화 동 대학로 상권이 임대료를 낮추고 대형 브랜드, 프랜차이즈 매장이 입점하면서 공실을 대부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 부동산 임대 동향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중대형 상가의 평균 공실률은 8.4%였다. 혜화동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서울 평균보다 2.5%포인트 정도 낮은 5.9%였다.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 초기였던 2022년 4분기 9.3%까지 공실률이 올라갔지만, 1년 만에 빠르게 회복한 셈이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2년 4분기 3.6%에서 올해 1분기 0.6%까지 회복하면서 공실을 대부분 채웠다.

"극단 돌아오면서 유동 인구 많아져" 

대학로 일대는 성균관대에서 마로니에공원까지 이어지는 길로, 한국 최초의 대학가, 소극장 최대 집결지로 꼽혔다. 1980년대 들어서 명동, 신촌 등에 있던 소극장이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대거 이전하면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대학로 동숭동으로 모여들었다. 이후 1990년대 전성기를 누린 1세대 상권 중 하나다.

혜화동에는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가 있었는데 1975년 의대를 제외하고 관악 캠퍼스로 떠나면서 대학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소극장, 개인 카페, 음식점 위주로 활발했던 상권이다. 공연 관람객뿐 아니라 성균관대 등 인근 대학생과 유학생, 직장인까지 몰려 인기를 누렸다. 특히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성균관대 방향 대로변까지 이어지는 ‘대명거리’로도 불리는 CGV 골목은 대학로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동숭동 상권과 달리 대명거리는 10~20대가 유동 인구의 다수를 차지한다. 오래된 건물이 많고 좁은 골목에 많은 매장이 자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장 규모 자체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고급스러운 업종보다는 학생이나 서민에게 콘셉트가 맞춰진 업종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소극장이 문을 닫고 학생들도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면서 유동 인구가 급감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극단이 돌아온 데다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이 자리잡고,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낮추면서 공실이 줄었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로 소극장이 몰려있는 한 거리에는 한 블록이 전부 프랜차이즈 식당, 카페였다. 낙산공원 방향으로 가는 골목에는 개인 식당, 카페들이 있었지만 한산했다. 과거 잡화점이 줄지어 있던 한 거리는 팬데믹 당시 폐업한 뒤 무인 사진점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했다.

혜화동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극단이 돌아오면서 특히 주말 유동 인구가 많아졌다. 현재는 공실을 많이 채웠다”며 “특히 건물주들이 팬데믹 이후 임대료를 20% 정도 낮춘 것이 영향이 컸다. 프랜차이즈 음식점, 브랜드 등이 입점할 때 임대료가 강남의 절반 수준이라는 반응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일부 프랜차이즈에만 손님이 몰릴 뿐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대학로에서 10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한 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도 버텼는데 지난해 12월부터 정말 힘들었다. 올해 3, 4월에는 지난해보다 매출이 30% 정도 줄었다”며 “인근에서 장사가 잘되는 가게들은 대부분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개인 매장을 하는 사장들은 다들 힘들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평일 저녁 수요가 완전히 죽었다. 그나마 주말 수요가 많이 회복됐는데 그마저도 팬데믹 이전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혜화동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월세를 낮춰서 최근 공실을 많이 회복했지만 매출이 줄었다는 가게가 많다”며 “지금은 공실이 거의 없지만 약 10~20%는 가게를 내놓은 상황”이라고 했다.

대학로 인근 공실 상가. 사진 방재혁 기자
대학로 인근 공실 상가. 사진 방재혁 기자

실제로 혜화동 일대 매출액이 줄고, 유동 인구도 감소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 상권 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혜화동 일대 점포당 월평균 매출액은 1168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만원 감소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140만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 인구수는 일평균 9만4742명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4294명이 감소했다.

연극 선호도 떨어져 공실 우려도 

대학로가 소극장 연극이라는 콘텐츠로 전성기를 누린 상권이란 점을 생각하면, 완전한 회복은 어려울 수도 있다. 최근 콘텐츠가 다양화하면서 연극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임대료를 낮춰 일시적으로 공실이 줄었지만, 상권이 다양화하지 않으면 다시 공실률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로를 찾는 사람은 주로 젊은 층이지만, 상권은 대형 프랜차이즈로 채워져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극 관람객이나 학생들로 유동 인구는 여전하지만, 소비하지 않고 스쳐 가는 일명 ‘개천 상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대학로 인근 직장에서 근무하는 황모(29)씨는 “주변에서 연극을 보러 혜화동에 온다는 지인이 많은데 막상 ‘맛집’을 추천하려고 하면 떠오르는 곳이 많지 않다”며 “추천해 준 식당을 이미 방문했던 지인들은 연극을 보고 종로로 이동해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고 했다. 대학로 상권의 이 같은 침체는 이른바 ‘힙지로’로 불리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상권과 대비된다. 을지로의 개인 카페와 식당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주목받아 인기 상권이 됐다. 이 밖에 클럽 문화가 발달한 홍대 인근이나 ‘레트로’ 유행에 맞춰 인기를 끈 익선동·성수동 상권과 경쟁에서도 혜화동이 밀리는 상황이다. 공연장 외에는 매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예전 혜화동 상권 명성에 비하면 지금은 초라한 수준”이라며 “특히 임대료 인하로 공실은 회복했지만, 매출이 오른 상황은 아니어서 다시 공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상권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특히 대형 프랜차이즈 등 일부 업종이나 교통이 편리한 지역 위주로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대학로는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주 소비층이었는데 최근 여가 문화가 다양화하면서 공연장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온라인, 배달 등 위주로 소비문화가 변하면서 상권이 활성화되긴 쉽지 않다. 선별적인 양극화가 이뤄져 상가 운영이 활성화된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