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열린 미국 대통령선거 TV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
6월 27일 열린 미국 대통령선거 TV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

“미국에는 수천 명의 조만 장자(trillion-aire·억만장자를 뜻하는 ‘billionaire’를 잘못 표현)가 있다. 그들이 24~25%(의 세금)를 납부했다면 10년 동안 5억달러, 5000억달러(‘billion’을 ‘million’으로 잘못 표현)를 거뒀을 것이다.”

“우리가 마침내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험·코로나19를 잘못 표현)를 이겨냈다.” 

세 번의 말실수는 단 여덟 문장 안에서 일어났다. 6월 27일(이하 현지시각) 오후 9시부터 약 90분간 진행된 미국 대선 TV 토론회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쉰 목소리로 말을 더듬으며 횡설수설했고, 숫자 단위를 자주 혼동했다. 입을 벌린 채 허공을 응시하거나 기침하는 모습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최대 약점인 고령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 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처참히 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맞수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거짓말을 반복하고 민감한 문제에 즉답을 피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거침없는 공세를 펼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이겨냈다’는 말을 ‘메디케어를 이겨냈다’고 잘못 말하자, 곧바로 “바이든이 말한 대로 그는 메디케어를 망쳐버렸다”고 조롱하며 맞받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78세(1946년생)로, 194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과 4살 차이다.

“밤이라” “피곤해서”⋯자충수 된 해명

TV 토론회 참패가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력, 건강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지자 바이든 대통령 측은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바이든 보좌관은 현지 매체 악시오스에 “(바이든 대통령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 카메라 앞에 서는 공개 행사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한다. 그 시간대를 벗어나거나 해외 순방에서는 말실수를 저지르거나 피로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해명은 ‘바이든 대통령은 오후 4시부터는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하게 된다는 뜻인가’ ‘대통령의 근무시간이 하루 6시간인가’ 등 비판을 낳으며 역풍을 일으켰다.

민주당 안팎서 사퇴 요구 이어져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를 넉 달 앞둔 시점에 후보 사퇴 압박을 받게 됐다. 미 CBS는 유고브와 함께 전국 등록 유권자 1130명 대상으로 조사(오차 범위 ±4.2%포인트)한 결과,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72%로, 출마해야 한다(28%)는 응답을 압도했다고 6월 30일 보도했다. 이번 조사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TV 토론회 직후인 6월 28~29일에 진행됐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소속 15선 하원 의원인 로이드 도겟 의원(텍사스주)은 7월 2일 성명을 내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재선 도전을 그만둘 것을 촉구했다. 연방 의원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라울 그리핼버 하원의원(애리조나주)과 세스 몰튼 하원의원(매사추세츠주)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재선 도전 포기를 촉구했다. 이들은 과거 임기 제한이 없었음에도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물러난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3선에 도전하다 중도 하차한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의 사례를 들었다. 친민주당 언론도 등을 돌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토론 다음 날인 6월 28일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경선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사설을 실었고 NYT 대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바이든의 토론 모습을 보고 흐느꼈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대통령이지만 출마 자격이 없다” 고 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는 8월 전당대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승리할 것” 사퇴론 일축한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은 거듭 대선 승리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는 TV 토론회 이튿날 열린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거 유세에서 “나는 내가 젊은 사람이 아님을 안다. 나는 과거만큼 편하게 걷지 못하고, 옛날만큼 술술 말하지 못하고, 과거만큼 토론을 잘하지 못한다”면서도 “그러나 나는 내가 아는 바를 확실히 알고, 진실을 어떻게 말할지를 안다. 잘못된 일과 옳은 일을 구별할 줄 알고, 이 일(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할지를 알며, 일을 어떻게 완수할지를 안다”고 말했다. 특히 그의 가족이 사퇴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바이든에게 사퇴 압력을 거부할 것을 주장하는 강력한 목소리 중 하나는 바이든이 오랫동안 조언을 구해 온 아들 헌터 바이든”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내 질 바이든 여사도 6월 29일 “조 바이든은 단순히 대통령직에 적합한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직에 맞는 유일한 인물이다” “여러분에게 자기가 어떤 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조 바이든은 여러분에게 그동안 수행한 대통령으로서의 판단, 경험, 전 세계 지도자와 교분을 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

토론 승리 이어 사법 리스크 덜어낸 트럼프

TV 토론회에서 승리를 거둔 트럼프는 사법 리스크도 일부 걷어냈다. 미 연방 대법원은 과거 2020년 대선 불복, 2021년 의회 난입 선동 혐의 등으로 기소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장한 ‘면책특권’을 일부 인정하는 판결을 7월 1일 내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중 행위는 퇴임 이후에도 형사 기소 면제 대상’이라고 주장한 것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대법원은 대선 불복 사건 등에 대한 면책특권 적용 여부를 하급심 법원에서 판단하라며 돌려보냈다. 재판부 판단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 판결은 대부분 11월 대선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2020년 대선 개입 의혹 등 총 네 개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졌는데, 7월 11일 형량 선고가 이뤄지는 성 추문 입막음 사건을 제외하면 모두 11월 이후에 재판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Plus Point

바이든 대안은 누구? 해리스 부통령 급부상… 미셸 오바마도 언급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부터), 미셸 오바마, 피트 부티지지 교통 장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
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셔터스톡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부터), 미셸 오바마, 피트 부티지지 교통 장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 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셔터스톡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사퇴 압박이 이어지면서, 0순위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그의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다. 그는 공식적인 대통령 승계 서열 1위로, 당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자금을 이어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자금 대부분은 두 사람 공동 명의로 모금돼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이 자금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인물이 후보가 된다면 11월까지 기부금을 새로 모아야 한다. 다만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주를 벗어나면 확장성이 부족하고, 임기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그외에 미셸 오바마와 피트 부티지지 교통 장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도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다. 미셸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압도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