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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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잘 살아왔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과 매 주말 오찬을 나누며 대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4인 이하 모임을 가져 보니, 최대 네 명의 대화가 집중과 배려 관점에서 가장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험과 교양으로 풀어가는 경영, 경제, 종교, 철학, 예술, 역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한 상 잘 차린 맛있는 음식 이상으로 맛깔스럽다.

모든 인생은 예외 없이 고난과 시련을 겪는다. 이를 극복하는 가장 큰 힘은 의외로 상상력이다.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해법과는 구별되는 창의적이고 담대한 상상력. 독서와 경험과 사색이 부여하는 풍부한 교양은 남다른 상상력의 밑거름이 된다. 대화하는 자세 또한 대화의 몰입과 만족에 중요한 몫을 한다. 그간 대화한 어떤 사람도 대화 중에 휴대전화를 보거나 전화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허리를 앞으로 당겨 집중하는 자세, 눈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떡이거나 대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표정, 종업원을 대하는 예의 바른 태도는 대화를 뜻깊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상대방의 경험에 깊이 공감하고, 짧지만 진지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 보면 우리가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라는 종업원의 눈치를 받으며,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눴음을 알게 된다. 아는 게 많거나, 돈이 많거나,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다시 초대해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다. 대화하고 싶은 사람의 공통점은 말하는 내용보다는 듣는 자세가 훌륭하다는 점이었다. 

신동우 나노 회장케임브리지대 이학 박사, 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신동우 나노 회장케임브리지대 이학 박사, 현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현 한양대 총동문회장

자식과 배우자에게 가장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인생의 어떤 목표보다도 이루기 힘드나 어떤 목표보다도 가치 있다. 미국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는 아들이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아들은 미국에 간 지 1년도 되지 않아 영어가 서툴기에, 좋은 평가를 받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학부생 시절 연극영화과에서 연기 수업을 받았는데 온전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연기한 경험이 지도하는 학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됐다고 한다. 대화의 만족감은 말솜씨와 지식수준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이에 공감하는 태도임을 깨달았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임원의 자녀가 내게 물었다.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의 가족이건 친구이건, 고난을 겪을 때나 기쁨이 찾아올 때 그 곁에 네가 자주 있어 주면 성공할 수 있단다. 언젠가 네가 사방이 캄캄한 어둠에서 울고 있을 때 네가 곁을 내주었던 그 사람들이 네 곁을 지켜줄 것이다. 성공은 네가 네 힘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이 만들어 주는 거란다.” 훌륭한 대화는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면서 그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게 된 덕분에 대화하며 어머니의 인생을 더 알 수 있었다. 대화와 동행을 잘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의 속도를 늦춘다. 동행은 어머니가 자식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을 자기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나름의 세계관을 만들어간다. 고집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함께 어울리기 힘든 사람은 무언가 어려운 경험을 했으리라는 연민을 가지고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고 말이 어눌한 사람이더라도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들려달라고 하면 늘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우리는 인간애를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 우리는 대화하면서 서로에게 더 관대해지고 더 친절해진다. 대화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공감하게 하고, 공감은 희망을 품는 힘을 준다. 대화는 공감의 표현이다. 말없이 같이 걷든, 손을 잡아주든, 포옹을 하든, 진지하게 귀담아들어 주든, 천천히 동행하며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 보자. 인간애를 가진 대화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올바른 출발이다. 대화하고 싶은 부모, 대화하고 싶은 친구, 대화하고 싶은 직장 동료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우리 사회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높은 자살률, 낮은 출산율, 지독한 경쟁으로 인한 상처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슬픔이라도 이야기에 담아낼 수만 있다면 견딜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