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에 등장한 ‘건담’ ‘개구리’
맛 못지않게 개성·재미도 중요
획일화 경계… 다양성 추구해야
최현석 쵸이닷 오너 셰프현 중앙감속기 총괄 셰프, 전 엘본 더 테이블 총괄 셰프, 전 테이스티 BLVD 총괄 셰프, 전 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 교수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최현석 쵸이닷 오너 셰프
현 중앙감속기 총괄 셰프, 전 엘본 더 테이블 총괄 셰프, 전 테이스티 BLVD 총괄 셰프, 전 서울현대직업전문학교 교수 사진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괴짜’ ‘요리계의 이단아’

셰프 최현석을 설명할 때 매번 등장하는 단어다. 몇몇 단어는 다소 강한 표현일 수 있으나 최현석이 선보이는 무궁무진한 요리 스펙트럼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밋밋했던 한국 외식 업계에서 그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훤칠한 키, 준수한 외모 게다가 얼핏 모범생처럼 보이는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음식은 파격의 연속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엘본더테이블, 테이스티 BLVD를 거쳐 현재는 쵸이닷(CHOI.)의 오너 셰프로서 2017년부터 활동 중이다. 최현석의 요리는 혀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강하다. 국내 최정상 셰프 중 요리 사진 하나만으로 그것을 만든 셰프를 유추할 수 있는 이는 최현석이 거의 유일하다. 일각에서 그의 요리를 두고 “최현석의 요리는 그의 지문이 찍혀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이유다. 레스토랑 쵸이닷의 이름도 그런 뜻이 있다. 그의 성인 ‘최(Choi)’와 마침표 dot. ‘설명이 필요 없는 최현석만의 요리를 보여주겠다’는 그의 포부가 담겨있다.

최현석의 요리는 그저 맛만 있지 않다. 보통 ‘미(味)’에는 짠맛,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등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현석 요리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재미’ 다. 이에 걸맞게 그의 요리를 처음 보게 되면 미소부터 흘러나온다. 미뢰에 닿기도 전에 미리 즐길 수 있는 풍부한 시각적 경험은 덤이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단어와 재료의 조합이 쵸이닷의 메뉴판에는 넘쳐난다. 가령 대중적 식품인 ‘스팸’의 럭셔리화. 어떤 맛일지 상상조차 안 되는 애니메이션 ‘건담’ 에서 착안한 후식 디저트. 메뉴판을 접하면서부터 고객의 ‘행복한 기다림’은 시작된다. 

이번 시즌 쵸이닷의 메뉴도 범상치 않다. 아니 오히려 더욱 과감해졌다. 무려 개구리를 이용한 메인 코스가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45일간의 점검 기간을 마치고 들고나온 요리가 개구리라니. 처음에 가족을 포함한 직원들까지, 만류가 무척이나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맛있는 재료를 맛있게 요리하면 고객도 좋아할 수 있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메뉴 이름은 ‘제발(please)’. 정말 맛있게 준비해 만들었으니 ‘제발’ 한 번만 맛봐달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정하게 됐다고 한다. 최현석만의 유머가 물씬 느껴진다. 

새로운 메뉴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한국 파인 다이닝 업계가 가야 할 길에 대한 그의 고민 역시 깊어졌다. 한국 파인 다이닝은 지난 20여 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으나 이젠 한 단계 더 성장할 때가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를 비롯해 어떤 특정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요리를 비난하는 이에게도 당당하다. 팔레트에 있는 색이 다양할수록 각자의 색이 더욱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쵸이닷에 대해 설명해달라.

“쵸이닷은 오픈한 지 7년 된 나만의 레스토랑이다. 이전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내 색깔이 강한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었다. 레스토랑 이름도 이런 내 의지를 담고 있다. 최현석 그리고 마침표. ‘긴말 안 하겠다. 이게 나의 요리다’라는 뜻이다. 또한 어떤 설명이 없더라도 직관적으로 즐거운 경험을 주겠다는 뜻도 있다.”

쵸이닷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외식 문화, 특히 파인 다이닝 업계는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가 파인 다이닝이라고 하면 정갈하고, 고급스럽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쵸이닷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분위기를 추구한다. 그래서 이번 리뉴얼에는 사람들이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가격도 낮췄다.”

(왼쪽부터) 소고기를 사용한 쵸이닷의 메인 메뉴,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에서 착안한 디저트, 한국 사람에겐 친숙한 ‘스팸’에서 착안한 최현석의 ‘쉐프햄’ /쵸이닷
(왼쪽부터) 소고기를 사용한 쵸이닷의 메인 메뉴, 일본 애니메이션 ‘건담’에서 착안한 디저트, 한국 사람에겐 친숙한 ‘스팸’에서 착안한 최현석의 ‘쉐프햄’ /쵸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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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다양성이 갖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화로 예시를 들면 편할 것 같다.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멜로, 드라마, 스릴러, 코미디 영화까지. 무겁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도 있지만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소비할 수 있는 영화도 있다. 스펙트럼이 다양해질수록 영화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는가. 한국 외식 업계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문화는 다양하게 모여야 힘이 생긴다.”

한국 외식 업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개인적인 생각이고, 나만의 의견이라 조심스럽지만 다소 획일화되는 감이 없지 않나 싶다. 요즘 비싼 레스토랑에 가보면 비슷한 재료, 비슷한 스토리텔링(메뉴에 대한 설명)을 하는 곳이 꽤 많이 보여 아쉽다. 국내 외식 업계가 더 다양하고 개성 있는 요리를 선보여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요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맛이 좋아야 함은 물론이고, 고객과 ‘공감’도 중요하다. 쵸이닷은 ‘유머’를 통해 그런 공감을 끌어내고자 한다. 한국인에게 아주 익숙한 음식을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고객이 웃음 짓는 그러한 접점을 만들고 있다. 예컨대 예전 메뉴 중 하나는 ‘죠스바’에서 착안한 ‘쵸이스바’였다. 쵸이스바는 아이스바 모습을 띠지만, 연어 초밥 맛이 난다. 한번 상상해 봐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와서 아이스바를 빨고 있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웃음부터 나올 것이다.”

요리 철학이 궁금하다.

“요즘은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외식업계에서 모든 플레이어가 다 중요하다. 나라고 더 중요하지 않고, 너라고 더 중요하지 않다. 나 같은 셰프가 있어야 다른 셰프들이 빛날 수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쵸이닷처럼 독특한 메뉴를 내놓는 곳이 있어야 다른 고급 레스토랑도 그 매력이 커진다.”

쵸이닷은 최근 무엇이 바뀌었는가.

“이번 시즌 런치는 이탈리안을 좀 더 고급스럽게 해석해 봤다. 디너 코스는 대놓고 더 즐겁게 손님이 즐길 수 있도록 유머 요소를 많이 넣었다.”

개구리도 이번 코스 요리의 일부라고 들었다.

“그렇다. 싱가포르에 가서 개구리를 맛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개구리는 맛과 질감이 닭이랑 비슷한데, 콜라겐이 더 함유돼 식감이 매우 고급스러웠다. 이걸 꼭 요리해 보고싶었다. 처음엔 직원들이 너무 위험하지 않겠냐고 했다. 근데 그럴수록 더욱 요리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셰프의 본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됐다. 고객이 맛보지 못한 낯선 식재료를 맛있게 내놓아 그들에게 새로운 미식 경험을 주는 게 아닐까.”

개구리 요리에 대한 고객 반응은 어떠한가.

“예상보다 좋았다. 물론 개구리가 어려운 손님이 있으니 미리 다른 메뉴를 고를 수 있다고 처음에 설명해 준다. 다만 정말 맛있게 만들었으니 한번 맛을 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서 메뉴 이름도 ‘제발’이다. 셰프가 직접 나와서 제발 먹어달라고 애원하니 고객들도 열이면 열, 다 웃더라.”

쵸이닷의 목표는.

“사람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가는 ‘좋은 공간’이고 싶다. 지금보다 친근하게 많은 사람이 파인 다이닝을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파인 다이닝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싶다. ‘한국 미식 역사에 한 획을 긋겠다’ 같은 거창한 목표는 있지 않다. 단순히 다양한 장르, 그 한 귀퉁이에서 사람을 즐겁게 하는 좋은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다.”