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AFP연합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AFP연합

공식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담 요청을 받고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질문에는 수준의 고하가 있지 않고 고민의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 요청을 거절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브랜드, 브랜딩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아직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브랜딩을 이름 짓고 디자인하는 작업으로 좁게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브랜드는 ‘남다른 나만의 고유성’ 을 찾는 것이고, 브랜딩은 그런 고유성이 경험되게 하는 활동이어야 한다. 브랜드나 브랜딩을 ‘멋스럽게 꾸미는 작업’으로 간주하다 보니 브랜딩이 사업 전략이나 경쟁 전략과는 접점이 없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사업이 먼저 잘돼야지 지금은 브랜딩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유성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고유성만으로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지 않냐는 불안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꽤 있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제대로 된 브랜드, 브랜딩 전략이 곧 사업 전략이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경쟁 전략이라는 것이다. 마케팅은 상당 부분 전쟁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설명된다. 그저 전쟁을 경쟁이라고 순화해서 표현할 뿐이다.

우연히 ‘손자병법’에 나오는 개념, ‘도·천· 지·장·법’으로 자신들의 브랜드 전략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손자병법보다는 손자병법을 경영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열렬한 팬이었다. 고객의 요청에 응답해야 하기에 간단하게 내 방식으로 정리해서 말해 줬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브랜드와 브랜딩이 꾸미는 작업이 아니라 기업 생존과 성장을 위한 경쟁 전략이라는 것을 바로 이해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손자병법과 손정의

손자(孫子)는 기원전 6세기쯤 중국 춘추 시대 제(齊)나라 출신의 병법가다. 오나라 왕인 합려 밑에서 전군의 장이 돼 총지휘를 맡아 서쪽으로 초나라를 격파했고, 북쪽으로는제(濟)나라와 진나라를 굴복시키면서 그 이름을 사방에 떨쳤다. 이런 전쟁의 경험을 시계 편(始計篇), 작전 편(作戰篇), 모공 편(謨攻篇), 군형 편(軍形篇) 등 총 13편으로 집약한 것이 손자병법이다. 이 책은 이후 ‘삼국지’ 의 영웅 조조의 편집을 거치고, 8세기 무렵에는 당나라 사신과 외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18세기 말에 기독교 인사들에 의해 서구로 전해져, 전략과 전술의 기초가 됐다.

손자병법 시계 편은 전체 13편 중 총론에 해당한다. 시계란 ‘시작하기 전에 계산해 보라’는 말이다. 최초의 근본적인 계획, 전쟁에 대해 맨 처음 세우는 계획으로 전쟁의 총체적인 전략을 말한다. 손자는 시계 편에서 오사(五事)를 전쟁 준비의 기준으로, 전력 비교의 기준으로 칠계(七計)를 제시한다. 오사는 전쟁 전 체크해야 하는 5대 핵심 요소 같은 것이다. 바로 도·천·지·장·법이다. 첫 번째 길(道)은 대의명분을 뜻하고, 하늘(天)은 기상학을 기초로 하는 자연법칙을 의미하며, 땅(地)은 지형 조건의 고려 원칙이고, 장(將)은 성공적 리더의 확보를 강조하는 것이고, 법(法)은 제반 법제와 규칙 및 질서가 중요함을 뜻한다. 

군주와 백성이 한마음이 되는 대의명분이 도(道)다. 전쟁의 시기, 타이밍이 천(天)이다. 천이란 날씨를 말하는데, 이는 곧 싸우는 때를 의미한다. 승리할 수 있는 지리적 요건인 지(地)는 싸우는 장소를 말한다. 장수에게 중요한 조건이 장(將)이다. 훌륭한 리더의 요건을 밝히고 있다. 조직의 시스템이 법(法)이다.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는 “손자병법이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손정의는 손자병법을 익히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다섯 개 범주로 재구성, 자기만의 ‘손정의 전략’으로 재탄생시켰다. 도·천·지· 장·법의 장에서 손자는 장수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을 논했는데, 손정의는 그것을 따로 떼 리더의 수칙으로 강조하는 식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도·천·지·장·법을 상대적으로 강조했고, 손자병법보다 손정의의 재구성된 내용에 영향받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도·천·지·장·법이 더 부각된 면이 있다. 손정의가 말하는 도·천·지·장·법은 다음과 같다.

① 道 이념과 포부. 소프트뱅크의 도(道)는 정보 혁명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② 天 하늘이 준 때를 절대 놓치지 말라.결정적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③ 地 땅의 이치를 찾으라. 시장 초기와달리 인터넷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이 될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앞으로 펼쳐질 인터넷 세상의 중심지, 아시아에서 자리 잡을 것이다.

④ 將 훌륭한 장수를 확보하고 차별 없이 능력 있는 우수한 직원을 중용해야 한다. 

⑤ 法 견고한 법과 규칙을 수립하라. 지속적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브랜딩과 도·천·지·장·법

브랜드는 고유성, 브랜딩은 경험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한 브랜딩의 전략 방향을 고유성과 경험의 관점으로 도·천· 지·장·법에 적용할 수 있다. 이른바 ‘브랜딩: 도·천·지·장·법’이다. 도는 브랜드의 명분을 밝히는 것이다. 천은 타이밍의 문제다. 시장 진입의 시점, 트렌드와 부합 여부를 살피는 것이다. 지는 어느 시장에 진출하고 어떤 시장에 집중할 것이냐를 정하는 것이다. 장은 리더십 문제이나 내부 브랜딩의 방법과 방향에 관한 얘기로 정리된다. 법은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경험을 파악하고 개선하는 시스템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먼저 이념과 포부, 대의명분을 밝히는 도부터 살펴보자. 현재 우리는 장기 저성장 시대에 살고 있다. 저성장은 퇴보가 아니다. 고성장이 특이한 것일 수 있다. 장기 저성장 시대를 ‘고원(高原) 사회로 진입’으로 보는 시각이 그래서 존재한다. 인류가 물질적 부족이라는 숙원을 거의 해결했기에 성장이 완만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물질적 빈곤을 없애는 비즈니스의 역사적 사명은 완료됐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 시대 브랜드는 제품과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소비자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 도움 되고 사람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반영해 주는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하는 브랜드, 기업을 사람이 더 좋아하는 세상이 됐다. 브랜드 목적은 ‘누구에게 도움 될 것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가’를 뜻한다. 그래서 브랜드 목적에는 개인이나 가족의 행복,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가치, 사회와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 등의 중요한 가치가 들어가야 한다.

목적(purpose)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 세상에 공헌하는 방식 그리고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가를 말한다. 비슷하지만 좀 더 하위 개념인 ‘미션(mission)’은 ‘해야 하는 일(what we do)’이 된다. 목적은 ‘왜 해야 하는지(why we do)’에 대한 선언이다. 미션-비전-가치 등 기존 가치 체계의 요소가 정리돼야 하는 출발점이 브랜드 목적이 된다. 목적을 무엇으로 표방하냐에 따라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도 세계관도 달라진다. 이해관계자와 가치를 공유하면서 기업이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으로 브랜드 목적은 작용하게 된다. 

유니레버의 브랜드 목적은 ‘Making Sus-tainable Living Commonplace(지속 가능한 삶을 일상화한다)’다. 파타고니아는 ‘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우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을 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세상을 자유로운 상상력이 더 존중받는 곳으로 만든다’가 브랜드 목적이다. 

브랜드 목적을 굳건하게 세운다는 것은 제품이나 서비스 차원이 아닌 ‘존재 차원의 차별화’를 도모한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낫고 약간은 다른 브랜드가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남다른 브랜드가 되려는 것이다. 브랜드 고유성이 가장 극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힘든 시기를 견뎌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도·천·지·장·법에서의 도, 브랜드 목적은 힘든 시기를 지나가야 할 때 특히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