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효리의 텐 미닛 패션. 이효리의 삼성 애니콜 광고 패션. 이효리의 유고걸 패션. 사진 이효리 유튜브
왼쪽부터 이효리의 텐 미닛 패션. 이효리의 삼성 애니콜 광고 패션. 이효리의 유고걸 패션. 사진 이효리 유튜브

에스파의 닝닝, 키스오브라이프의 나띠, 트와이스의 지효, 뉴진스의 민지와 다니엘. Z 세대(1997~2010년생) 아이콘들의 패션을 보면 누가 떠오르는가? Z 세대가 아기였거나 태어나기도 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텐 미닛(10 Minutes)’의 주인공 이효리다. 패션과 음악계가 1990년대(이하 90년대)와 Y2K(-Year 2000·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친 시기를 의미) 시대의 노스탤지어(nostalgia·향수)에 푹 빠져 있는 지금, 패션 아이콘이자 레전드로서의 이효리를 다시 만나본다.

패션쇼 같은 '텐 미닛' 무대

‘10분 안에 널 유혹하겠다’는 파격적인 메시지와 섹시미를 내세운 ‘텐 미닛’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핑클 그룹 활동 중에도 존재감을 빛냈지만, 본격적인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이효리의 이름은 그 자체로 현상이자, 트렌드이며, 브랜드가 됐다. 특히 이효리의 카리스마는 패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 90년대 힙합 문화를 이효리답게 재해석한 ‘텐 미닛 패션’은 스트리트 전체에 물결쳤다.

‘추리닝’이라 불리는 트레이닝 세트를 일상 패션으로 전 세계에 유행시킨 주시 쿠튀르(Juicy Couture)의 트레이닝 팬츠, 밀리터리 카무플라주(camouflage·위장) 패턴, 헐렁한 카고 팬츠와 대비되는 짧은 크롭 톱(cropped top·배꼽티), 원 숄더의 저지 톱(jersey top), 짧은 후디(hoodie·모자가 달린 상의), 마이크로 데님 쇼츠, 링 귀고리가 ‘텐 미닛 패션’의 메인 아이템이었다. ‘텐 미닛’은헤어와 메이크업, 스타일링, 액세서리까지 모든 것을 유행시켰다. 이효리의 모든 무대는 패션쇼와 같았다.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현 케이노트 대표, 전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이효리' 이름 자체가 트렌드

‘텐 미닛’만큼 지금도 이효리 패션의 전설로 추억되는 건, 삼성 애니콜 휴대폰 광고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이효리가 등장했다. 이효리는 당대 최고의 CF 퀸이었다. 특히 삼성 애니콜 휴대폰 광고는 뮤직비디오 콘셉트로 ‘애니모션’ ‘애니클럽’ ‘애니스타’ 등 시리즈 광고로 기획돼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때 춤을 좀 즐겼던 청춘이라면, 이효리처럼 헐렁한 힙합 카고 팬츠를 입고 애니콜 춤을 연습해 보았을 것이다. 광고에서 이효리는 과감하게 뒷면을 컷아웃(cut-out·도려냄)한 아디다스 트랙 재킷과 로 라이즈 카고 팬츠, 레게 머리로 ‘애니콜 패션’을 완성했다.

이효리 신드롬은 2006년 ‘겟챠(Get Ya)’와 2008년 ‘유고걸(U-Go-Gir)’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특히 스모키 메이크업과 레이어드 커트 뱅 헤어 스타일로 대표되는 ‘유고걸 패션’의 인기가 대단했다. 컬러풀한 체크 셔츠를 매듭지어 묶고, 미니스커트와 화려한 주얼리를 스타일링한 ‘유고걸 패션’은 레트로 ‘핀업 걸(pin-up girl·핀으로 벽에 붙인 사진 속 미녀 모델)’ 스타일을 이효리식으로 모던하게 재해석한 룩이었다. 핀업 걸 스타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섹스 심벌들의 사진이 담긴 신문, 잡지, 엽서 등을 군인들이 사물함이나 숙소 벽에 붙이는 데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책받침 여신’이다.

1 키스오브라이프의 나띠. 사진 나띠 인스타그램 2 에스파 닝닝. 사진 닝닝 인스타그램 3 뉴진스. 사진 뉴진스 인스타그램 4 ‘텐 미닛’을 오마주한 트와이스. 사진 모모 인스타그램
1 키스오브라이프의 나띠. 사진 나띠 인스타그램 2 에스파 닝닝. 사진 닝닝 인스타그램 3 뉴진스. 사진 뉴진스 인스타그램 4 ‘텐 미닛’을 오마주한 트와이스. 사진 모모 인스타그램

트와이스·나띠의 오마주

그리고 지금, 이효리의 ‘텐 미닛’ ‘애니콜’ ‘유고걸’ 패션이 4세대 아이돌들에 의해 오마주되고 있다. 90년대는 작년 MBC ‘놀면 뭐하니?’와 tvN ‘댄스가수 유랑단’ 프로그램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고, 올해 후배 아이돌의 패션을 통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조용한 클래식’과 미니멀리즘이 부상하며 이와 상반되는 Y2K 유행이 수그러드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역주행을 기록하고 있다.

뉴진스는 신곡 ‘하우 스윗(How Sweet)’에서 90년대 도쿄 하라주쿠와 우라하라주쿠에서 탄생한 ‘우라하라’ 스타일을 귀환시켰다. 90년대 힙합 룩이 메인이지만, 배꼽이 노출되는 짧은 크롭 톱과 헐렁한 카고 팬츠, 링 귀고리의 매치는 이효리의 ‘애니콜 패션’을 연상시킨다.

무엇보다 ‘텐 미닛 효과’가 파워풀하다. 틱톡에서 ‘텐 미닛 챌린지’가 열풍을 일으켰고, 최근 쇠 맛 여전사 콘셉트로 돌아온 에스파의 스타일에서도 이효리가 보인다. 그중에서도 에스파 닝닝은 푹 눌러쓴 빈티지 볼캡, 그래픽 프린트 크롭 톱, 커다란 링 귀고리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는데, 이 역시 이효리의 ‘텐 미닛 패션’과 흡사하다.

요즘 핫한 패션 스타로 떠오른 키스오브라이프의 나띠도 ‘텐 미닛 패션’을 보여줘, ‘리틀 이효리’란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트와이스도 스터드 벨트, 암 워머, 짧은 크롭 톱으로, 이효리의 ‘텐 미닛 패션’을 오마주했다. 트와이스 지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텐 미닛’을 오마주한 패션 이미지와 함께 ‘지효리’라고 자신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효리의 솔로 전성기 이미지와 영상을 보면, 2024년의 패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스타일리시하며 또한 대담하다. 시대를 앞서가며, 유행하는 아이템을 자신만의 룩으로 재창조하며, 수십 년 후에도 오마주되는 스타일을 지닌 이들에게 시대의 패션 아이콘이란 영예가 주어진다. 이효리는 이 모든 충분조건을 다 갖춘 스타다. 스스로를 슈퍼스타로 칭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이효리는 현재의 청춘을 살아가는 Z 세대를 통해 진정한 슈퍼 아이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