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 IMF 수석 부총재,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교수 사진 연합뉴스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 IMF 수석 부총재, 전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교수 사진 연합뉴스

“보조금을 통해 미국에서 반도체와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의 산업을 육성하려는 조 바이든의 정책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히 반도체로 인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중략) 미국에서 생산하면 원가와 관련 기업의 운영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에서 더 싸게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미국산 반도체는 어떻게 되겠는가.”

앤 크루거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1980년대 여성 최초로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오른 경제학계의 석학이다. 2001~2006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로 아르헨티나와 터키(현 튀르키예) 등 원조를 제공한 국가들과 협상을 주도해 명성을 쌓았다.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behavior)’를 개념화한 그는 2011년 노벨경제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지대추구행위란 생산성에 도움 되지 않는 방법으로 자원 배분과 관련된 법적·제도적 환경을 바꿔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인허가 등 정부의 각종 규제는 각 경제주체의 지대추구행위를 유발, 경제적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6월 27일 세계경제연구원, 신한은행이 공동 주최한 국제 금융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방한한 크루거 교수를 서울 중구 롯데호텔서울에서 만났다. 1934년생으로 올해 아흔인 노교수의 미국과 세계경제 흐름에 대한 분석은 날카롭고 막힘이 없었다. 크루거 교수 기자회견의 주요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미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보나.

“대선 하나만 해도 큰일인데 여러 굵직한 일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불확실성이 전에 없이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의 특이한 족적도 미국 경제에 그대로 남아있다. 팬데믹 기간에 정상적인 소비를 할 수 없었던 미국인은 저축을 크게 늘렸다. 가처분소득의 5%에 불과하던 저축률이 13%까지 올라갔으니, 엄청난 금액이 쌓인 것이다. 이후 일상이 회복되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다. 저축 덕분에 수요가 높게 유지되면서 물가 상승이 가팔라졌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할 만큼 엄청난 상황에서 초과 수요가 얼마나 유지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바이든과 트럼프 둘 다 보호주의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임기 동안) 중국과 관계가 나쁘다는 식으로 국민을 설득했고, 바이든도 더 이상 반대하기 어려운 입장이 돼 버렸다. 그렇다 해도 대선 후보가 모두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는 건 이례적이다. 미국인은 이제 별다른 증거도 없이 모든 물건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트럼프의 경우에는 모든 수입품에 10%, 중국산 제품에 60% 추가 관세 부과를 공언했다. 바이든은 첨단 기술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썼다. 지금 둘은 ‘누가 더 많이 약속하는지’,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누가 승리해도 정부 지출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증세에 대한 논의는 없다. 최상위 부자 부유층 과세 논의는 있지만 그렇게 된다 해도 세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의 보조금 정책은 어떻게 보는지.

“보조금을 통해 미국에서 반도체와 전기차, 태양광 패널 등의 산업을 육성하려는 바이든의 정책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히 반도체로 인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미국 외에도 한국과 일본 등 나라마다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반도체 제품이 시장에 쏟아질 것이고, 그 결과 시장은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미 많은 기업이 투자 계획을 축소하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원가와 관련 기업의 운영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고, 다른 나라에서 더 싸게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미국산 반도체는 어떻게 되겠는가. 얼른 교훈을 얻고 경로를 수정하길 바랄 뿐이다.”

‘킹 달러’로 불릴 만큼 달러가 독보적인 강세를 유지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중동 문제로 빠져나온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돼서 달러는 계속 강세다. 피크에 달했을지는 몰라도 아직 약세 전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2015년 국내 출간된 ‘달러 트랩’의 저자인 코넬대 경제학 교수)의 주장대로 규모와 폭에서 미국 경제를 대체할 마땅한 곳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달러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을 어떻게 전망하는지.

“금리를 올리지는 않겠지만, 올해 내리지 않는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물가 상승보다 임금 상승 폭이 클 정도로 미국 노동시장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연준은 어떤 결정을 할지, 아직 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어떤 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배경이 무엇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준이 금리를 인하했는데 그 이유가 미국 경제 둔화 때문이라고 하면 좋은 소식일 수 없다. 반면에 미국 경제가 연착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금리 인하를 했다면 좋은 소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커진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연준의 금리 결정을 한국은행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와 세계경제 상황을 고려해 균형 잡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연준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은 어떻게 보나.

“내가 아는 한 한국은 비교적 잘하고 있고 경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미·중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과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겪는 고유의 문제는 있다. 원화 약세도 일정 부분 그런 상황과 관련 있는 것으로 외부에서는 생각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한국 경제 전반적으로 잘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할 만큼 상황이 괜찮다.”

그런데 왜 증시는 약세를 면치 못하는 걸까.

“주가는 언제든 오르고 내릴 수 있다. 증시가 항상 올라야 건강한 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규모와 깊이가 있어서 소수에 의해 출렁이지 않고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한 증시가 건강한 증시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7~2008년 연준은 불황을 막으려고 굉장히 애를 썼다. 사람들은 ‘아, 불황은 이제 없겠구나. 주가는 오르기만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지금 미국 증시에는 ‘광풍’ 에 가까울 정도로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의 인기가 높다. 만일 AI 관련 혁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미국 증시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 해도 이전 상승장이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경제 상황은 어떤가.

“태양광 시설과 주택 과잉 공급 등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만큼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을지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에 중국은 마지막 순간에 가서 방향을 잘 잡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전보다 좀 더 심각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중국이 미국에 화해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정치인들이 귀를 닫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