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대만의 '컴퓨텍스 2024'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셀카를 찍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 로이터연합
6월 4일 대만의 '컴퓨텍스 2024'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셀카를 찍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 로이터연합

# 6월 4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정보기술(IT) 박람회인 ‘컴퓨텍스 2024’ 행사에서 한 여성 팬이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에게 자신의 탱크톱 가슴 부분에 사인을 요청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 여성은 이후 인스타그램에 ‘AI 대부와 악수를 했고, 오늘 내 소원을 이뤘다’는 글을 올렸다. 6월 7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젠슨 황이 컴퓨텍스 2024 참석차 대만을 방문해 미국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인기를 끌었다고 보도했다.

# 엔비디아 시가총액(시총)이 6월 5일(이하 현지시각) 처음으로 3조달러를 돌파했다. 엔비디아는 2023년 6월 시총 1조달러(약 1379조원)를 넘어선 이후 1년 만에 시총이 세 배가 됐다. 국내 최대 반도체 기업이자 시총 1위인 삼성전자(약 456조원)와 비교하면 아홉 배 이상 크다. 미국 나스닥에서 시총 3조달러(약 4139조원)를 넘긴 회사(6월 12일 기준)는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엔비디아뿐이다. 

AI 열풍을 이끄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의 인기와 그가 이룬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그래픽 처리 장치(GPU)를 결합한 반도체 세트) 시장의 97% 점유율을 가진 업체다. AI 가속기 핵심 부품인 GPU 시장에서도 80%가 넘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경쟁력은 높은 GPU 성능에서 나온다. 컴퓨텍스 2024 기조연설자로 나선 젠슨 황은 “1000달러(약 137만원)짜리 PC에 500달러(약 68만원)짜리 지포스(GeForce) GPU를 탑재하면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라면서 “10억달러(약 1조3798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에 5억달러(약 6899억원) 상당의 GPU를 추가하면 순식간에 AI 공장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 GPU를 추가하면 컴퓨팅) 속도는 100배 빨라지지만, 비용은 1.5배 증가한다”며 “(GPU를) 더 많이 구매할수록 더 많은 돈을 아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엔비디아의 예상 매출은 1300억달러(약 179조3740억원)로, 2023년(246억달러⋅약 33조9430억원) 대비 다섯 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6월 9일 “세계 각국 정부가  데이터·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해 AI 경쟁에 뛰어들면서, 국내 컴퓨팅 시설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붓고 있다”며 “엔비디아의 매출원을 열어줘 엔비디아의 주가(시총)는 더 오를 것” 이라고 보도했다. 최근 엔비디아 시총이 급증한 만큼 회사 공동 창업자인 젠슨 황의 자산도 많이 증가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젠슨 황의 순자산은 6월 12일 기준 1060억달러(약 146조2588억원)로 세계 부호 순위 14위에 올랐다. 

자료 인베스팅닷컴
자료 인베스팅닷컴

AI 가속기 출시 주기 1년 단축

젠슨 황은 이번 컴퓨텍스 행사에서 6세대 HBM(HBM4)을 처음으로 탑재할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의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기존 2년이었던 GPU 신제품 출시 주기를 1년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AI 가속기는 HBM을 탑재한 GPU다.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HBM은 엔비디아의 GPU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엔비디아는 2026년 출시 예정인 루빈에 8개의 HBM4를, 2027년 출시하는 루빈 울트라에 12개의 HBM4를 각각 탑재할 계획이다. 

지금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독점하고 있지만, 젠슨 황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모두 우리에게 HBM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기 위한 테스트를 발열과 소비 전력 등의 문제로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는 로이터통신 보도에 대해선 젠슨 황이 직접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연봉 1달러로 버티며 일군 'AI 반도체 제국'  

“나는 항상 30일 뒤 망한다고 생각하며 일한다”는 젠슨 황의 유명한 경영 어록 이면에는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다. 1993년 작은 아파트에서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한 젠슨 황은 창업 이후 6년간 누적된 적자로 폐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대세였던 중앙처리장치(CPU) 개발을 포기하고 GPU 개발에 집중하기로 한 젠슨 황의 결단이 회사를 살렸다. 1999년 출시한 신제품(지포스 256 NV10)이 인기를 끌며 회사 성장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신제품은 CPU 도움 없이 GPU만으로도 3D 명령어 처리가 가능한 최초의 제품이었다. 

젠슨 황은 2008년 금융 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졌지만, 자신의 연봉을 1달러(약 1379원)로 줄이는 대신, 아낀 돈으로 연구 인력을 영입해 딥러닝용 GPU 개발에 몰두했다. AI가 수많은 단순 연산을 처리하려면 병렬처리가 가능한 GPU가 CPU보다 유리하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여기에 힘을 더한 것이 엔비디아가 2007년 무료로 공개한 개발자용 소프트웨어 ‘쿠다(CUDA)’다. 쿠다는 개발자들이 GPU를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지원한다. 쿠다로 만든 프로그램은 엔비디아가 만든 GPU에서만 작동한다. 개발자들이 기존에 개발된 프로그램을 활용하려면 엔비디아 GPU와 쿠다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엔비디아 중심의 GPU 생태계가 공고해졌다. 

자료 ‘이코노미조선’ 정리
자료 ‘이코노미조선’ 정리

적극적이고 수평적인 리더

대만 태생의 젠슨 황은 적극적인 리더로 평가받는다. 엔비디아 창업 초기였던 1995년 젠슨 황은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 회장에게 엔비디아의 첫 칩을 만들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직접 써서 보냈다. 게임 그래픽 카드나 만들던 이름 모를 32세의 청년이 굴지의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를 이끄는 60대 회장에게 직접 주문한 것이다. 젠슨 황의 적극적인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모리스 창 회장은 젠슨 황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도 장기적인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면서 신생 스타트업 CEO의 요청을 수락했다. 젠슨 황은 “TSMC가 없었다면 오늘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젠슨 황은 수평적 리더로도 평가받는다. “그 누구도 보스가 아니다. 프로젝트가 보스”라는 프로젝트 중심의 수평적 원칙을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한결같이 지켜가고 있어서다. 그의 노력 덕에 엔비디아의 2023년 평균 이직률은 5.3%로 선방했다는 평이 적지 않다. 반도체 업계 평균 19.2%와 비교하면 매우 양호한 수치다. 검정 터틀넥에 청바지 차림의 한 가지 패션을 고집했던 모바일 혁신의 상징 스티븐 잡스 애플 창업자처럼 한 가지 옷(가죽 재킷)만 고집하는 젠슨 황이 AI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Plus Point

용산전자상가 들러 영업하던 벤처 CEO
이재용·최태원 만나는 거물로 성장

젠슨 황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엔비디아 설립 초기였던 1990년대 중반 젠슨 황은 한국을 방문하면 용산전자상가에 자주 들렀던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 용산에 엔비디아가 교육센터를 오픈했을 때도 젠슨 황이 직접 개소식에 참석했을 정도다. 용산전자상가는 한때 아시아 최대 전자 제품 메카로 불렸던 곳이다. 엔비디아가 원래 컴퓨터 게임용 그래픽 카드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기 때문에 그 당시만 해도 한국 피시방에 들어가는 PC에 GPU를 넣는 영업이 필요했다. 국내 피시방에 들어가는 PC는 주로 용산전자상가에서 조립돼 공급되는 비중이 컸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자사 HBM의 엔비디아 납품을 위해 젠슨 황과 비즈니스 미팅을 추진했을 정도로 거물급 인사로 성장했다. 젠슨 황은 지난 4월 최태원 회장을, 작년 5월 이재용 회장을 각각 만났다.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