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퍼시스
사진 퍼시스

국내 1위 오피스 가구 회사 퍼시스그룹(이하 퍼시스)이 미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한국과 북미 시장을 연결하는 콘텐츠 회사로서 석 달에 걸쳐 퍼시스가 북미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을 취재 및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담았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북미 시청자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됐다. 영어가 편한 임직원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임직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마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글로벌 진출의 첫 시작이 아닐까 싶었다.

김태용 EO대표 현 퓨처플레이 벤처파트너
김태용 EO대표
현 퓨처플레이 벤처파트너

퍼시스는 1983년에 문을 연 회사다. 철로 된 좁은 책상에서 회사원들이 다닥다닥 붙어 담배를 피우며 일하던 시절, 퍼시스는 최초로 목재, 시스템 가구를 국내에 선보였다. 이후 국내 최초 가구 연구소를 만들고, 홈가구 ‘일룸’과 의자 브랜드 ‘시디즈’, 스타트업용 책상 브랜드 ‘데스커’ 등을 연이어 흥행시키며 국내 1위 가구 회사가 됐다.

회사가 많이 성장했지만, 점점 세계가 작아지면서 ‘허먼밀러’ 등 해외 유명 가구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와 경쟁하는 입장이 됐다. 기업은 계속 성장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할 수 없다. 그래서 퍼시스가 지난 수십 년간 유명 가구들의 영향을 받으며 한국 경제와 함께 커왔다면, 이제는 세계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퍼시스 임직원은 말했다.

퍼시스 창업자인 손동창 명예회장의 장남인 손태희 대표는 2세 경영에 대해 말할 때 “1세는 공격, 2세는 수성(守城)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가는 항상 성장하고 혁신해야하며 이를 증명하고 싶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손 대표는 서울대 동문이자 친구인 실리콘밸리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 센드버드의 김동신 대표를 찾아가 북미 시장 진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김대표는 “한국에서 퍼시스가 유명해도 미국에선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이나 유학생을 채용해서 부딪힐 게 아니라 일선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했다. 손 대표는 세계 다양한 가구 시장과 사무 환경을 돌아본 뒤, 6월 북미 최대 가구 박람회인 ‘시카고 네오콘’에서 대대적인 쇼룸을 운영했다. 이어 애플의 세계 최초 마우스를 디자인한 디자인 에이전시 ‘IDEO’의 컨설팅받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북미 시장 진출을 시작했다.

박람회 기간 중 퍼시스 임직원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퍼시스에 대해 들어봤냐고 물었다. 퍼시스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퍼시스의 젊은 직원은 시원한 커피와 쿠키를 나눠주며 외국인들을 퍼시스 쇼룸으로 이끌었다. 꽤 많은 방문객이 쇼룸을 찾아 제품을 경험하고 피드백을해줬다.

IDEO를 포함해 많은 미국 고객은 “사무실과 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하기 위해 사무실에 가는 것이 아닌, 사무실이 네트워킹과 협업 공간이 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 가구와 가정용 가구를 둘 다 공급할 수 있는 퍼시스에 장점이 많다고 했다. 또한 한국에서는 퍼시스가 고품질, 고가 가구로 포지셔닝돼 있지만, 미국에는 더 비싼 가구가 많다며 높은 가성비와 세미(semi) 고급 가구로 포지셔닝하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피드백을 들은 퍼시스 임직원은 한국 가구 회사로서 스스로를 과소평가한 것도 없지 않았냐고 회고했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퍼시스 임직원 중에는 첫돌이 된 아이가 있는 엄마도 있었고,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도 있었고, 퍼시스의 첫 디자이너도 있었다. 이들이 굳이 해외, 특히 북미와 연관 없는 삶을 살아왔고 입에 맞지 않는 영어를 써야 하는데도 한국 밖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낯설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승리의 역사를 쓰는 것이 위대한 여정의 첫 시작으로 어울리기 때문, 그게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의 본질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