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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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국내 증시는 혼란의 격류(激流)에 시달리고 있다. 주가는 한동안 정체를 거듭하다가 다시 등락을 거듭하고 있고, 환율은 고공 행진 중이다. 유럽과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어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주는 모습이다. 여전히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자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무척 고민스럽다.

하지만 조금만 더 호흡을 길게 가지고 이러한 불안한 징후들을 바라본다면 비록 녹록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는 예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시장 컨센서스와 많은 것이 바뀌었는지를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년 말부터 이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하를 고려하고 있는 건 맞지만, 당분간 속도 조절이 필요할 것이라는 데 시장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었다. 따라서 현재 자산 시장을 누르는 각종 악재는 이미 예견된 부분이다. 그만큼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새로운 상승을 위한 모멘텀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의 투자환경을 진단해 보자.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부국캐피탈 PE금융팀장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금리 인하와 투자 사이클

우선 올해 시장을 가장 혼란스럽게 한 요인은 기준금리 변화일 것이다. 기준금리는 단기간 내 빠르게 변화하며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올해 고금리 환경이 지속될 것이란 주식시장의 기존 가정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물론 기준금리가 빠르게 내려간다면 새로운 관점으로 시장에 접근해야겠지만,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결과를 고려해 봤을 때, 당분간 대부분의 투자자는 기존의 투자 스탠스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준금리 전망과 다르게 국내 시장 금리는 하락하고 있다. 금리가 내려간 상태라 원·달러 환율도 상승 압력에 노출되고 있다. 환율 변동성은 예전보다 그 폭이 훨씬 커졌다. 이러한 환경을 고려해 볼 때, 매크로 동향만으로 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매크로보다 기업 실적 변화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때다. 그나마 긍정적인 건 코스피(KOSPI) 순이익 전망치가 연이어 상향 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주도주로 자리매김한 IT(정보기술), 특히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다루는 반도체가 이익 전망 개선을 이끌고 있으며, 코스피 전반적인 순이익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AI)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와 전력 관련주들의 주가 상승 폭이 컸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으로 AI 대장주인 엔비디아는 6월 18일 주가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총이 3조3350억달러(약 4615조원)를 기록,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도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올 하반기에도 경제와 투자시장의 또 다른 열쇠는 AI 산업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 국면상 성장주가 고성과를 내는 시기에 진입했을 뿐만 아니라, AI와 전기차 시장 확장 기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은 작년 중반부터 얼어붙은 반면, 비슷한 시기에 엔비디아가 시장 성장 기대를 크게 높인 AI는 미국 성장주뿐만 아니라 미국 주식,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위험 자산 시장을 끌어올리고 있다. AI 시장 성장세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AI 관련주의 상승세는 작년 하반기에 둔화한 걸 제외하면 크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물론 AI 상승기를 과거 IT 버블 또는 금융 위기 직후 대형 기술주 상승기와 비교하면서 상승세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많다. 그러나 이번 상승기가 이전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익 전망’이다. AI 대장주들이 공통적으로 주가 멀티플(수익성 대비 기업 가치)보다 이익 전망이 먼저 올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성장주는 강한 성장 기대를 바탕으로 멀티플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상승 흐름이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성장주들이 고평가 논란에 시달리는 이유도 적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을 반영해 주가부터 상승하기 때문이다. 바이오산업 등 대표적인 성장주들이 그렇다. IT 버블 당시에도 인터넷처럼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장밋빛 미래가 너무 일찍 그려진 나머지, 이익 성장 기대가 지나치게 높았다. 높은 이익 성장 기대가 주가 멀티플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실적과 관련한 작은 실망에도 주가가 휘청거렸다. 결국 투자자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대다수의 성장주가 급락하면서 IT 버블이 붕괴되었던 것이다.

금융 위기 이후에는 IT 버블 당시와는 달리 성장주가 이익 성장을 보여주었다. 주가 멀티플이 먼저 오르기는 하였으나, 이익 전망이 더 빠르게 오르며 주가 멀티플을 낮춰 줬다. 고평가 부담을 덜고 주가 상승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의 상승장은 다르다. 글로벌 상승장을 이끄는 대장주 엔비디아는 성장 기대를 바탕으로 주가 멀티플이 먼저 반응한 게 아니라, 가파른 이익 성장이 먼저 나타났다. 2020~ 2021년의 산이 높았던 만큼 2022년 골짜기가 깊었던 대형 기술 기업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인 AI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AI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AI 시장 확장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엔비디아의 이익은 급격히 커졌고, 오히려 주가가 이익 전망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주가 멀티플은 작년 고점 대비 하락했다. 따라서 엔비디아는 높은 주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고평가 논란을 피해 가고 있다. 기존 상승장 논리와 배경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승장에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성장주 상승세 지속 전망

물론 그래도 계속 살펴야 할 것들은 있다. 우선 미국 경제의 침체 위험이 커진다면 아무리 AI 성장 기대가 크더라도 성장주는 증시 전반적인 투자 심리를 반영하여 함께 하락할 수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하향 안정되고 있으므로, 침체 위험이 커지면 연준은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대응할 여력이 아직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금리 하락은 언제나 그랬듯이 성장주에 분명히 긍정적인 상승 시그널이 될 것이다.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성장주 투자 심리는 나쁘지 않은데, 이는 공급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강하고 인플레이션이 잘 내려오지 않는다면 수요가 강하다는 의미일 텐데, 기준금리를 빨리 내리지 않는 이유가 강한 경기 때문이라면, 이는 미국 증시도전반적으로 안전지대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강한 경기에는 성장주보다 경기 민감주가 더 잘 반응하겠으나, 경기 확장기에 AI 수요도 함께 높아질 것이므로 성장주의 상승세는 지속될 수 있겠다.

앞으로 경제 침체 위험이 커지는데 물가 압력이 약해지지 않는다면 성장주 투자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공급 측 문제가 생기거나 AI 산업에 대한 기대가 약해져도 성장주의 상승세는 꺾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가 멀티플이 과도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 우려할 문제다. 지금은 대장주의 주가 멀티플이 현재의 AI 산업 내 독점적 입지를 반영하고 있는 만큼도 아니다. 아직은 투자 매력이 매우 높다고 보인다.

시장의 한가운데에선 매 순간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변화가 큰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바라보면 사실 큰 변화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시장이 과민하게 요동칠수록 현명한 투자자라면 침착하게 투자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