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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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에서 닻은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9t밖에 되지 않는 닻이 9만t 배를 제자리에 멈춰 서 있게 한다. 닻은 영어로 앵커(anchor)라고 한다. 방송에도 앵커가 있다. 중요한 뉴스를 추려서 시청자가 알기 쉽게 진행한다. 그를 중심으로 방송 뉴스가 진행된다. 선박도 닻을 중심으로 멈추고 회전한다.

닻은 갈퀴 모양의 갈고리가 아래에 달려있다. 이 갈고리가 바닥 깊숙이 들어가면서 ‘파주력(把駐力·배가 닻 등으로 고정된 상태에서 그 위치를 유지하는 능력)’이라고 불리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선장은 닻을 놓기 전 해저의 질이 무엇인지 확인한다. ‘뻘(펄)’이면 최상이다. 모래는 안 된다. 모래는 닻을 받아주지 못하므로 닻이 힘을 잃고 바람이 불면 배가 밀리게 된다.

이때 선장은 아주 천천히 선박을 움직이도록 한다.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선박이 도착하면 닻을 투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차르르’ 소리를 내면서 닻과 닻줄 50여m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후 후진 기관을 사용해 배를 뒤로 이동하도록 한다. 그러면 해저에 떨어져 있던 닻줄이 펴진다. 뻘밭에 묻힌 닻과 닻줄이 힘을 받으면서 뒤로 끌리는 힘이 작용해 뻘밭에 닻이 콱 들어가서 박히게 된다. 이때 최강의 힘이 생긴다. 선장 시절 일본 시모노세키 앞 ‘무츠레’라는 곳에 닻을 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바닥이 모래였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태풍이 불어닥쳤다. 배가 밀리기 시작했다. 계속 전진 기관을 사용하면서 배가 뒤로 밀려 좌초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선박이 저속으로 항해할 때만 닻의 파주력으로 배를 멈출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배가 안 멈춘다. 올해 3월 미국 볼티모어에서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와 충돌한 달리호의 경우, 사고 당시 8노트로 항해하던 중 닻을 놓았다. 소용이 없었다. 최소한 4노트는 돼야 효과가 있다. 실제 닻을 항구 근처에서 놓을 때 선박의 속력은 1노트 이하거나 정지 상태다.

강한 태풍이 불 때는 닻이 배를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선박은 닻을 중심으로 바람과 맞서있다. 선박의 구조물 등 표면이 바람을 맞아 뒤로 밀리는 힘과 반대로 제자리에 있으려고 하는 닻의 힘이 서로 힘겨루기한다. 닻이 버티는 힘이 모자라면 배가 뒤로 밀린다.

선박이 닻을 사용해 밀리지 않도록 하는방법도 있다. 닻을 두 개 놓으면 된다. 닻을 두 개 놓게 되면 힘이 더 생겨 배가 밀리지 않는다. ‘쌍묘박’이라고 부른다. 쌍묘박이 굉장히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배가 닻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돌다 보면 닻줄이 꼬이는 수가 있다. 태풍이 지나고 난 다음에 이것을 풀어서 제자리에 두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닻을 두 개 놓을 때도 가장 효과가 있도록 놓아야 한다. 각도가 60도 정도 되도록 두 개의 닻을 내려두면 앞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배가 싸우게 돼도 이길 수가 있다. 그래서 배는 안전하게 제자리를 잘 지키게 된다. 이런 목적으로 배에는 항상 닻이 두 개 설치돼 있다. 하나를 잃어버리는 경우 남은 닻을 사용할 목적으로도 두 개의 닻이 필요하다.

선박에서 두 개의 닻을 활용하는 것을 우리 인생과 비교해 볼 수 있다. ‘플랜 B’인 셈이다. 날씨가 나쁘면 다른 닻 하나를 더 놓으면 된다. 준비가 돼 있다. 닻은 이렇게 참 유용하게 사용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도 있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제2의 닻을 준비하듯 플랜 B를 준비해야 한다.

선박에서는 ‘플랜 C’까지를 준비하고 있다. 플랜 C는 바다로 나가는 것이다. 닻을 두 개 놓아도 배가 밀리게 되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밖으로 나가면 배가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항내에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좌초할 위험이 오히려 더 크다. 더 넓은 바다에 나가 비바람을 피하는 것이다. 바다에는 더 많은 피항(避港) 수단이 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넓은 바다로 나갈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이 바로 플랜 C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준비한 것이 작동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플랜 C를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