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세계 상업용 부동산(CRE)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급격한 가격 조정 국면에 들어서 있다. 국내 기관과 자산운용사는 시장 침체의 폭이 큰 미국과 유럽 지역 상업용 부동산 투자 비중이 상당히 높아 미회수(손실) 위험에까지 직면한 상황이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글로벌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세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상업용 부동산의 구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유연하게 선택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비중이 증가하며 전통적인 업무 공간이던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고, 도심 사무실 인근 주거지보다는 교외의 넓은 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또한 온라인 쇼핑의 증대, 환경 규제 강화에 따라 고품질 공간에 대한 선호가 나타나면서 도시 내에서도 B급 공간보다는 A급 공간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 조정은 이렇듯 사무실 공간에 대한 수요 변화, 팬데믹으로 인기가 급상승했던 부동산에 대한 재평가에서 비롯됐다. 더욱이 세계경제가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상승률이 둔화하는 등, 여러 불확실성도 시장에 반영됐다. 특히 미국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공실률이 사상 최고치인 19.8%를 기록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 따르면 금리 인상이 시작된 2022년 4월 기준 가격지수는 지난해 3분기까지 21.4% 추락했다.
이처럼 글로벌 상업용 시장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음에도 끄떡없이 견고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지역이 있다. 바로 아시아·태평양(아·태) 지역이다. 호주부터 싱가포르, 일본, 한국을 포함한 선진 아시아 시장은 실업률이 낮고 노동시장이 탄탄해 전 세계 상업용 부동산이 위기에 놓여있는데도 불구하고 거래량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부동산 종합 솔루션 기업 JLL에서 전 세계 자산 시장을 분석하는 팀 그레이엄 글로벌 캐피털 마켓 전무를 만났다. 그레이엄 전무는 세계 부동산 자산에 대한 투자, 거래 자문을 담당하며 다양한 투자 영역을 분석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영국 레딩대 토지자산관리학, 전 JLL 아시아·태평양 자본 시장 전략가, 전 센트럴 런던 캐피털 마켓 내셔널 디렉터 사진 JLL
아·태 지역 부동산은 어떤 특성이 있나.
“아·태 지역 국가는 강한 수요 펀더멘털과 섹터의 회복 탄력성이 뒷받침하는 견고한 부동산 시장이 특징이며, 성장 전망이 긍정적이다. 아시아 지역 부동산 투자는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위험 조정 수익률을 높이는 데 도움 된다. 특히 최근 미국의 달러 강세로 아시아 부동산의 매력이 강화되고 있다. 강달러로 인해 엔화와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가 큰 폭으로 할인되기 때문이다. 아· 태 지역 상업용 부동산 거래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출근으로의 전환율이 높아 투자자가 더욱 몰린다. 팬데믹 시기 사무실 출근율을 100%로 놓고 봤을 때 2023년 아시아 지역의 사무실 출근율은 최대 110%에 달한다. 반면 유럽은 90%, 미국은 60%에 불과했다.
아·태 지역 부동산 투자 현황을 설명하자면, 2024년 1분기 아·태 지역의 부동산 자산 투자 규모는 305억달러(약 42조2059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해 2분기 연속 증가세를 유지했다. 여러 자산 중 사무실은 여전히 투자가 가장 활발한 분야이며 물류와 유통산업의 투자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6%와 8% 성장한 상태다.”
미국과 다르게 아·태 지역 사무실 공실이 적은 이유는.
“미국에서는 점점 더 유연 근무제가 강화되고 있어 주요 임차인이 이미 사무실 공간을 줄이는 추세다. 특히 사무실 주요 임차인이던 테크 기업이 유연 근무제에 대해 확고하며 중앙 집중형 사무실 기반으로 하이브리드 사무실 사용 방식이 유지될 전망이다. 반면 아·태 지역 기업 직원은 대부분 회사로 돌아와서 출근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사무실 수요가 대부분 회복됐다. 특히 수요자는 이전보다 새롭고 품질이 높은 사무실을 추구한다. 즉, 사무실 이용뿐만 아니라 자산 자체로 가치가 있는 안전 자산, 프리미엄 사무실에 대한 선호가 커지면서 고품질 사무실의 임대료는 점점 상승하고 있다.”

부동산 자산 구조가 변화한 만큼 자산별 투자 가치에도 차등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떤 분야 자산이 유망한가.
“아시아의 인구 성장 동력이 될 만한 부동산 자산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신경제(New Econo-my)’ 자산으로 분류하는데, 여기에는 의료 사무실 등 생명과학센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이 포함된다. 한국에서는 발전이 더디지만, 아·태 시장에서 생명과학은 인구 고령화와 증가하는 의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 아·태 지역에서 60세 이상 고령층이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연기금(PGGM)과 글로벌 부동산 개발 업체 랜드리스 등이 호주와 일본, 싱가포르의 생명과학 관련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JLL 설문 결과에 따르면, 현재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 70% 이상이 운용자산규모(AUM)를 늘릴 것이라고 답했다. AI 데이터센터도 수요가 급증하는 분야다. 특히 챗GPT를 비롯한 생성 AI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며, 이는 차후 신형 데이터센터 인프라의 설계 및 조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약세를 보이는 중국과 홍콩의 부동산 시장 전망은 어떠하며, 수요는 어디로 옮겨가고 있는가.
“중국과 홍콩의 투자자는 일본과 인도, 동남아 국가에서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탄탄한 펀더멘털, 부채 시장 증가, 엔화 약세로 인한 낮은 통화 리스크 등으로 인해 매력적이다. 최근 17년 만에 일본의 금리가 인상됐으나 자금 조달 여건이 여전히 느슨해 영향은 적을 전망이다. 인도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대국 중 하나로, 국내외 임차 수요가 높다. 또 정보기술(IT) 부문 아웃소싱 목적지로서 인도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견고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추가적인 성장으로 이어져 사무실 공간에 대한 수요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어떤가.
“한국은 고급 사무실 자산의 투자 가치가 높으며 전망이 밝은 나라다. 올해 블랙스톤은 서울의 최상급 사무실 자산 아크플레이스를 코람코리츠에 5억8800만달러(약 8136억원)에 매각했는데, 이는 2024년 현재까지 한국의 최대 부동산 자산 거래 규모다. 국내외에서 인기 지역의 고품질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니즈가 늘어나면서 한국 사무실 시장은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 주요 대기업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에 맞춰 현대적이고 편의 시설이 갖춰진 사무실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아·태 지역의 사무실 투자 분야는 전반적으로 임대료 하락과 양적 완화 정책으로 인해 타격받았지만, 서울의 A급 사무실은 오히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며, 지난 2년 동안 두 자릿수의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