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해 탐사 컨설팅 기업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6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미국 심해 탐사 컨설팅 기업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6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동해 심해에 대규모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며, 에너지 자립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3일 기자회견에서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넘게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연말부터 탐사 시추에 나설 계획이다. 탐사 시추는 해저 땅속 깊이 구멍을 뚫어 자원 매장 여부를 실제로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탐사 시추 프로젝트의 성공률은 20%다. 동해의 석유 매장 가능성을 정밀 분석한 미국 심해 탐사 컨설팅 기업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은 6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공률이 20%라는 건 80%의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면서도 “지난 20여 년간 발견된 유정 중 매장량이 가장 많은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성공 가능성이 16%였다. 동해 프로젝트의 유망성은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65년 석유 탐사 도전사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석유 탐사의 역사는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석유 탐사는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이뤄졌다. 1959년 국립지질조사소가 전남 해남군 우항리 일대에서 석유 탐사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해남에서 석유 발견에 실패한 국립지질조사소는 1964년 포항 육지에서도 탐사를 이어갔으나, 성과를 내진 못했다.

1968년 유엔(UN)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가 발표한 ‘에머리 보고서’는 해양 유전 탐사 시대를 활짝 열었다. K.O. 에머리 미국 우즈홀해양연구소 박사는 해당 보고서에서 “대만과 일본 사이의 대륙붕은 세계에서 석유가 많이 매장된 곳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한국은 발 빠르게 시선을바다로 옮겼고, 1970년 1월 유전 개발을 본격화하기 위해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공포· 시행했다. 같은 해 6월 시행령을 통해 총 7개의 해저 광구를 설정했다. 이 중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 사이에 있는 해역의 대륙붕이 ‘7광구’다.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1974년)에 따라 공동개발구역(JDZ)으로 설정돼 있다. 7광구 대부분은 한반도보다 일본 열도에 가까운데, 협정 체결 당시엔 대륙붕 경계를 나누는 국제법 기조가 한국에 유리했다. 대륙붕이 어떤 육지에서 발생해 연장됐느냐를 중시했고, 한국의 대륙붕은 오키나와 해구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85년 리비아·몰타 사건에서부터 대륙붕 경계 기준을 ‘육지로부터의 거리’로 바꿔 판단했다. 유리해진 일본은 공동 개발에 소극적이었고, 7광구는 현재까지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7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포항 영일만 부근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제1차 석유파동(1973~74년)을 겪은 국민은 “산유국이 됐다”며 기뻐했으나, 불과 1년 만에 ‘포항 석유’는 원유가 퍼 올려진 것이 아니라 정제된 경유가 땅속으로 흘러 들어갔던 것으로 밝혀졌다.

에너지 자립을 위한 노력은 1998년 울산 남동쪽 58㎞ 지점 동해-1 가스전에서 양질의 천연가스층을 발견하며 첫 결실을 보았다. 총 11번 시추공을 뚫어, 11번째 시추에서 천연가스층을 찾았다. 한국석유공사는 6년 뒤인 2004년 국내 최초로 천연가스를 생산했다. 동해 가스전은 2021년 말까지 약 17년간 4500만 배럴 분량의 가스를 생산한 뒤 매장량 고갈로 문을 닫았다.

자료 산업통상자원부·한국석유공사
자료 산업통상자원부·한국석유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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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 능력 세계 5위 석유 강국

한국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로 불리지만, 원유를 수입·정제해 휘발유나 경유 같은 석유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석유 강국이다. 글로벌 석유 회사 BP(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 정제 능력이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에 이은 세계 5위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2023년 국내 정유사들은 전 세계 70개국에 석유제품 총 4억6672만 배럴을 수출했다. 수출액은 463억6800만달러(약 63조9785만원)를 기록했다. 한국석유공사는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미국, 페루 등 전 세계 15개국에서 해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번 영일만 프로젝트 탐사 시추에서 석유·가스가 발견되면, 세부적인 매장량을 확인하는 평가정 시추를 거쳐 경제성을 평가한 뒤 본격적인 개발·생산이 시작된다. 정부는 이르면 2027~2028년쯤 공사를 시작해 2035년부터 약 30년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정 매장량은 35억~140억 배럴이다. 이 가운데 가스 75%, 석유는 25% 수준으로 추정된다.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1조4000억달러(약 1931조7200억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4.4%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영일만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에너지 자립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최소 다섯 개 이상의 시추공을 뚫는

다면, 5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재원이 필요하다. 글로벌 신용 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6월 4일(현지시각) 보고서에서 “한국의 유전 탐사 프로젝트에 흥분하지 말라”면서 “탐사가 상업 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Plus Point

‘무자원 산유국’ 꿈 실현한 SK… 최종현 전 회장의 뚝심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1988년 6월 유공의 에틸렌· 폴리올레핀 울산공장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SK
최종현 SK 선대 회장이 1988년 6월 유공의 에틸렌· 폴리올레핀 울산공장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SK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은 대한민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한 최종현 SK 선대 회장은 “자체적으로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된다”며 해외 유전 개발에 적극 나섰다.

유공은 1983년 처음 시도한 인도네시아 광구 개발과 이듬해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광구 개발을 연이어 실패했다. 최 선대 회장은 “개발 사업이란 본래 1~2년 이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그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실패했다고 해서 석유 개발 사업에 참여한 사람을 문책해서는 안 된다”며 힘을 실었다. 유공은 1984년 북예멘에서 원유를 발견하고, 1987년 생산을 시작하며 ‘무자원 산유국’ 꿈을 이뤘다.

SK그룹은 이후 40여 년간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적극 펼치고 있다. SK어스온은 현재 8개국에서 10개 광구, 4개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생산하는 원유와 천연가스는 일평균 5만7700배럴(석유 환산 기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