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한때 전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지역이었다. 지금도 미국과 더불어 전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고 환경, 기후변화, 다양성 등 다양한 이념과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이런 유럽을 움직이는 것은 유럽연합(EU)이다. EU의 조직 가운데 일반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것은 EU의회가 유일하다. 의회라고는 하지만 독자적인 법안 발의 권한이 없는 게 EU의회의 특징이다. 총 720석으로 이루어진 EU의회는 인구 비례로 회원국별로 배분된다. 직접 선거로 의원을 선출한다. 독일이 96석으로 최다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당선자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교섭 단체를 구성한다. 극좌부터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6월 20일 오후 1시 기준(이하 현지시각) 제10대 EU의회 선거는 극우 세력의 약진을 보여주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극우 세력의 연합체인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58석을 얻으면서 지난 9대 선거 대비 의석을 9석 늘렸다. 이에 비해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20석이 줄어든 51석에 머물렀다. 지난 제9대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중도파인 ‘유럽을새롭게(RE)’는 의석이 22석 감소하면서 80석으로 크게 후퇴했다. 최대 정파인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인민당(EPP)’ 과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주의진보동맹(S&D)’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이번 선거는 좌파의 약세, 극우의 약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20대 유권자 지지 늘어나며 정치 지형 바뀌어

이런 변화는 유럽의 정치 지형이 바뀐 것에 영향을 받았다. ID의 약진은 과거와 달리 20대 젊은 유권자의 지지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좌파 정당을 지지하던 세대가 변심하고 있다는 의미다. 청년층은 부모 세대보다 못살게 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나 환경 등을 이유로 성장보다는 억제와 희생을 강요하는 좌파 정당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경제적 요인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 가격을 중심으로 한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큰 어려움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임대료 급증 등은 청년층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최근 난민 유입이 급증하면서 각종 범죄 발생이 증가하고 사회가 불안해짐에 따른 기성세대의 불안이 기성 정당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됐다. 지속적인 반(反)난민 정서를 자극해 왔던 극우 정당이 이득을 본 것이다.

지난 5년간 EU의회는 급진적인 환경·기후 정책을 연이어 구체화했는데 이에 대한 반발도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년간 발전 부문에서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성과를 거두었던 EU는 최근 목표를 주택을 포함한 건축물, 농업을 포함한 산업 분야로 옮겼다. 문제는 독과점 기업 중심의 발전과 달리 건축물 및 산업 분야는 일반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U의회의 결정에 따라 각국 정부는 신규 가스보일러 설치를 금지했고, 전기로 가동되는 히트 펌프 설치를 의무화했다. 또 주택의 단열 기준을 강화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경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정부 보조금을 감안하더라도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추가로 농민에게 휴경을 의무화하고 면세유 공급을 중단했다. 특히 가축 사육 두수를 감축할 것을 지시하면서 불만이 폭발했다. 이에   따라 2023년 유럽 각 지역에서 농민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네덜란드 등 일부 지역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여파가 EU의회 선거로 이어졌다.

고심 깊어지는 EU 회원국들

EU의회 선거 결과는 현재의 민심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각 회원국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EU를 이끌어가는 독일의 경우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구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16% 득표에 성공하면서 명실상부한 2당으로 부상했다. 과거 앙겔라 메르켈이 이끌던 중도 우파인 ‘기민당·기사당(CDU· CSU)’이 30% 득표로 1당을 지킨 것과 비교해 현재 집권 여당을 이끌고 있는 사민당(SPD)과 녹색당은 각각 14%, 12%에 머물렀다. 지지율 하락에 직면하고 있는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의회 해산을 거부하고 2025년 9월에 예정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내각제 특성상 연정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독일 정당들은 경원시하던 AfD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기민·기사-사민-녹색 연합을 통한 과반 확보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지자들의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작기 때문이다. 극우 세력의 연정 참여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이번 선거의 최고 승자로 꼽힌다. 극우 파시스트의 후예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동포(FDI)를 이끌고 26% 득표로 집권에 성공했던 멜로니 총리는 이번에 28%를 득표해 굳건한 지지 기반을 확인했다. 극우라는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유연하며 무난한 정책을 펼쳐온 멜로니 총리는 중도와 극우를 아우르는 영향력을 과시하게 됐다. 연임을 위해서는 EU의회의 과반 동의가 필요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으로서는 멜로니 총리의 도움과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멜로니 총리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곳은 프랑스다. 반난민, 반이슬람을 내세우는 극우 ‘국민연합(RN)’이 31.5%를 득표했다. 반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는 14.6%에 머물렀다. 난민을 둘러싼 갈등에 더해 연금 개편을 둘러싼 마크롱 대통령의 독선적 자세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해산을 선언하고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한 범연합전선 결성을 통해 안정적인 의회 권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우파 공화당의 국민연합 공조 발표, 좌파 4개 정당의 독자 연합 세력 구성 등으로 인해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극우 세력과의 동거 정부 구성에 따른 혼란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프랑스 증시와 채권시장은 큰 동요를 보이고 있다.

EU의회 선거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극우라는 특정 정치 세력의 약진과 더불어 EU 전반의 사회적 인식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30년 넘게 지속된 각종 이념적 압박에 대한 피로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과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EU 회원국 국민은 우파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에 국민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가르치려 하고 무지하다고 비난하는 정치 세력의 교만함에 대해서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EU가 주도해 온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비롯한 각종 환경·기후 정책은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방향성 잃은 EU, 불확실성 증가

EU 선거 결과는 EU의 급진적 정책 변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온 우리에게는 숨돌릴 여유를 준 셈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전 세계의 흐름을 이끌어온 EU가 방향성을 상실한 만큼 불확실성은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까지 겹친다면 세계는 더욱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흘러갈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